創作文學(창작문학)분야 本賞(본상)수상작

  가슴 뻐개지도록 기지개를 해도 나른함은 가시지 않았다. 스물거리며 밀려오는 바람은 끈끈하다. 마당 한 쪽에 피기 시작한 옥잠화 밑에 고미가 반쯤 눈을 감고 퍼져 있다. 하루 참견 안했다고 조그만 몸뚱이가 온통 더럽혀져 있다. 목욕이나 시켜줄까 하다 귀찮은 생각이 들어 그만둔다.
  문득 담 넘어 오는, 단조로우면서도 가슴을 저미는 멜로디가 퍽이나 귀에 익다.
  ‘그래, 이태리 영화 주제가야. 술 취한 덩치 큰 사내가 어두운 해변에 쓰러져 꺼이꺼이 우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었었지. 제목이…’
  제목이 채 떠오르기 전에 전화벨이 울렸다. 급히 수화기를 들었으나 香伊(향이)는 아니었다. 부부 동반피서를 가기로 약속했던 박 선생이었다.
  “준빈 다 되겠지?”
  “글쎄 뭐라고 사괄 해야…”
  “왜?”
준비도 없는 거짓말을 해버린다.
  “갑자기 마누라가 앓아누워서.”
  “아니 무슨 병인데 약속에도 없이 눕는 거야.”
  “글쎄 낸들 아나.”
  “병문안 가야겠구만.”
  “아냐. 그럴 정도는 아니구 몸살인가봐.”
  “그럼 어떡헌다? 집이랑 다 꾸려 놓았는데.”
  “미안하지만 먼저 떠나지. 완쾌되는 즉시 뒤쫓아 내려 갈 테니까.”
  “할 수 없군. 비겁하지만 떠날 수밖에. 뒷차로 오라구, 몸조리 잘 하고.”
  딸깍! 미안하네. 박 선생, 자넨 엉뚱한데다 비겁을 갖다 붙이는데, 정작으로 비겁한건 자네가 아니고 나라네.
  향이는 어제 귀가하지 않았단 말이야.
  전화도 없이, 제 멋대로. 정말 자기 마음대로 말이야.
  어제. 부탁해둔 책도 있고 해서 안국동 고서점에 들렸다 공치고 돌아오는 길에 향이가 경영하는 양품점엘 들렸다.
  오랜만에 외식이라고 하고, 영화구경이라도 할까 하는 약간은 낭만적인 기분에서였다.
  그러나 향이는 없었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화장을 고치던 미스 김이 방금 반가운 손님이 오셔서 차 한 잔 한다며 나갔다는 거다. 그러려니 하고 잠시 후 들리겠노라 이르고는 다방에 들어갔다. 아까 산 월간문예를 펴 연재물 하나를 읽고, 이번엔 뭘 읽을까 생각하며 목차를 훑어보다 소스라 쳤다.
  <第五回(제오회) 中篇小說(중편소설) 募集(모집) 當選作(당선작)>
  <개 당번>…張友林(장우림).
  페이지를 넘기는 나의 손길은 엷게 떨고 있었다. 동명이인이겠지, 설마 우림이, 아냐, 그럴 리 없어. 퇴계로에서 가축병원을 개업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소설을 쓰다니 그럴 리 없어.
  허나 그럴 리는 있었다.
  작품 앞에 실린 당선 소감 컷 안에 실린 엄지손가락만한 흑백사진은 확실치는 않아도 그의 얼굴 특징을 분명하게 담고 있었다.
  ‘지금 내가 가장 보고 싶은 것은 반딧불입니다. 어린 날 호박꽃과 싸리비를 들고 어두운 여름밤을 허벙거리며 뛰게 하던 반딧불 말입니다.
  맑고 차갑던 불빛은 동심의 신비가 아니라, 시의 상징처럼 생각되어 집니다.
  오랫동안 반딧불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젠 병원에 ‘휴업’간판을 달고 반딧불을 찾아 여행을 떠나야겠습니다.
  어두운 곳을 날아다니는 그 불은 내게도 날아와 주옥같은 소설이 되어줄 것을 믿으며…
  제 작품을 끝까지 읽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이 고맙습니다. 잘 하겠습니다.’
  우림의 당선소감. 띵한 기분으로 다방을 나와 양품점엘 들렸으나 향이는 없었다.
