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일 교수의 독서산책
이제 한국사회도 에너지 자립과 지속 가능성에 대하여 더욱 진지하게 생각하고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할 때가 왔다. 지난여름 한 차례 정전사태를 맞으면서 전기에너지의 중요성을 새로이 인식하게 되었다. 이후 쏟아진 각종 대책은 공급측면에 맞추어져 있었지만, 훨씬 더 중요하고 지속가능한 대책은 수요측면에서 전기사용량을 얼마나 줄이느냐에 있다. 현재 도시와 건축 에너지수요의 50% 이상은 쉽게 줄일 수 있는데 바로 이런 에너지 수요축소가 지속가능건축과 사회가 추구해야하는 최우선과제이다.
파올라 사씨(Paola Sassi)가 쓴 지속가능건축에 대한 책, ‘Strategies for Sustainable Architecture’를 소개하고자 한다. 과거 신앙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현대 소비주의가 모든 문제의 뿌리이며 현대 윤리적 가치체계의 혁신 없이는 지속가능건축과 사회는 불가능하다.
사실 소비주의에 기반을 둔 모더니즘이 건축과 도시에 적용되어 산업 건축자재가 대량으로 사용되고 버려지는 사회구조의 문제는 바로 이 소비주의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이 책은 근대 도시건축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지속가능건축의 전략과 사례들을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곧 불어 닥칠 석유환란시대를 전혀 대비하지 않는 우리 사회와 건축을 변화시킬 수 있는 샘물을 공급하는 책이다. 지속가능건축을 위하여 먼저 도시 차원(Compact City)에서 설명한 뒤, 마을 차원에서 왜 마을이야말로 지속가능사회를 만드는데 핵심인가를 설명하고 있으며, 물리적으로 어떻게 이를 실현할 수 있는지를 밝힌다. 건축의 목적은 결국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므로 그 다음에는 건물거주자의 건강과 웰빙, 건축자재, 에너지, 그리고 물 문제를 건축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 책이 건축서적이라서 혹시 이공계 책인가 생각하는 분들은 글로벌 시대를 잘못 사는 사람들이다. 건축은 본시 시민을 위한 예술이므로 이 책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내용이 기술적 내용과 함께 섞여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은 대부분의 건축전공서적과 마찬가지이다. 이 책이야말로 기술적 차원의 주제를 문화적 차원으로 승화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전영일 교수
건축공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