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산)이 부르는 季節(계절)이다. 가을은 흔히 男性(남성)들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好度(호도)에 다소의 差異(차이)가 있을진 모르나, 역시 甲男乙女(갑남을녀)에게 두루 신나는 계절인 것이다.
  단풍이 아우러지는 날이면 千態萬色(천태만색)으로 차린 가을 愛護家(애호가)들은 수려한 山(산)을 찾아 배낭을 짊어진다. 갖은 번뇌를 大自然(대자연)을 빌어 조해시키고, 사람들은 한층 가볍고 명랑해질 수 있는 것이다.
  빽빽하게 채운 봇짐을 풀면 主(주)멤버는 단연 소주병을 필두로한 술이며 쌀자루다.
  단풍의 樹海(수해)에 調和(조화)되어 제 나름의 솜씨로 지어낸 음식을 드는 맛이란 팔진미 오후청에 못지않을 것이리라.
  논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즐거운 것이다. 노는 데에도 값있게 노는 방법이 있다고 하면 반문할 이가 있을지도 모르나 明洞(명동)이나 鐘路(종로)바닥을 비틀거리는 건달들과는 다른 次元(차원)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저 유명한 李白(이백)이나 松江(송강)은 풍류에 남다른 매력을 느끼면서 후세에 빛나는 秀作(수작)을 남기지 않았던가?

  時代(시대)의 첨단을 걷는 초미니 아가씨들에 대한 시비, 장발족들에 대한 舌戰(설전)도 좋다. 침침한 다방 한 구석보다는 훨씬 폭넓은 話題(화제)를 펼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점심時間後(시간후)라든지 適當(적당)한 때를 잡아 討論(토론)이나, 座談時間(좌담시간)을 마련하여 젊은이들다운, 知性人(지성인)다운, 의사를 펼침이란 얼마나 의젓한 大學生(대학생)의 像(상)이겠는가? 그것이 곧 무질서 속에서의 질서요, 現代敎育(현대교육)의 課題(과제)인 學術(학술)의 生活化(생활화)일 줄로 안다.
  그렇다고 틀에 박힌 形式的(형식적) 意識(의식)(?)속에서 모처럼 즐기려면 기회를 망쳐서는 안 될 것이다. 노는 가운데에서도 우리의 修學(수학)하는 입장을 망각하지 말자는 것이다.
  四方(사방)은 차츰 가을기운으로 채워져 가고 있다. 비록 옛 화랑들에 미치는 풍류는 못되더라도 知性人(지성인)의 품위를 허물어뜨리지는 않는 가을놀이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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