○…겨울이 와 함박눈이 내리고 바람도 싸늘하다. 더불어 期末考査(기말고사)가 끝나고 다시 겨울방학이 시작된다. 이 긴 휴일에 우린 진지한 하루 학업과 趣味生活(취미생활)로 윤택한 나날을 맞이해야겠다. 無趣味(무취미)가 趣味(취미)라고 역설하지만 知性人(지성인)으로의 취미 또한 갖가지다. 山(산)으로 江(강)으로, 혹은 스포츠나 情緖的(정서적)인 취미도 많겠지만, 여기 敎養人(교양인)의 趣味(취미)로 三章(삼장)을 엮어본다.

  현대의 物質文明(물질문명)이 복잡해질수록 인간은 自然(자연)에 접근하려 한다.
  自然(자연)과 친해지고 자신의 정서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적절한 취미를 기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림을 그려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꼭 ‘렘브란트’나 ‘피카소’같은 유명한 화가가 되라는 것은 아니다. 한가한 시간을 이용해서 白紙(백지)위에 形形色色(형형색색)의 물감을 칠하는 순간, 무한한 공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다. 현실에서 맛볼 수 없는 風景(풍경)을 자기 마음껏 표현해 내는 것은 자신의 생활에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
  自然(자연)을 스케치함으로서 自然(자연)을 대하는 審美眼(심미안)을 기를 수 있고, 또 自然(자연)에 순응하는 겸허한 마음자세를 가질 수도 있겠다.
  석양이 지는 오솔길을 ‘캔버스’와 ‘이젤’을 옆에 끼고 귀가하는 ‘고흐’의 그림을 보라. 그보다도 가까운 郊外(교외)에서 스케치북을 들고 데생하는 아니, 누구의 얼굴인지도 모를 自畵像(자화상)을 그리는 자신을 보자.
  그림에 몰두하고 있는 그 숭고한 시간, 우리들은 나름대로의 훌륭한 趣味時間(취미시간)을 품에 안는다.
  어떤 의무감이나 次元的(차원적)인 藝術性(예술성)은 잠시 덮어두자. 다만 붓을 들고 ‘캔버스’앞에 선 순간만이라도 훌륭한 것이다.
  자신을 돌아다 볼 수 있는 시간, 그 한 순간을 위해 생활에 쫓기기도 하고 가끔은 절망도 품어본다.
  기계적인 오늘날의 生活(생활)속에서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하자. 그 속엔 詩(시)도 있고 참人生(인생)도 담겨있다.
  한 폭의 그림은 他人(타인)과의 對話(대화)를 연결해 주고 우리의 生活(생활)에 훈훈한 바람을 넣어준다.
  전시장에서 그림을 감상하고 나면 마음의 안정과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된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의 고요함과 완성한 뒤의 희열 등, 모든 것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는다.
  한 폭의 그림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이나 內面(내면)의 世界(세계)는 가장 순수한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作業(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손재주에 의존한다기 보다 자신의 깊은 상상력과 사상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려 나가는 동안에 난관도 많을 것이고 좌절감도 생길 것이다. 그러나 그림은 藝術(예술)이다. 藝術(예술)을 創作(창작)해 낸다는데 그 정도의 각오는 있어야만 한다. 고호가 자신의 귀를 잘랐듯이. 캔버스 앞에서 자신은 구상이나 비구상이나 어떤 그림을 그렸더라도 창작한다는 마음으로 한껏 대견해진다. 그림을 그리는데 있어서 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갈 때에도 우리는 오만해질 필요가 있다. 자신의 섬세한 손길이 스민 作品(작품)은 자신을 대변하고 변호해주니까.
  자기가 그린 그림으로 방을 장식하고 친구의 生日(생일)에 선사해 보라. 얼마나 멋진 선물이 되겠는가?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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