  곧장 가는 버스를 두고 퇴계로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는지 모르겠다. 퇴계로에 쭈욱 늘어선 가축병원 어딘가에 때 묻은 가운을 걸치고 있을 우림을 찾아 축하해줄 심사는 내 어디에도 없었을 텐데.
  그런데 나는 우림을 보았다.
  대한극장 채 못간 사거리에서였다. 신호등에 불이 바뀌길 기다리는 버스 속에서 바로 옆에 붙어선 검은 승용차 안에 그는 있었다.
  힐끗 보인 옆얼굴은 오만한 표정으로 미소하고 있었다. 나란히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말하는 여인은 반가운 손님과 차를 마시러 나갔다는 향이였고, 신호가 바뀌었는지 차가 서서히 앞으로 빠져 나갈 때까지 그들의 뒷모습을 백치 같은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향이가 안고 온 고미는 어쩌면 우림에게 얻어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엉뚱한 공상들이 범벅이 되어 뒤엉긴다. 그 자들은 제 위치를 벗어나 얽히고 섥혀 나란한 승용차 안의 남녀가 되고, 그들의 사이는 점점 좋아져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러브신이 되어 진다. 우림의 작품을 읽어 보려고 펼 적마다 그러한 장면들은 점점 더 대담하게 비약되어 가고 있다.
  책장을 덮고 밀어 놓는데 옥이가 마루에 밥상을 놓는다.
  “생각없다. 소주나 한 병 사오렴”
  “아침두 안 드시구”
  옥이는 오늘따라 유난히 친절하다. 그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도록 내가 초췌해 보이는가 보다.
  “제가 전화 할까요”
  “아까 걸어 보았더니 휘경동 집에서 자고 그냥 가게로 간다더구나. 소주나 한 병 사오렴.”
  옥이는 여전히 고개를 떨구고 있다. 끝내 속아주지 않을 모양이다.
  “심심해서 그렇다.”
  옥이는 상을 그대로 두고 행주에 두 손을 감아쥔 채 돌아선다. 심심해서 소주를 마셔야겠다는 서른한 살 답지 못한 거짓말이 갑자기 창피하다.
  사실 대학을 갓 졸업할 때 까지도 아이들이 말하는 꼰대가 될 생각은 없었다. 차라리 깡통 차고 모래사장에 혀를 박고 죽는 한이 있어도 교단에는 서지 않으리라는 결심은, 꺼떡하면 <여러분이 나중에 교단에 섰을 때 갑작스레 난해한 질문을 받았을 때에는 절대 당황해선 안돼요. 이건 기술적인 문젠데 그 때는 우선 침착하게 돌아서서 칠판에 한 번 써 봐요. 천천히 쓰면서 생각하면 생각 날 겁니다.>하는 교수가 있었는데 그 때마다 속으로 비웃게 했다.
  그러한 결심도 육 개월 동안 직장을 구하지 못하자 <마음에 드는 직장이 나설 때까지만>한다는 자신과 타협을 끝내고 장인영감이 이사장으로 있는 여자 고등학교에 국어 선생으로 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선생이라는 게 그렇게 역겨운 직업만은 아니었다.
  그들이 하는 질문이라는 것은 거의가 틀에 박힌 문법적인 문제라든가, 참고서 같은 걸 보고 와서는 선생님은 이 시구가 이런 걸 상징한다고 하셨는데 이런 게 아닙니까 따위였다. 학교 시절에 비교적 성실했던 탓인지 칠판에 돌아설 필요를 느껴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꼭 한번 칠판으로 돌아서게 했던 질문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신학기가 되어 제법 관록이 붙었다고 인정을 받아선지 2학년의 담임이 되었다. 복도에 세워 키순으로 번호를 정하고, 자리를 정하고, 마지막으로 시간표를 적어주고 종례를 마치려는데 뒤쪽에서 한 아이가 손을 불쑥 들었다.
  “선생님. 여자에게 있어서 가정이 중요한 겁니까? 아니면 명예가 중요한 겁니까?”
  막막했다. 이들에게 무엇을 선택해줘야 만족할까?
  “왜 그런 질문을 하죠?”
  뒤쪽에서 누군가가 마나술루 참사 어쩌구 하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렸다.
  집을 팔아 장비를 준비하고 작년에 두고 온 동생의 시체를 찾으러 갔다. 또 다른 형제를 잃고 돌아와 그 즈음의 한창 화제가 되어있던 사건이었다.
  ‘우선 침착하게 돌아서서 칠판에 한번 써 봐요. 천천히 쓰면서 생각하면 생각이 날 겁니다.’
