能(능)의 脚本佛敎的(각본불교적)

  우선 우리나라 탈춤과의 비교고찰은 뒤로하고 이들 ‘能(능)’의 역사를 본다면 성립 당초부터 그들 神樂系(신악계)인 猿樂(원악)ㆍ田樂(전악)을 위시하여 印度(인도)와 隨唐間(수당간)에 있었던 大陸系(대륙계)의 伎樂(기악)ㆍ舞樂(무악)ㆍ散樂(산악)등, 그리고 그들의 俗樂(속악)이라 일컫는 曲藝(곡예)ㆍ幻術(환술)ㆍ滑稽戱(활계희), 또 그와 연원을 같이 하지만 弄劍(농검)ㆍ三童重立(삼동중립)ㆍ猿樂通金(원악통금)ㆍ獅子舞(사자무)등과 같은 순수한 그들自體(자체)의 놀이였다고는 할 수 없는 民俗的(민속적)놀이가 있다. 그러나 20世紀(세기)에 해당하는 그들 平安朝(평안조)까지도 아무렇게나 演戱(연희)되던 이들 놀이는 平安末期(평안말기)에 와서야 당시 유행하던 說唱體(설창체)의 노래와 더불어 춤을 가미하게 되고 13世紀(세기) 鎌倉朝(겸창조)에 들어 亂舞(난무)와 答辯(답변)이라고 하는 두 가지 形態(형태)의 藝能(예능)으로 歸屬(귀속) 同和(동화)하여 갔던 것이다.
  現在(현재)의 能樂(능악)은 이중 亂舞(난무)에서 그리고 能樂(능악)과 언제나 같이 同伴(동반)하는 狂言(광언)은 이 答辯(답변)에서 起源(기원)한다. 答辯(답변)은 여기서 論外(논외)로 하거니와 그들 亂舞(난무)는 前記(전기) 滑稽戱的(골계희적) 猿樂(원악)에 가무적 要素(요소)가 가미된 일정한 曲(곡)과 순수한 歌舞(가무)로 노래에는 今樣(금양)과 朗詠(낭영)이 따르고 때로는 讀經(독경)이 따랐으며 舞(무)에는 萬才樂(만재악)과 白拍子舞(백박자무)에 때로는 巫女舞(무녀무)와 師藝(사예)가 따랐었다고 傳(전)한다.
  허나 이때까지도 그들은 아직 ‘能(능)’이라는 名稱(명칭)을 使用(사용)하지는 않았다.
  十四世紀(십사세기)에 들어와 비로소 能(능)의 完成者(완성자) 觀阿彌(관아미)와 世阿彌(세아미) 父子(부자)를 맞이하고, 이들 代(대)에 와서야 그들 演能(연능)은 더 한층 演劇(연극)으로 深化(심화)되었고 처음으로 藝能(예능)의 意義(의의)를 究明(구명)하려 했으며, 이들 두 父子(부자)의 禮論書(예론서)만도 數十種(수십종)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이들 두 父子(부자)는 能(능)의 謠曲(요곡)(脚本(각본))作家(작가)로서 처음 能樂(능악)을 完全(완전)한 舞臺藝術(무대예술)로 成長發展(성장발전)시킨 사람들이었다.

  世阿彌(세아미)는 그들 傳來藝能(전래예능)을 정의하여 ‘藝能(예능)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 上下(상하)의 區別(구별)없는 壽福增長(수복증장)의 기틀’이라 말하고 그 起源(기원)을 소위 日本人(일본인)의 開國神(개국신)이라 일컫는 天照神(천조신)에 두고 있다.
  現傳(현전)하는 翁面(옹면)중 稻經(도경)ㆍ代經(대경)ㆍ父助翁面(부조옹면)이 있는데 그 또한 재미있는 것은 이들 天照神話(천조신화)의 佛敎思想(불교사상) 역시 그들 能樂面(능악면)에 원용한 사실이라 말할 수 있다.
  이 翁面(옹면)의 形象(형상)은 佛敎(불교)에서 말하는 法(법)ㆍ報(보)ㆍ應(응)의 뜻인 釋尊(석존)ㆍ文珠(문주)ㆍ彌勒(미륵)의 像(상)을 본 딴 것으로, 後日(후일) 稻經翁(도경옹)은 天皇卽位(천황즉위) 儀式時(의식시)에 볼 수 있는 農耕(농경)의 繁榮(번영)을 비는 田(전)무의 田主翁面(전주옹면)이 그것이다. 代經翁(대경옹)은 조정에 從俗(종속)하길 誓約(서약)하는 壽詞(수사)의 年長者(연장자)의 面(면)이며, 父助(부조)는 또 代經(대경)의 아들로서 2代(대)의 老翁(노옹)이 나와 家門(가문)의 繁榮(번영)과 子孫繁昌(자손번창)을 노래하는 老翁面(노옹면)으로 되었으니 실로 기피하기 이를 데 없다.
