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朝後期(이조후기)의 寶物級(보물급) 大作대작)

佛敎繪書(불교회서)①
長谷寺(장곡사) 彌陀(미타) 後佛(후불) 幀畵(탱화)

  우리들이 절에 갈 때마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佛畵(불화)다. 따라서 가장 친밀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 이 佛畵(불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의 우리들은 그것을 볼 때마다 불쾌감을 갖게 되는 것이 솔직한 실정이다. 그 이유는 첫째로 강렬한 原色(원색)에서 오는 불안감 때문이며 둘째로 조잡한 그림의 선이나 구도에서 오는 정서적인 결함이고 셋째로 佛敎(불교)의 사상을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나온 생각의 결핍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것은 佛畵(불화)를 조금만 이해하려고 한다면 충분히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나 둘째의 이유는 朝鮮朝後期(조선조후기)에 범람했던 타락한 作品(작품) 때문에 생긴 인상이다.
  현재 남아있는 佛畵(불화)는 1백년 전을 전후한 작품들뿐인데 거의 格(격)이 낮은 畵工(화공)들의 作品(작품)이기 때문에 색감ㆍ선ㆍ톤 또는 구성 등의 처리에 圖式(도식)적이고 미숙한 점이 많아 대부분 우리들에게 불쾌감을 주고 있다. 이것은 우리 佛敎美術學科(불교미술학과)에서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셋째 이유는 불교사상을 조금만 이해하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佛畵(불화)는 불교의 사상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기 때문에 불교를 알지 못하면 이해 못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부처님의 설화, 부처님의 설법내용 또는 불교의 진리를 다소라도 이해한다면 우리는 불교회화를 좀 더 친밀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기 소개하고자 하는 佛畵(불화)역시 이조 후기인 숙종34년(1708)의 作品(작품)이어서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佛畵(불화)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들 중에 드는 것이지만 時代的(시대적)인 경화현상이 꽤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 佛畵(불화)는 阿彌陀如來(아미타여래)가 極樂(극락)에서 說法(설법)하고 있는 광경을 묘사하고 있다. 아미타부처님은 서방극락을 주재하고 있는 부처님이어서 이 부처님께 간절히 빌면 극락에 태어나게 해준다는 불교교리 때문에 어렵고 괴로운 서민들은 아미타 부처님을 열렬히 믿었던 것이다. 너무나 귀에 익은 나무아미타불은 아미타부처님께 귀의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이 불화는 중앙에 아미타부처님이 설법인을 하고 앉아있으며 좌우로 관음과 지장보살이 서있고 이 부처님과 보살을 호위하기 위하여 사천왕들이 있다. 불상의 상단부에는 보살과 天衆(천중)들이 묘사되고 있다. 말하자면 佛畵(불화)일반이 보여주고 있는 엄격한 좌우 대칭을 견지하고 있으면서 본존과 보살이 앉고 서는데 따라 변화를 주고 있으며 여기에 天部(천부)와 보살들이 변화 있는 구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線(선)은 활달하고 힘찬 筆線(필선)이 아니지만 그런대로 유려한 묘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시대가 시대인 만큼 얼굴이나 옷 무늬 등에서 경화되고 도식화된 것이 흔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색깔은 紅線(홍선)이 주조를 이루고 있는데 黑(흑)이나 靑色(청색)도 가끔 設彩(설채)되고 있다. 여기에 설채된 색은 임진왜란 전의 그 은은한 채색에 비하면 훨씬 떨어지지만 아직도 前代(전대)의 설채법이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 듯 광물질에서 나온 그 색감은 질감이 풍부한 것이다.
  하여튼 이 佛畵(불화)는 6×4m나 되는 거창한 幀畵(탱화)이며 시대도 1708년인 만큼 정말 희귀한 大作(대작)에 속하는 것으로 우리나라의 寶物級佛畵(보물급불화)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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