  나는 돌아섰다. 뒤통수가 근질거린다.
  백묵으로 힘주어 우선 한쪽에 ‘家庭(가정)’이라고 내려쓰고 다른 쪽에다 ‘名譽(명예)’라고 썼다. ‘譽(예)’자의 마지막 입구(口(구))를 쓰고도 결심을 못한 나는 꽝하고 칠판이 울리게 마침표를 찍었을 때까지도 자신이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턱을 손으로 문지르며 돌아섰다.
  “그러니까…”
  실로 나는 입장이 난처했다. 그야말로 공자의 후예답게 부녀자 정숙론을 들고 나서느냐? 그렇지 않으면 로켓이 휙휙거리며 달을 오가는 이십세기를 살아가는 여성관을 내세우느냐?
  그런데 나는 지금 생각해도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
  가정에다 백묵으로 동그라미를 꼭꼭 그려가며 또렷한 말투로 힘 있게 말했던 것이다.
  “여성에겐 아마 가정이 더 중요할 겁니다. 이만.”
  교실은 웅성거렸으나 반장아이의 차렷이란 구령소리에 조용해졌다. 경례를 받을 때 교단 바로 앞에 앉은 소녀의 숙여진 목 언저리에 해뽀얀 솜털을 보았을 때 벌써 나는 답변을 후회하고 있었다.
  정말 이 아이들이 속아준 걸까?
  교무실로 돌아가는 나는 선생이라는 직업에 서른한살이라는 나이에 구토증 같은 걸 느끼며, 왠지 모르는 피로감에 후들거리고 있었다.
  수화기를 들었다. 다이얼을 돌리며 생각한다. 집사람 좀 바꿔주십시오. 방금 나갔네. 그러면 다행이다. 그렇지 않고 오지 않았는데 웬일인가?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뭐라고 답변을 해야 하나. 마지막 숫자를 돌리지 못하고 수화기를 놓고 만다. 우리 문제를 대문 밖으로 떠밀어 내보낼 필요는 없다. 이거야말로 누워 가래침 뱉기다.
  수화기에 그대로 손자국이 까맣게 번들거린다. 어느새 손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다. 땀을 보자 덥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더워서 땀이 나는 것이 아니라 땀이 나서 더운 모양이다.
  양품점엘 들려볼까. 만에 하나라도 향이가 없으면, 아니 설사 향이가 있다 하더라도 난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 것일까? 싸늘한 경악감이 등줄기를 후리고 스쳐간다.
  언제나 이렇다. 자신을 결정할 궁극적인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등줄기를 후려 스쳐가는 경악감은 나를 더듬거리게 했다.
  고의든 무의식이든 간에 그가 찬 조그만 자갈이 헐벗은 내 종아리에 닿았을 때 아픔 이상으로 화를 냈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쥑여 삐릴라”
  그는 국도 옆에 도랑을 넘어 가느다란 논길로 도망쳤고 난 뒤를 따랐으나 나와의 거리는 점점 멀여졌다. 그는 운동회 때 마다 달리기에 일등을 하곤 했기 때문에 그를 잡으리라는 욕심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를 놓아 보내고 돌아오다 문득 초록빛으로 바뀌어가는 수렁에 몰려다니는 올챙이를 정신없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늘상 보는 올챙이였지만 그날은 유난히 신기했다.
  얼마나 보았을까.
  갑자기 뒤쪽을 의식하고 돌아보았을 때 그는 나를 떠밀고 있었다. 떠밀린 나는 수렁에 처박히고 말았다. 유월의 차가운 물은 뼈끝을 저몄고 험벙대던 나는 죽는다는 경악감과 절망으로 가라 앉아 가고 있었다. 달려온 어른들에게 구출 된 건 훨씬 뒤의 일이고, 그 후로도 물귀신에 끌려나는 꿈으로 이불을 적시곤 했다.
  이미 이십여년 전 일이지만 우림은 그때 일을 사과는커녕 입에 올려놓는 일조차 없었다.
  분명 향이는 우림을 통해서 내게로 왔다.
  그럭저럭 몇 개의 단편 소설을 교지나 학교 신문에 발표하는 사이에 몇몇의 고정 독자를 확보하고 있던 내가 서클에 가담하게 된 것은 단순히 우림의 강요 때문이었다.
  원래 어떤 단체 안에 들어가 묶인다는 것을 싫어하던 내가 우림이 내미는 손길을 끝내 거부하지 못한 것은 우림이 풍기는 어떤 공포감이었을 거다.
