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영혼을 어루만져주는 ‘흉터’의 임우성 감독

 

지난 달 스페인어권 최대 규모의 영화제인 산세바스찬 국제영화제에 영화 ‘흉터’가 신인감독 경쟁부문에 초청되어 영화계의 주목을 끌었다. 이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강렬한 이미지와 동양적인 신비로운 정서가 혼합된 수작(秀作)’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스페인에서 갓 돌아온 임 감독을 고즈넉한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우리대학 대학원과의 인연
임 감독은 우리대학 영상대학원 석사과정 영상영화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박사과정에 재학중이다. 그는 2008년 대학원에 진학한 후 영상미디어산업단에서 실시한 특성화 사업 시나리오 공모전에 응모하여 덜컥 수상하게 된다. 원래 2005년부터 영화 ‘채식주의자’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충무로영상문화사업단, 동국대학교 영상대학원에서 제작 지원을 받아 2009년 6월부터 영화 ‘흉터’ 촬영에 착수하게 된다. 대학원에서 학업에 열중하랴, 영화를 두 편이나 찍으랴 타이트한 일정을 소화하는 게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대학원에 등록함으로써 생활에 체계를 갖게 되어서 오히려 시간을 더 잘 활용할 수 있었고 대학원에서 배운 내용을 영화에 적용할 수도 있었다”라며 털털하게 웃어버린다.

 

 흉터를 지닌 두 남녀의 이야기
영화 ‘흉터’는 여류 소설가 한강의 소설집이자 제 25회 한국소설문학상 수상작인 ‘내 여자의 열매’에 수록된 ‘아기 부처’를 원작으로 하였다. 뉴스앵커인 완벽주의자 상협과 동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평범한 가정주부인 선희는 각자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러한 상처는 흉터로 남아 지워지지 않은 채 서로를, 그리고 자신을 짓누른다. 둘에게 숨겨진 비밀은 무엇이고 그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 가는지의 과정을 담담하면서도 서정적으로 그려냈다. “주인공이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하나하나 설명해주지 않아서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집중해서 들여다보면 영화 중간 중간에 힌트들이 있고 상징적인 소품들을 군데군데 배치해 두어 관객들이 스스로 이해하고 열린 해석을 할 수 있도록 했죠.”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는 감독
전작 ‘채식주의자’로 제26회 선댄스영화제 ‘월드시네마 드라마 경쟁’ 부문에 초청된 데 이어 두 번째 작품 ‘흉터’가 산세바스찬 국제영화제에 초청되는 영예를 얻었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영광이었고 가슴 벅찬 경험이었어요. 영화는 결국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기에 국적을 불문하고 통하는 보편적인 정서를 담고 있어요. 이렇게 영화라는 매체로 세계인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데에 기쁨과 보람을 느낍니다.”

저예산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제작했지만 촬영장 분위기는 굉장히 좋았다. 임 감독은 촬영 현장에서 배우들을 매섭게 다그치기보다 뒤로 불러서 조용히 얘기하는 편이다. 그만큼 배우들의 의사를 존중하고 의견을 나눔으로써 설득시키는 스타일이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예전에는 안 믿었었는데, 영화를 촬영하면서 그 말을 실감하게 됐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떤 방식으로든 기회가 주어지곤 하더군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고민하고 노력해 온 과정의 결과일 것이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인터뷰 내내 솔직담백한 태도를 취하면서도 영화와 일에 대해 얘기할 때는 진지하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영화는 종합예술이죠. 마치 오케스트라에서 모든 단원들, 악기들이 조화를 이루어 단순 합 그 이상의 것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인물, 대사, 연기 이외에도 미술, 음악, 의상, 색감, 구도 등 다양한 것들이 어우러집니다. 저의 역할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다고 할까요.”

그는 진정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즐기는 듯 했다. 지금껏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계속해서 자신의 길을 걸어 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그 자체를 즐기는 데 있다. ‘영화를 만들면서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심장이 두근거린다’는 그에게서 자신의 일과 작품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느껴졌다.

상업영화를 만들어볼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상업영화, 독립영화 구분 짓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단다.
말하고 싶은 이야기와 그 본질이 중요한 것이고 그에 따라 적합한 틀과 장르를 갖추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독립영화, 예술영화 등에 대해 뭔가 난해하고 지루할 것 같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마음을 열고 봐주었으면 한다.
오는 13일 개봉하는 영화 ‘흉터’를 통해 화려하진 않더라도 빼어난 영상미와 곳곳에 묻어난 섬세함, 가을에 어울리는 감성을 느껴보는 게 어떨까.

김유경 수습기자 audrey@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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