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퇴폐풍조 일소라 해서 장발족들이 홍역을 치르는 모양이다. 나 역시 퇴폐적 풍조를 일소하려는 의도에는 異議(이의)가 없지만 장발이 바로 퇴폐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데는 한마디 해야겠다.
  만약에 베토벤이나 슈베르트가 스포츠형 머리를 하고 作曲(작곡)하는 모습을 생각해 보라. 혹은 一國(일국)의 元首(원수)가 장발을 하고 공식석상에서 연설을 하는 모습이든지. 모두가 한 번 생각해 봄직도 하다.

  ○…얼마 전 국회에서 “장관도 장발이 아닌가?”하고 한 議員(의원)이 질문하자 K장관의 답변인즉 “의원여러분! 저는 원래 두상이 뒤가 보기 싫게 생겨서 머리를 길러야 합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그 답변의 意味(의미)를 생각해 보면 아마 ‘個性(개성)의 주장’이라는 현대적 감각에 맞는 쓸 만한 답변이리라. 다만 K장관이 장발 단속의 최고위 명령권자라는 사실이 씁쓸하지만.

  ○…여름방학에 캠핑을 떠났던 M군의 후일담 한 토막- 버스를 타고가다 검문소에서 장발로 지적하차를 당했다. 짐을 맡겨놓고 나와 ‘은하수’ 한 갑을 사다가 순경의 호주머니에 슬그머니 넣었더니, 순경 왈 “응? 으~응! 학생 덕에 잘 피우겠네. 여행 잘하게”하며 보내 주더란다. 글쎄 장발을 한 M군과 너그러운 순경과 누가 더 퇴폐적인지.

  ○…이건 S군의 경험담- 밤낚시를 갔다가 자가용의 헤드라이트 불빛 아래 낚싯대를 걸어 놓고 니나노판을 벌이는 점잖으신 분들을 보고 S군은 그저 ‘저 우아한 風流(풍류)!’하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단다. 제법 장발 축에 드는 S군은 희미한 캔데라 불빛아래 바스대를 노려보며 낚시보다 ‘지화자족’과 ‘장발족’과 누가 더 퇴폐인가를 비교하다 밤을 새웠단다.

  ○…입에 올리기 조차 부끄러운 삐뚤어진 동요가사 한 구절- “아버지를 찾으러 술집엘 갈까 어머니를 찾으러 댄스홀에 갈까?”- 대체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못하다할 염치가 있을까?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전 경찰력을 투입해 장발단속을 하기 전에 사회에 만연하는 불신과 부정을 먼저 일소하는 것이 순서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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