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2년 전 쯤, 한양대 교수가 써서 화제가 됐던 ‘너희에겐 희망이 없다’는 시종일관 20대를 질타한다.

20대는 저항하지 않고, 그래서 만만해 보이며, 20대를 옥죄는 작금의 상황은 다 스스로 자초한 거라는 것. 심지어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난다.

“너희는 안 된다. 뭘 해도 늦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도 20대를 비판하는 글들은 차고 넘쳤고, 이제 40대가 된 과거 386은 한동안 20대를 안주삼아 술을 마셨다. 하마터면 공감할 뻔했다.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은 다들 화려한 학생운동의 경력이 있는 반면, 지금의 20대를 보면 저항의식 같은 게 별로 느껴지지 않으니 말이다.

이런 류의 20대 비판에서 문제가 되는 건 그게 시대착오적이란 거다. 원래 대학생의 본분은 고급 학문의 연마. 80년대 대학생들이 책 대신 짱돌을 들었던 것은 사실 정상적인 게 아니다. 물론 그 시절 대학생은 일종의 특권계급으로 그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이 뒤따랐고, 그들은 독재타도라는 시대적 사명을 훌륭히 수행해 냈다. 반면 이명박 정부는 어찌됐건 선거를 통해 집권한 합법적인 정권, 그들이 짱돌을 들었던 이유가 뒤 세대들이 다른 걱정 안하고 공부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거였다면, 지금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서는 대신 열심히 공부하며 스펙을 쌓는 건 오히려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취업 문제도 있다. S 대학 생물교육과에 다니는 학생은 “나중에 선생님 되겠네요?”라는 내 말에 이렇게 대답한다.

“서울에선 과학교사를 매년 한두 명밖에 안뽑아요. 그런데도 지원자가 300명씩 몰려요. 그래서 전 교직 말고 다른 길을 찾아보려고 해요.”

과거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갈 수 있었던 건 굳이 공부에 목을 매지 않아도 얼마든지 취업이 가능했던 것도 이유가 되지 않을까? 게다가 도전정신이 필요할 때는 사회가 급변하는 시기, 여러 기업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했던 70, 80년대와 달리 지금의 한국 사회는 이미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표백이라는 소설엔 이런 말이 나온다.

“과거 세대들은 민주주의라든가 자본주의 정착 같은 중요한 역사적 과업도 이미 달성했다...그 다음에 나오게 될 이슈들은 한 세대의 과업이 되기에는 지나치게 사소한 것이리라. 그래서 이 세대는 큰 꿈을 가질 수 없게 됐다.”

그러니까 20대를 질타하는 소위 ‘20대 절망론’은 그저 “나 옛날에 이랬어”라며 으스대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정권에 대항해 화염병과 돌멩이를 던졌다는 찬란한 기억을 갖고 있는 그들 입장에선 “등록금을 깎아 달라”고 외치는 게 고작인 지금의 20대가 한심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상의 문제에서 이슈를 찾아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도 중요한 일이고, 등록금 투쟁에서 보듯 지금의 20대는 나름의 임무를 아주 잘 수행하고 있다.

사정이 이럴진대 20대를 나무라는 게 취미가 된 40대들은 대체 왜 그러는 걸까? 이 사회를 사람이 살기 힘든 곳으로 만든 주범이 자신들이라는 걸 20대가 눈치 챌까봐 그러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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