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세계인 혜초스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④ 부처님 열반하신 쿠시나가라

▲쿠시나가라 열반당에 모셔진 열반상
삶의 가장 신성한 부분은 대중 앞에 노출되지 않는 법이다.
그러한 부분을 가장 은밀한 구석에다 감추어 놓고 아무나 범접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인간 영혼의 분명한 본능이다. 오로지 영적인 열망을 가진 사람만이 접근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것은 인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신성한 것을 그 나라는 비밀로 감춰두고 있다. 감추어진 것을 알아내려면 수많은 탐색이 필요하다. 신비함을 넘어 비밀을 가진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에서 그 비밀을 풀어내보려 한다.

▲바라나시의 갠지즈강가에서는 힌두교들의 목욕이 이어진다.
인간세계에 빛을 주는 존재, 강가
인도사람들은 갠지스강을 강가(Gang-ga)라고 부른다. 갠지스 라는 이름은 영국인들이 영국식으로 부른 강가의 영어식 표현이다.
갠지스 강은 힌두교의 시바신을 상징한다. 갠지스 강은 바라나시를 가로지른다. 힌두교도들은 갠지스강을 성스러운 강으로 여겨 강에서 목욕하는 순례자가 많다. 하지만 갠지스 강에서 몸을 씻는 모든 사람들이 힌두교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불교인들 또한 그 수가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힌두교인, 불교인 등 많은 사람들은 왜 갠지스 강에 몸을 담그고 기도를 하는 것인가? 온갖 물질들이 떠다녀 물이 매우 탁한 강에 몸을 담그고 목욕 의식을 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힌두교인은 갠지스 강에 시바신이 있다고 믿고 또한 시바신 머리에서 나온 물이 강가 즉 갠지스 강이 되었다고 믿는다. 불교인들은 부처님의 사리가 갠지스 강 안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갠지스 강을 찾는다고 한다. 그들은 갠지스 강에 몸을 담그면 죄업이 소멸한다고 믿고 있다. 붓다, 즉 깨달아 해탈한 이로서 전법을 펼쳤던 그의 중요한 교설은 양 극단을 피하라는 것이었다.

“쾌락도 고행도 결코 깨달음을 주지는 못한다. 중도(中道)의 수행을 하라.”
붓다는 거듭 이렇게 강조했다. 그렇다면 갠지스 강에 죄업을 없애기 위해 갠지스 강 물을 떠다니며 고행하는 사람들은 무엇인가? 이와 관련해 많은 논쟁들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인도의 정신과 문화를 상징하고, 여러 신화와 종교로 쌓여있는 Ganga(갠지스 강)에 대한 믿음이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매우 크고 깊게 박혀있기 때문에 그들의 믿음과 의식을 막을 수 있는 길은 없다는 것이다.

갠지스 강의 매력에 이끌린 사람들
 
▲궁벽한 시골마을 쿠시나가라의 열반당 전경
어느 날 부처님께 가미니라는 젊은 수행자가 물었다. “여래여, 브라흐만들이 말하기를 저 성스러운 강가 강에서 목욕을 하면 아무리 많은 죄를 지은 사람도 몸의 때가 씻어지듯이 죄업이 다 녹아서 하늘나라에 이를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사실입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빙긋이 웃으시면서, “가미니야, 만약에 그들의 말이 맞다면 강가 강에 사는 물고기들이 가장 먼저 하늘나라에 나겠구나!”라고 말씀하셨다.
씻는다는 것은 청결이다. 이는 곧 종교적 의미로 연결된다. 서구의 카톨릭과 기독교도 세례(洗禮)의식을 갖는다. 죄를 용서받고자 하는 종교적 바램을 상징화한 의식이다. 하지만 부처님은 종교적 상징과 주술적 의미의 행동을 엄격히 분리해 이야기한다. 주술을 통해 죄업이 용서되는 것이 아니라, 참회와 선업(善業)의 축적을 통해 인연의 과보를 피하라 설파한 것이다. 너무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응답이었다. 불교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해주는 일화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지금까지 계속 갠지스 강에서 몸을 씻고 이를 신성하게 여기는 것일까? 갠지스 강의 매력에 이끌려 몸을 담근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들어보았다.  먼저 만난 사람은 보드카(Vodcaㆍ30세)로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신이다. 인도 여행 온지 두 번째라고.

Q. 갠지스 강에서 몸을 씻어 봤는가?
A. 5년 전에 강가에서 몸을 씻어 보았다.
Q. 몸을 씻을 때  느낌이 어땠나?
A. 정신적으로 영적인 느낌을 받았고 개인적으로 내 인생에 대한 믿음이 강해졌다. 또한 신이 내 안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정말 평화롭고 안정된 느낌이었다. 갠지스 강이 인도의 어머니라고 하는데 강가에 몸을 씻었을 때 정말 그 느낌이 뭔지 알 수 있었다. 
Q. 그렇다면 이번에도 또 갠지스 강에서 몸을 씻을 예정인가?
A. 5년 전에 갠지스 강에서 몸을 씻고 4일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이번 인도 여행은 신혼여행으로 왔기 때문에 여자 친구를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아 안 들어갈 예정이다.
Q. 갠지스 강의 매력은 무엇인가?
A. 다시 태어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갠지스 강의 첫 인상은 카오스 상태처럼 매우 혼란스러운데 그 가운데서 다시 태어남을 느꼈다.
다음으로 캐나다인 린다(Lynda · 26) 에게 물었다. 그녀는 혼자 여행하는 중이라고 했다. 인도 방문이 처음이라는 그녀는 갠지스 강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이야기를 이어갔다.
 