  서클이란게 명목만 문학이었지 오히려 정치색이 더 강했다.
  그 때 만난 사람이 향이였다. 향이는 서클의 멤버는 아니었지만 우리에 곧잘 어울려 늘 우림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었다.
  어느 날 향이는 이런 말을 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 뭘까요?”
  우림은 완숙한 여인의 배꼽이라 답했고 난 어머니의 젖무덤에 코를 박고 잠든 어린아이라고 답했다.
  그날 이후 향이는 나를 만나기 위하여 서클에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내게서 펜을 버리게 했다.
  한국의 사정으로는 글쟁이는 가난하다는 거였다. 나는 소설을 쓰지 않게 되었다고 그러므로 둘은 서클과 먼 우리를 형성하게 되었다.
  서클의 탈퇴를 선언하자 우림은 이런 말로 충고했다.
  “향이가 너의 가정적이란 점에 끌렸다면 환영하지만, 너의 무기력이 가정적이라고 착각 되었다면 결코 환영할 수 없어. 알량한 여자 하나로 너의 존재가 무너져 내리는 게 슬프고… 하지만 난 끝내 문학을 포기하지 않을 거다. 두고 봐라. 한국의 문학사는 빛나는 영웅을 위하여 한 페이지를 할애해야 할 거다. 그런데 너는 어쩌면 네 전부일 수도 있는 문학을 여자와 바꾸는 희극을 연출하고 있다. 그걸 가정적이라고 자위하지 말라. 아아. 古人(고인)의 지당함이여! 香餌之下必有死魚(향이지하필유사어)라던가.”
  아무튼 나는 문학을 버리고 생활을 얻었다.
  이런 게 생활이라는 것일까? 이게 사람들이 말하는 단란한 가정의 정체였을까?
  태양은 하늘 한 복판에 박혀 마구 짖눌러 댄다. 그냥 뭐든지 떠올려 생각을 하지 않곤 견딜 수 없을 만큼 답답하고 가슴 터질 것 같은 분노와 피로감이 온 몸을 찍어 내린다.
  둘흔 내해엇고 둘흔 뉘해언고
  본디 내해마다란 아사날 엇디하릿고
  향이가 양품점으로 맞벌이를 하자고 했을 때만 해도 난 싫은 얼굴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부부라 할지라도 자기 세계는 서로 용납해 주어야 한다는 향이의 주장을 수긍했다는 거짓말은 하지말자. 오만원 안짝의 봉급이면 둘의 생활은 그럭저럭 꾸려 나갈 수 있었다. 향이는 왜 자기의 세계는 주장하면서 나의 세계는 인정하려 들지 않는가.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문지르며 아무데라도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수를 하려고 마당으로 내려서는데 갑자기 눈앞이 까매지더니 무수한 불티들이 아른거린다. 빈혈증이다.
  그러고 보니 이번엔 소간을 한 번도 먹지 못했다. 항상 여름을 무사히 나려면 두어근은 먹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여름은 이게 뭐냐.
  현기증이 가시자 잡았던 기둥을 놓고 수돗가로 갔다. 물은 미적지근하다.
  시원한 맛이라곤 먹고 죽을래도 없다.
  ‘덥다.’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니 정말 숨이 컥컥 막히게 더워온다.
  따라 나오는 고미를 안고 들어가며 걱정스레 묻는 옥이에게 양품점엘 간다고 일렀지만 정작 갈 곳은 없었다.
  이럴 땐 너댓살 난 아들놈이라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골목을 나오며 생각했다. 아동복 센터에서 제일 귀여운 옷을 사 입혀 하얀 구두를 신겨서 손목을 잡고 나서면 나도 어엿한 아버지가 될 꺼다.
  향이는 어린앨 가지고 싶지 않단다.
  우선 돈 좀 벌어놓고 내가 직업을 바꾼 후 생활이 안정되거든 낳아보잔다.
  어쩌면 향이는 나의 직업이 우리들의 아이에게 결코 자랑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궁극적으로 향이는 날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더위에 찌그러진 도시의 오후는 다른 때보다 훨씬 한가롭다. 가로수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시들하다.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 문방구에 들러 메모지를 한 권 샀다.
  향이를 알기 전엔 항상 뒷주머니에 메모지가 있었다. 때와 곳을 가리지 않고 메모를 했다. 해두면 언젠가는 소설에서 써 먹을 것 같은 기분에서였다.