  이렇듯 그들의 藝能史(예능사)를 두고 볼 때 그들은 神話(신화)를 創作(창작)하여 神樂(신악)을 奏(주)하고, 또 豐農(풍농)을 祈願(기원)하던 農耕儀式(농경의식)인 田樂(전악)ㆍ그 외 外來樂(외래악)인 技樂(기악)ㆍ舞樂(무악)ㆍ散樂系(산악계)의 曲藝(곡예)와 幻術(환술)까지 넣어서 다시 民衆的(민중적)인 樂(악)ㆍ舞(무)를 加味(가미)하여 이를, 보다 深化(심화)하고 다져서, 그들의 藝能(예능)으로 發展(발전)시킨 데는 君主(군주)와 貴族(귀족)ㆍ僧侶(승려)와 平民(평민) 區別(구별)없이 壽福增長(수복증장)에 그 意義(의의)를 살려왔기 때문이며, 또 그들 民族信仰(민족신앙)을 여기에 묶어 나가는데 成功(성공)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 한 예로 내가 昨年(작년) 8月(월) 奈良十津川(내양십진천)을 갔을 때 그날은 마침 盆祭(분제)가 있는 날로, 마을과 마을에서는 그 날을 즐기려 밤을 새워 가면서 男女老少(남녀노소) 地位高下(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나와 춤추고 노래하며 즐기고 있었다.
  이곳은 奈良縣(내양현) 吉野郡(길야군) 十津川(십진천) 部落(부락)으로 奈良(내양)에서도 버스便(편), 7ㆍ8時間(시간)이나 걸리는 무서운 외진 山中(산중)마을로 아직 都市(도시)와는 다른 본고장 그대로의 춤과 놀이를 즐길 수 있다는 벽지村(촌)이었다.
  허나 이곳은 예로부터 京都文化(경도문화)를 받아들여 말이 곱고 人心(인심)이 순후할 뿐 아니라 그네 固有(고유)의 춤과 놀이엔 그 옛날 日本演能(일본연능)의 고유한 춤과 놀이의 一面(일면)을 엿볼 수 있는 데로써 이곳 인근마을인 小原(소원)ㆍ武藏村(무장촌) 함께 傳統藝能保存會(전통예능보존회)가 있고 近間(근간)에 비로소 이 方面(방면) 硏究家(연구가)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고장이다.
  그러나 이곳 土俗的(토속적)인 춤과 놀이들도 지극히 單調(단조)로운 것이기는 하였으나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男女老幼(남녀노유) 할 것 없이 한데 어울려 춤추는 것을 보고 나는 어떤 그 民族(민족)의 信仰(신앙)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은 한 部落(부락), 나아가서는 한 民族全體(민족전체)를 結束(결속)시켜 갈 수 있는 쉬운 춤으로 모두 一般化(일반화)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 單調(단조)로운 춤과 娛樂(오악)ㆍ遊戱(유희)는 一般化(일반화)되고 또 그리 되기 쉬운 어떤 民族的(민족적) 情感(정감)속에 오래 오래 지속되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 우리에겐 民俗藝術(민속예술)의 整理(정리)는 물론 演劇史(연극사)의 整理(정리)도 시급하다. 우리의 傳統劇(전통극)으로 현존하는 탈춤(假面劇(가면극))은 그 나름대로의 意義(의의)와 問題性(문제성)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民族全體(민족전체)의 信仰(신앙)과 歷史(역사)를 묶는 內容(내용)의 貧困性(빈곤성)을 지적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현존하는 우리의 고유한 民俗舞踊(민속무용)과 민속오락 그리고 傳統的(전통적)인 궁중歌舞(가무), 雅樂(아악)과 같은 것은 그들이 도저히 따를 수 없는 멋과 神技(신기)가 있어 日本(일본)의 傳統的(전통적)인 그 어떤 藝能(예능)도 한 부분 別(별)로는 도저히 따를 수 없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우리의 전통극은 민족적 信仰(신앙)이 결여되고 우수한 樂(악)과 舞(무)를 도외시한데 원인이 있고 그대로 野外(야외) 놀이로 방치하여 藝術(예술)다운 철학적 연구가 결핍된데 중요한 원인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假面劇(가면극)은 어느 것을 보아도 그것에는 아직도 呪術的(주술적)인 一面(일면)과 조잡한 猥說的(외설적) 要素(요소)가 그대로 있어 劇的本然(극적본연)의 연구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學的(학적)연구의 대상이 반드시 좋은 연극일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日本(일본)의 能(능) 뿐만 아니라 그들의 많은 民俗藝能(민속예능)도 現代(현대) 젊은 世代(세대)들의 환영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 가면극의 일종이라 할 수 있는 能(능)은 世阿彌(세아미)이래 오랜 歲月(세월)을 두고 그들에겐 벌써 극인본 本謠(본요)와 연출, 演技(연기)이론서가 수 없이 나와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謠本(요본)은 그들 貴族階級(귀족계급)이었던 將軍大名(장군대명)들이 使用(사용)하던 우아하고 品位(품위)있는 말을 使用(사용)하고 이들 精神文化(정신문화)의 背景(배경)이 된 佛敎思想(불교사상)이 그 根底(근저)를 이루고 있다.