Q. 갠지스 강에 몸을 씻어 보았는가?
A. 그렇다. 물 속에 들어가지 않았을 때엔 갠지스 강의 진정한 의미를 몰랐다. 발부터 천천히 몸을 담그고 내 몸 전체를 담갔을 때엔 그동안의 내가 아닌 새로운 내가 다시 태어나는 느낌이었다.
Q. 갠지스 강을 보면 어떤 느낌이었는가?
A. 몸을 모두 담그고 나서인지 이젠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함과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다. 이곳은 매우 특이한 곳이다. 매우 종교적이고 전통적인 곳을 바라보고 있으면 신기할 따름이다. 또한 기도하는 사람들 때문인지 생각에 젖는 데 안성맞춤인 곳이다.

 갠지스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인터뷰를 통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갠지스 강에 몸을 담가 의식을 행한 목적은 인도의 문화를 체험하려고, 진정한 가르침을 얻기 위해서 등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더욱 깊숙이 들어가 본 목적을 물어보면 결국, 대답은 모두 같다. 그것은 갠지스 강이 주는 오묘한 느낌과 감동을 그대로 전달받으며 인도의 어머니인 갠지스 강을 통해 자기 자신들에게 채찍질을 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갠지스 강을 통해 성장통을 겪고 있다. 붓다는 실천과 경험을 통한 수행을 강조했다. 관념적이고 주술적인 수행이 아닌, 삶의 현장에서 자신을 들여다봄으로써 자각을 이루려 했다. 청년 혜초 또한 이러한 붓다의 가르침을 생각하고 기록하며 머나먼 여행길을 계속했을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소중하고 특별하다. 갠지스 강에서 몸을 담그며 자신의 새로운 인생 역사를 쓴 그들의 삶 속에 갠지스 강이라는 한 장소가 깊은 의미가 부여되어 마음에 새겨지기까지는 그 곳에서만이 가진 향수와 느낌을 진정으로 느낀 자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부처님의 열반지 쿠시나가라
"한 달 만에 구시나국(拘尸那國, 쿠시나가라Kusinagara)에 이르렀다. 부처님이 열반(涅槃)에 드신 곳이나 성은 이미 황폐화되어 아무도 살지 않는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곳에 탑을 세웠는데 한 선사(禪師)가 그곳을 깨끗이 청소하고 있다.
해마다 팔월 초파일이 되면 남승과 여승, 도인과 속인들이 그곳에 모여 크게 공양 행사를 치르곤 한다. 탑 상공에는 깃발이 휘날리는데, 하도 많아 그 수를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다. 뭇사람들이 함께 그것을 우러러보니, 이 날을 맞아 보리심을 일으키는 자가 한 둘이 아니다.

一月至拘尸那國
佛入涅槃處
其城荒廢 無人住也
佛入涅槃處 置塔 有禪師彼掃灑
每年八月八日僧尼道俗 就彼大設供養
於其空中有幡現 不知其數
衆人同見 當此日之發心非一

 수행 후 보드가야에서 얻은 깨달음을 사르나트에서의 설법을 시작으로 45년간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며, 고통의 나락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이끈 붓다.
고향을 향해 떠난 마지막 여행 도중에, 붓다는 쿠시나가라의 땅에 몸을 뉘인 후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붓다 입멸의 땅 쿠시나가라는 고락푸르의 동쪽 약 55Km, 현재 카시아로 불리는 마을의 근교에 있으며, 낡은 스투파나 승원 유적이 남아 있는 것 외에도 새로운 불교 사원이 세워져 붓다의 행적을 더듬는 순례자를 맞이하고 있다.

 성지 순례를 오는 사람들이 많아져 차츰 불교성지로서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지만, 아직은 궁벽하고 조용한 시골마을이다. 사방은 풀밭이거나 사탕수수 밭이었다. 쿠시나가르는 붓다의 생애와 관련되는 4대 성지의 하나다. 붓다는 열반을 앞두고 이 작은 시골마을에서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긴다. “모든 것들은 무너지게 마련이다. 부지런히 정진하라.” 그의 유언은 간결했다. 붓다가 생존할 당시에도 이곳은 궁벽한 시골이었다. 마라족(族)이 살았고 사라쌍수(沙羅雙樹)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두고 열반에 들어간 붓다를 화장(火葬)한 곳이기도 하다. 현재 5세기경의 것이라고 하는 거대한 열반상을 안치한 열반당(涅槃堂)이 있다.  열반당에 맨발로 들어가니 이 건물 안에 길이 6m 남짓 되는 붓다의 거대한 열반상이 안치되어 있다. 얼굴과 발만 남겨두고 황색 가사로 덮여 있다. 5세기 경에 조성된 것으로 이 근처 강바닥에서 발굴 보수하여 열반당에 모신 것이다. 이외에도 주변에 부처님 다비처인 라마바르 대탑, 마지막 설법지 마타쿠아르 사원 등 유적이 있다.

방혜정 기자 bhj9154@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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