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고은의 독서산책

이야기는 아버지와 열세 살 아들이 대관령 아흔아홉 굽이를 걸어 강릉 할아버지 댁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진행된다.

차로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를 굳이 걸어서 통과한다는 사실에 아들은 이상하게 설레서 신발끈도 고쳐 맨다. 그들은 차를 타고 대관령 한 복판에 내린 다음, 거기서부터 몇 시간을 내리 걷는다. 그 여정은 ‘대화’ 라는 것에는 조금 어색했던 부자지간을 살갑게 만든다. 일단 몸이 먼저 움직인다. 아버지의 눈이 바빠진다. 어린 아들이 산길을 잘 건너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절로 돌아보는 아버지는 혹여나 어린 아들의 발이 돌부리에라도 걸리면 반사적으로 손을 내민다. 아들은 아버지가 밟고 지나간 자리를 믿고 밟는다. 대관령옛길이니 호흡도 마음도 청량해진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해야 제대로 대화하는 것인지 그 줄기도 뿌리도 알 수 없었던 아버지와 아들을 길 위에 세워놓기만 했을 뿐인데, 발이 걷는 것처럼 말도 절로 걷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길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이 길에 얽힌 추억이나 유래에 대해서. 나무와 풀꽃 이야기를 하고, 한두 굽이쯤은 아무 말 없이 걷기도 한다.

“아마 앞으로 너는 이 길을 지나다닐 때마다 네가 자란 만큼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아이다움을 이 길섶 어디엔가 하나씩 하나씩 잃어버리게 될 거야. (중략) 그건 네가 피터팬이 아닌 이상 아무리 안 잃어버리려고 노력해도 저절로 잃어버리게 되는 거란다. 그걸 하나씩 잃어버릴 때마다 알게 모르게 조금씩 감정도 무뎌지고, 그러다 70번이나 80번쯤 이 고개를 넘나드는 동안 아이다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 어른이 되었을 땐 지금 네 눈에 보이는 어른들처럼 너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 때로는 냉담해지기도 할 테고, 때로는 무뚝뚝해지기도 할 거야.”
“어른이 그런 거라면 저는 어른이 안 될 거예요.”
“그런데 어른은 되고 싶다고 해서 되고 안 되고 싶다고 해서 안 되는 게 아니잖니.”

열일곱 굽이를 넘으면 열여덟 굽이가 오고, 열여덟 굽이를 넘으면 열아홉 굽이가 오는 것처럼, 아이도 언젠가는 어른이 될 것이다. 아버지가 말해준 어른의 세계는 어쩐지 쓸쓸할 것도 같지만, 아이는 아버지의 그 다음 말을 기억할 것이다. 아버지는 어른이 되어 잃어버린 것들은 다시 찾고자 마음을 먹는다면 금방 다시 마음속으로 돌아온다고 말해주었던 것이다. 이상하게도 다른 거리나 길에서는 그 잃어버린 것들을 찾을 수가 없어서, 아버지는 꼭 이 고개로 오는 거라고. 대관령 아흔아홉 굽이를 넘는 동안에는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잃어버린 것들이 다시 마음속으로 들어온다고. 그가 어릴 때의 기억이 남아있는 길이기 때문에.

아버지는 성숙에 대해 말하고 있다. 커간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 성숙은 노화의 다른 발음이다. 두 살 아이를 보고 한 살 아이보다 늙었다고 말하지 않지만, 그 방향에 있어서는 자란다는 것도 노화와 다름이 없다. 아버지는 아들보다 조금 더 앞에 걷고 있는 인생의 선배고, 아직 아들이 가지 못한, 그러나 자신은 지나온 길들에 대해 말해준다. 이 소설이 아름답고 건강했던 이유는 그 담담함 때문이다. 탈무드의 조언처럼, 아버지는 아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준다.

아버지와 아들은 걷고 또 걷는다. 저 하늘에 밤별이 뜰 때까지, 그리고 저만치 고향집이 나타날 때까지. 처음에는 하나씩 굽이를 세던 아들도 어느 틈엔가 몇 굽이인지 헤아리는 것을 놓치고, 어느새 아흔아홉 굽이의 끝자락을 통과한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