  能(능)의 脚本(각본)을 그들은 謠曲(요곡)(謠本(요본))이라고 이름하나 觀世父子(관세부자) 이래로 현재까지 헤아릴 수 없는 많은 謠本(요본) 중 아마 열에 아홉은 佛敎(불교)의 인과응보를 다룬 作品(작품)이거나 아니면 그 바탕에는 모두 佛敎的(불교적) 색채와 요소를 담고 있다.

  世阿彌(세아미)가 그의 아버지인 觀阿彌(관아미)의 模倣第一主義(모방제일주의)를 뒤엎고 幽玄第一主義(유현제일주의)를 취하여 간 데도 그 원인이 있었다 할 것이다.
  그들 役者(역자)(俳優(배우))의 動作(동작)하나 하나에는 그야말로 佛敎(불교)에서 말하는 禪(선)의 動作(동작)이 있고 앞에 말한 稻經代經(도경대경)ㆍ父助(부조)등 翁面(옹면)이 釋尊(석존)과 文珠(문주)와 彌勒像(미륵상)을 본땄다함도 우연히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때문에 幽玄(유현)하고 審美(심미)로운 動作(동작)과 內容(내용)으로 움직이는 가면에는 보다 많은 의미와 생각을 갖게 된다. 陰影(음영)과 陽光(양광)의 變化(변화)에 따라 假面(가면)의 의미가 바뀌는 것이 아니요, 役者自身(역자자신)의 마음가짐과 분위기에 따라 의미를 주는 것이라고 보아야겠다.
  假面(가면)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나는 近間(근간) 우리나라 現代(현대) 創作劇(창작극)에서 가면을 쓴 많은 사람들이 나와 上下左右(상하좌우)로 고개짓을 하며 이 表情(표정)의 變化(변화)를 봐주시오 하는 것과 같은 몸짓을 보고 정말 苦笑(고소)를 금치 못한 일이 여러 번 있다.
  能(능)은 假面劇(가면극)도 있고 假面劇(가면극) 아닌 能(능)도 있다. 내가 본 能(능)중에서는 ‘歌占(가점)’과 같은 能(능)에는 役者全員(역자전원)이 가면 없이 素面(소면)으로 등장하는 能(능)도 있었다. 能(능)에 있어 ‘直面物(직면물)’이란 이것을 말한다. 까닭에 能(능)은 완전 假面劇(가면극)일 수는 없다. 이것이 우리 가면극과는 다른 점이다. 이들 能(능)의 경우는 例外(예외)도 있긴 하지만 神物(신물) 또는 鬼畜物(귀축물)의 경우 다시 말하자면 作中(작중)인물 중 神的存在(신적존재)인 亡魂(망혼) 내지는 幽靈(유영)과 같은 存在(존재)가 아니고서는 가면을 쓰지 않는다. 탈은 현세의 人間(인간)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쓰면 意義(의의)가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점은 더욱이 作品(작품)과 演能(연능)의 幽玄審美性(유현심미성)의 效果(효과)를 培加(배가)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山臺(산대)놀이나 鳳山(봉산)탈춤, 그 밖에도 많은 假面劇(가면극)에 있어서 그 役者(역자)들은 전원 假面(가면)을 쓰고 나와야 하는 것 같이 되어있으나 나는 이 點(점)에 있어서도 疑問(의문)을 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民俗(민속)탈춤은 모두가 그 내용이 비슷하다. 그들 能(능)의 경우 作品(작품)은 무수하며 素材(소재) 또한 多樣(다양)하다.
  그리고 이들 演技(연기)의 특징으로는 寫實性(사실성)을 배제하고 지극히 유연한 추상의 極致(극치)를 이루는데 있다. 이들의 扮裝(분장)과 形態美(형태미)를 나타내는 데도 世阿彌(세아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老體(노체)에는 閑心遠目(한심원목), 女體(여체)에는 體心捨力(체심사력), 軍體(군체)에는 力體心碎(역체심쇄)라고, 뿐만 아니라 그들은 슬픔을 表現(표현)할 때 손을 들어 面前(면전)에 가져가면 울고 있다는 默契(묵계)가 성립된다. 여하간 손을 面前(면전)에 대어서는 아니 된다. 이러한 많은 規制(규제)와 約束(약속)은 그들 특유의 約束(약속)이고 演技上(연기상)의 規制(규제)로 남아오고 있고 또 持續(지속)되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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