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條理(부조리)ㆍ反抗(반항)으로 一貫(일관)된 作品(작품)

  ‘알베르ㆍ까뮈’-. 그는 프랑스 實存主義文學(실존주의문학)의 한 代表者(대표자)로 일컬어지고 있다.
  人間良心(인간양심)이 겪는 고뇌를 ‘까뮈’특유의 不條理(부조리)형식을 通(통)해 나타낸 獨白體(독백체)소설이다. ‘轉落(전락)’은 ‘까뮈’의 全(전) 작품을 흐르고 있는 ‘不條理(부조리)’- 즉 ‘페스트’에서 보여 지고 있는 反抗的(반항적) 인간의 行動(행동)에 비해 볼 때 보다 심오하게 人間深淵(인간심연)을 다룬 작품이다.
  主人公(주인공) ‘클라망스’의 방황을 通(통)하여 人間性(인간성)에 도사린 自笑(자소)와 後悔(후회)의 나락. 또한 良心(양심)의 필연적인 순응에 몸부림치는 한 人間(인간)의 모습을 赤裸裸(적나라)하게 우리에게 提示(제시)하고 있다.
  유능하고 우수한 변호사 ‘클라망스’는 언제나 남을 위하는 것을 樂(낙)으로 삼는 愛他的(애타적)인 人物(인물)이다. 어느 날 그가 파리의 세느江(강)의 다리를 지나갈 때 돌연 뒤에서 웃음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뒤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걷기 시작했을 때 또 한 번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는 겁에 질려 집에 돌아와 거울을 들여다본다. 놀랍게도 거울 속에 비치는 그의 미소가 二重(이중)으로 보인다. ‘까뮈’가 의미하는 ‘클라망스’의 웃음소리는 또 하나의 人間(인간), 즉 自己(자기)의 意識(의식)이었던 것이다.
  ‘클라망스’의 추락은 이 무서운 자기소멸的(적)인 비웃음 소리와 함께 전개되기 시작한다.
  2, 3년 전의 어느 날 그가 세느江邊(강변)을 지나가려할 때 投身自殺者(투신자살자)를 목격했으나 구원을 외면했던 기억을 그는 되살린다. 그리고 그는 말하는 것이다. “人間(인간)은 두 面(면)을 가지고 있어서 자기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또한 남까지도 사랑할 수 없다.”
  ‘클라망스’는 절망에 빠진 자기의 靈魂(영혼)을 파헤쳐 보이노라고 말하면서 지니기 괴로운 內心(내심)을 처절히 告白(고백)하기에 이른다.
  과거의 他人(타인)에 대한 善行(선행)도 결국 虛榮(허영)을 동반한 무서운 罪(죄)를 포함했다는 것을 깨닫고, 自身(자신)을 획득키 위하여 他人(타인)을 배격할 수밖에 없었던 ‘에고이즘’을 感知(감지) 절망에 빠져든다. 善行(선행)그 자체가 僞善(위선)이었다는 自覺(자각). ‘클라망스’는 獨善的(독선적)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惡(악)을 택하여 酒色(주색)에 빠져버린다. 잠재의식적인 悔悟(회오)의 自責(자책)이 그를 自己喪失(자기상실)의 함정 속에 빠뜨리고 마는 것이다.
  그는 또한 참회한다.
  ‘클라망스’는 이 영원한 상처가 自虐(자학)이나 自殺(자살) 따위의 도피적 방법으로는 해결될 수 없음을 너무도 잘 안다.
  그러면 神(신)은 이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

  까뮈는 여기에서 神(신)과 인간과의 함수관계를 냉철한 知性(지성)으로 제기하고 있다.
  그가 ‘씨지프의 神話(신화)’나 ‘反抗人(반항인)’에서 보여준 ‘不條理(부조리)’와 ‘反抗(반항)’은 그의 어느 作品(작품)에서나 그 저변을 흐르고 있는 주와 核心的(핵심적)인 요소이다.
  神(신)의 존재를 부정하여 급기야는 자신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제2의 찬스는 결코 없다고 체념하는 ‘클라망스’의 고뇌-.
  人類(인류) 原罪者(원죄자)인 아담이 유일한 찬스를 놓쳐버렸기 때문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이와 같이 ‘까뮈’는 인류의 原罪(원죄)만을 인정하고 있으며 인간존재를 모순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모순된 人生(인생)에 대한 명철한 인식’, 이것이 바로 까뮈를 充實(충실)케 했던 그의 일관된 작품 세계이다.
  ‘클라망스’는 자기와 같이 不條理(부조리)와 罪惡(죄악)에 함몰된 죄인의 구원자는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안다.
  ‘轉落(전락)’의 마지막에서 ‘쟝ㆍ파티스트ㆍ클라망스’는 과거 세느江(강)에서 목격한 女人(여인)의 亡靈(망령)까지 불러보는 철저한 나락 속으로 빠지고 만다. 이 얼마나 처절한 부르짖음인가. ‘쟝ㆍ파티스트’는 분명히 인류전체와 더불어 神(신)에게서 버림받은 ‘絶望(절망)’ 그 자체이다.
  그러나 ‘까뮈’는 이 ‘轉落(전락)’을 통하여 宗敎(종교), 人間(인간)의 神(신)에 대한 의지의 필요성을 도처에서 力說(역설)하고 있다. ‘不條理(부조리)의 나락’에서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참으로 새로운 宗敎(종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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