  그리고 큰소리 쳤다.
  한국은 시시하다. 뉴욕 타임스 신춘문예는 나를 기다리고 있다라고.
  박선생이라도 불러내서 같이 한잔 하잘까. 허지만 나중에 취해버리면 난 향이가 귀가하지 않았노라고 고백해버릴지도 모른다.
  머리를 쥐어짜 봐도 가볼 곳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비로소 내겐 너무도 친구가 없었다는 사실이 명백해진다.
  아마 우림이 밀쳤던 이후 쭈욱 외톨이였다. 그러한 이유가 쉽게 향이의 친절에 말려들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장인 덕분에 취직을 했던 나는 결혼 후도 마찬가지였다. 내 또래의 젊은 선생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술이라도 한잔하자면 이상하게 올챙이가 떠오르며 싸늘한 경악감이 등줄기를 써늘하게 쓸고 내려갔다.
  몸을 사려 그들의 친절을 사양하고 허청허청 돌아오며 지득하게 못난 자신을 투덜거려 보지만 다음번에 그런 경우를 당하면 다시 전일과 같은 현상으로 사려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서른하나가 되도록 마음 털어 놓을 친구 하나 없다니.
  그 동안 무얼 하며 살아 온 것일까.
  가끔 휴일이 되면 쉽게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을 스쳐가게 된다. 언제부터 생긴 풍조인진 알 수 없지만 학창시절엔 그런 게 없었으니 과히 오래된 것은 아니리라.
  그들은 거의가 색깔 야한 모자를 쓰고 다닌다. 그 모자들은 머리를 보호한다든가 직사광선으로부터 얼굴을 보호한다는 용도로서가 아니라 배지를 달기 위해 쓰고 다니는 것 같다. 경우에 따라서 모자는 온통 배지로 덮여 있다. 추억이라는 보이지 않는 감정만으로는 자신이 지나온 산들을 기억하기엔 벅차기 때문이겠지.
  살아가는데도 그런 배지가 있었으면 좋겠다. 허나 난 몇 개의 배지를 가질 수 있을까.
  ‘등심구이 전문’이란 아크릴 간판이 나를 손짓한다.
  소주 한 병과 간천엽을 반근 가져오게 한다. 고소하다. 질겅거리며 소주를 찔끔거린다. 빈속이라서 취기가 알딸딸하게 오른다.
  질겅거리며 마음을 다진다.
  소설을 써야지. 향기가 뭐라고 해도 써야지. 끝장을 내자면… 오냐 내준다. 너와 헤어져서 다시 소설을 쓰겠다. 서른 한 살 만큼의 인생은 안다.
  서른 한 살 만큼만 쓰자. 내년엔 서른 두 살 만큼의 인생을. 내년 후엔 서른 세 살의 인생을 쓸 수 있을 거다. 십년 후엔 마흔 한 살의 배지를 보여줄 수 있을 거다.
  메모지를 꺼냈다.
  ‘서른 한 살의 의미’하고 쓰니까 그 다음엔 아무 것도 써지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끄적여 버린다.
  ‘갈 곳이 없어 낮술에 취해가고 있다.’
  속이 메식메식해 온다. 변소에 들어서자 방금 마신 것들이 거꾸로 나온다. 토해 버리고 눈물을 질금 거리며 벽에 기대 서있었다. 머리가 윙윙 한다. 빈혈증이 자기를 확인해 달란다.
  얼마간 그러고 있다가 손수건으로 입술과 눈물을 문지르고 의젓한 걸음으로 돌아온다.
  계산을 치르고 일어서려다 반도 더 남은 술과 안주를 보니 아깝다. 남은 술을 꾸역꾸역 마신다.
  토한 후라선지 소주 맛이 맹물이다. 병과 접시를 비우고 비틀거리며 일어선다. 나오는 길로 사방을 경계하듯 두리번거리며 택시를 부른다.
  아이들 눈에라도 띄면 언제 이런 낙서가 변소의 은밀한 귀퉁이에서 비웃음을 흘리게 될지 모른다.
  국어 선생 아무개는 낮 술도깨비다.
  “내리시죠.”
  그 사이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내려오니 양품점 가는 길목이다. 언제 이리로 가자고 했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체가 후들거린다.
  참. 향이는 어제 돌아오지 않았지.
  잠시 망설이다 양품점엘 들려 보기로 한다. 비틀거리려는 걸음이 신경에 거슬린다. 아랫배에 불끈 힘을 주고 천천히 뚜벅뚜벅 걷는다.
