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 부르는 듯하여 뒷산에 올랐다. 자연의 풍광이 초겨울에 이념의 햇발에 녹아들고 있었다. 사방 둘러친 산이 푸른 바람에 나부끼고 혈맥 같은 개울은 엎드려 흐른다. 여기 영원히 죽음을 부정하고 겨울처럼 理智(이지)에 넘치는 차가운 삶이 고동치고 있다.
  누렇게 뜬 숲 덤불 사이로 山寺(산사)의 채색된 벽이 아름답다.
  아! 하늘은 아스라이 멀고 思想(사상)이 쏟아지듯 풍성하기만 하다. 잠시 팔이 올라가서 다시 멈추어 섰다.
  저 앞엔 生命(생명)의 갈구 生(생)의 초월이 存在(존재)하는 듯하다. 그 너머엔 단조로운 임야가….
  生命(생명)에의 환희가 그 속에 약동하여 대자연의 숙연함을 자아낸다.
  저 멀리 눈 덮인 흰 봉우리들이 명멸하듯 애잔하다 인생은 죽음에 쫓기고 삶에 겨워하는 것이 아닐까.
  어떤 의미가 있을 수 있는가. 산등성에 나무하는 시골 소년들의 둥그런 나뭇짐이 보인다. 간간이 섞여 들리는 얘기 소리가 나를 십여년 전의 고향으로 이끌어가는 듯하다.

  노래는 공중 속에 퍼져가고 나는 여기에 방울져 있다. 뚝 떨어져 깨어지면 한 방울 내 몸은 어데 있을 것일까.
  죽음이 화려한 것도 삶이 구차한 것도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아니다. 안으로 안으로 몰입하여 존재의 근원을 재어보고 삶의 의의를 찾아 가지고 확 밝아진 세계에 꽉 차게 서보아야겠다.
  바람은 따갑고 차갑다. 나는 두 손을 뒷주머니에 밀어 넣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서성댄다. 아래쪽에서 이야기소리가 들린다. 나무하러 가는 아이들이다. 그대로 내려와 방에 들었다. 대중방이라 祭(제)를 지내러 온다. 사람들이 아랫목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한 처녀가 웃자 어머니인 듯한 여인이 웃는 것이 아니라고 타이른다. 공양을 처음 할 때는 거의 밥맛을 모른다. 우선 5분 정도의 偈(게)를 독하고 밥, 반찬 냄새를 맡으며 중생과 부처님에게 공양하는 마음을 다듬는다. 부산히 먹어 치우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러나 소리 나지 않도록 입을 다물고 씹어야 하며 허리를 쭉 펴고 앉아 입 벌리는 모양이 보이지 않도록 그릇을 높이 받쳐 먹어야 한다.
  사실 수련대회가 가장 진기한 것은 틀림없다. 오늘 저녁부터 용맹정진으로 밤새워 관음정근과 삼천배를 하게 된다. 發心(발심)하여 行(행)하면 참으로 즐겁고 부족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어떤 각오 없이 덤비다간 끌려가는 기분 고통스러움을 면치 못한다. 모두들 佛子(불자)답게 和合團結(화합단결)하여 즐겁게 수련하고 있으나 眞情(진정) 自身(자신)의 努力(노력)만큼 밖엔 거두는 게 없을 것이다. 수련의 특징은 자발적인 求道(구도)에 불타는 정열이 없이는 되지 않는 것이지만 한편 마음을 비우고 가벼운 마음으로 임할 때 가장 훌륭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산과 개울과 그리고 바람이 마음 안에서 끊임없이 의미를 창조하는 이곳엔 자비와 건강이 넘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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