座臺(좌대)는 9世紀(세기)의 典型的(전형적) 樣式(양식)

  불교조각 ③

  우리나라 불교조각은 8세기의 극성기를 지나 9세기로 들어서면 그 양식이라던가 사상 등도 변하게 된다. 말하자면 부처님의 모양이 변하는 것은 그 사상이 변해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8세기는 彌陀思想(미타사상)이 우세하여 彌陀佛(미타불)이 많이 조성되었는데 그 양식은 장대하고 숭고한 理想主義(이상주의)경향이 짙은 반면에 9세기의 불상은 밀교적인 영향을 받아 비로자나佛(불)이 많이 조성되었고 그 양식은 보통 사람에 근사한 사실주의 등을 띄고 있었다.
  여기 소개하는 불상은 똑같이 忠北(충북) 속리산 법주사에서 옮겨온 9세기의 전형적인 돌로 된 불상이다. 원래 廢佛(폐불)이 되어 묻혀 있다가 부서진 곳은 약간 손질하여 진열해 놓았더니 아주 훌륭한 부처님이 되었다. 죽었던 부처님이 생생히 再生(재생)된 佛敎彫刻(불교조각)이라고나 할까.

  사진은 대좌와 광배를 모두 갖추고 있는 완전한 불상인데 광배에 손상이 심하고 머리가 좀 깨어졌을 뿐 옛 그대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얼굴은 사각형적으로 넓적한데 여기에 코와 눈썹은 그 선을 매우 굵고 명쾌하게 처리하였고 눈은 좀 부은 것처럼 한데다 입술은 작고 미묘하게 하여 전체적으로 부지불식간에 은근한 佛(불)의 미소가 번지게끔 되어있다. 목을 짧게 하고 어깨를 반듯하게 했으며 신체에 볼륨을 주지 않아 어느 스님이 딱딱한 자세로 참선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옷은 아주 얇은데 平行式(평행식)으로 옷 주름을 표시하였고 띠 장식 같은 것은 좀 번잡스럽다. 바른 손은 내리고 왼손은 무릎 위에 손바닥을 편 향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부처님은 대개 손 모양을 짓는데 따라 그 이름이 다르고 그 뜻이 다른데 이런 손모양은 부처님이 깨닫(成道(성도))했을 때 마음의 번뇌나 욕망(소위 魔軍(마군))을 항복 받던 그런 손모양이다. 따라서 이런 손모양은 보통 석가모니 부처님의 손모양이지만 이 불상이 과연 석가부처님의 상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좌우에 모시고 있던 보살로 판정 지을 수 있지만 그런 보살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불상조각은 딱딱하고 굳은 자세를 나타내고 있지만 얼굴의 미소와 명쾌한 선의 처리에서 逸品(일품)의 솜씨를 보여주는 불상이라 하겠다.
  특히 이 불상이 앉아 있는 台座(태좌)는 上(상)ㆍ中(중)ㆍ下(하)의 3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上台(상태)는 둥근 모양으로 연꽃을 2중으로 그것도 매우 화려하게 새겼으며 중간은 8角(각)인데 각 面(면)에 여덟 분의 佛(불)ㆍ보살이 조각되어 있고 下(하)는 複辨(복변)(꽃잎이 두 갈래 될 것)의 연꽃과 그 아래 8각의 각 면에 사자 같은 동물상을 새겨 놓았다. 보다시피 화려하고 섬세하여 번잡스럽기까지 한 좌대인데 이것 역시 9세기의 전형적인 양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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