  쇼윈도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곁눈질한다. 바지가랑이를 훑어본다. 말짱하다.
  약방에 들려 정력 은단과 박카스를 산다. 박카스를 마시고 은단을 대중없이 입에 털어 넣는다.
  이만하면 술도 깨고 냄새도 가시겠지.
  은단을 우물거리며 양품점엘 들어선다. 향이는 여전히 없다. 미스 김이 기다렸다는 듯 반긴다.
  “휘경동 할머니가 여태 기다리다 잠깐 다녀오신다고 꼭 기다리라고 하시던데요.”
  능청을 떨어 보인다.
  “왜 그러실까?”
  “진작 오시라고 전화하려 했는데 휘경동 집 전화가 고장인 걸 모르겠대나요. 공중전활 하셨더니 방금 나가셨다구 해서 일루 오셨대요.”
  그러는데 장모가 땀을 뻘뻘거리며 포장지에 싼 상자를 들고 들어온다.
  “아이고 이 무딘 사람아. 자넨 방학이라면서 집에 좀 박혀있으면 못 쓰나. 그래 이 늙은이가 꼬옥 이렇게 찾아다녀야 되나?”
  “죄송합니다. 무슨 일이 생겼나요.”
  “무슨 일이 생겼나요라니. 그래 마누라가 돌아오질 않는데도 그렇게 태평스러울 수가 있나? 무를 수 있다면 딸년준 걸 도로 물렀으면 좋겠네.”
  그러나 장모는 결코 화난 얼굴은 아니다 뭔가 즐거운 비밀을 애써 감추는 표정이다.
  “뻔 한 거 아닙니까. 메뚜기가 뛰면 얼마나 뛰겠습니까. 휘경동이죠.”
  “여기서 이럴 때가 아니네. 가면서 이야기하세.”
  해는 아직도 각진 건물 꼭대기에서 퇴근하기 시작하는 인파들을 기웃거린다.
  “이게 뭡니까?”
  포장지 상자를 받아들며 물었다.
  “낸들 아나? 사위 구실까지 내가 해줘야 되겠나?”
  “아니 뭔데요?”
  택시에 오른 장모는 “아무리 무디다무디다 해도 자기 집사람 임신한 것도 모르다니”
  “네에?”
  귀밑이 화끈하게 달아 온다.
  “둘이다 똑같아. 살을 섞고 살면서 하는 부끄럽다고 말 못하고 다른 하난 말 안 한다구 모르구. 쯔쯔쯔.”
  “그게 정말입니까?”
  “5개월 째라네. 아침에 병원엘 다녀왔네. 먹구 싶어 할 것 같길래 나온 김에 귤 한 상자 샀다네.”
  “미역두 사야죠?”
  “애 낳고 미역 먹는 건 어떻게 아네 그려.”
  서른 한 살에 애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이른 건지 늦은 건지 도통 가늠을 못하겠다.
  향이는 대청에서 여성잡지를 읽다 머슥하게 웃는다.
  “난 공연한 걸 가지고 걱정했지.”
  “미안해요.”
  장모는 혀를 몇 번 끌끌차더니 선풍기 앞에 앉는다.
  “등물하세요. 덥죠.”
  “괜찮아.”
  “이렇게 흠뻑 젖었는데. 괜찮아요. 아버님 나가셨어요.”
  “그럼 해주겠소?”
  ‘누구 분부시라고요.“
  윗도리를 걷어 부치고 수돗가에 엎드렸다. 엎드린 채 힐끔 향이의 배를 본다.
  정말일까. 아무래도 거짓 같다.
  향이가 물을 끼얹는 바람에 흠찔 놀란다. 시원하다. 향이의 손은 매끄럽고.
  그렇다. 향이 앞에서 웃통을 벗고 있어도 흠이 안 되는 어엿한 남편이 되어있는 거다.
  “어제 장우림씨가 가겔 오셨더군요. 경자네 아직도 고미 형제가 네 마리나 남아있거든요. 그걸 팔아달라고 부탁하던 게 생각나서 떡본 김에 제사지냈죠. 이젠 완전히 장사꾼이 다 됐더군요.”
  수건으로 물기를 훔치며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여보. 나 당신 몰래 소설 쓸려구 했댔어. 그런데 지금 당신 보니까 써선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군.”
  어쩌면 서른 한 살이라는 나의 나이는 이렇게 저렇게 자꾸만 비겁해져 가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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