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와 함박눈이 내리고 바람도 싸늘하다. 더불어 期末考査(기말고사)가 끝나고 다시 겨울방학이 시작된다. 이 긴 휴일에 우린 진지한 하루 학업과 趣味生活(취미생활)로 윤택한 나날을 맞이해야겠다. 無趣味(무취미)가 趣味(취미)라고 역설하지만 知性人(지성인)으로의 취미 또한 갖가지다. 山(산)으로 江(강)으로, 혹은 스포츠나 情緖的(정서적)인 취미도 많겠지만, 여기 敎養人(교양인)의 趣味(취미)로 三章(삼장)을 엮어본다.

  映畵(영화), 演劇(연극)같은 綜合藝術(종합예술)이나 어떤 부류의 單獨藝術(단독예술)이나를 막론하고 그 對象(대상)이 지니는 美的(미적)효용성을 즐김을 우리는 흔히 趣味(취미) 또는 기호라 부른다.
  이 個人(개인)취미에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각양각색의 취미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音樂(음악)을 취미로 꼽는 사람은 결코 적지가 않다.
  音樂(음악)은 他(타)예술이 지니지 못하는 보다 感覺的(감각적)인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현대의 組織化(조직화), 기계화된 메커니즘 文明(문명)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音樂(음악)의 필요성도 바로 여기에 있다.
  추운 겨울 그대가 혼자되었을 때, 사방이 壁(벽)으로 막힌 방에 누워서 ‘라르고’를 들어보라.
  거기에는 告解聖事(고해성사)와도 같은 경건함과 설렘이 있다.
  뼈아프게 내가 犯(범)한 罪(죄)마저도 그 때는 이미 용서하고 싶어진다.
  갈증에 시달릴 때 冷水(냉수)를 들이키듯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해서 남달리 음악에 이해가 밝다거나 훌륭한 鑑賞者(감상자)는 더욱 못된다. 다만 이따금씩 못 견디게 음악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이 ‘미치도록 간절한 必要性(필요성)’이 결국에는 강직한 감상태도가 아닐까?
  때때로 우리는 無氣力(무기력)과 초조에서 오는 日常(일상)의 잔재로 鈍感(둔감)한 自己(자기)를 발견하고 우울해 진다. 이맘 때 들려오는 ‘쇼팡’의 ‘피아노협주곡’은 한모금의 진한 生命水(생명수)이다.
  죽어가는 나를 再確認(재확인)하는 희열과 함께 우리의 感性(감성)이 재정비되는 순간이다.
  아름다운 피아노의 선율―. 내가 음악을 미치도록 좋아하는 근본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다.
  現代(현대)의 젊은이들은 저마다 ‘狂氣(광기)’를 지니고 있다. 이 광기를 막연한 감정이나 울분해소로 휘발시켜버리고 만나면 그것은 영락없는 ‘墮落(타락)’이나 ‘몹쓸 젊음’으로 전락해버리기 마련이다. 젊음이 特權(특권)처럼 간직한 이 ‘찬란한 狂氣(광기)’를 우리는 비로소 音樂(음악)이나 또 다른 취미생활로 소중히 할 수 있어야겠다.
  우리가 숭배(?)하는 것은 비단 저 ‘베토벤’이나 ‘시벨리우스’, ‘바하’뿐만은 아니다. 우울한 노래를 속 시원히 불러주는 ‘닐ㆍ다이몬드’나 ‘호세ㆍ펠리치아노’, ‘비지스’도 내겐 더없이 흡족하다.
  古典(고전)이나 現代音樂(현대음악)을 막론하고 우리가 이렇게 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갈증에 시달릴 때 냉수를 들이키듯 나는 즐겨 음악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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