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수면을 붉게 물들이고 태양이 그 웅장한 자태를 나타내려 할 때면 벌써 긴 밤의 정적은 깨어지고 세상은 또다시 수런거린다.
  또 하루가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시작된다는 반복. 그러나 싫증을 느낄 수 없을 만치 내게는 할 일이 많은가 보다.
  언제부터인가, 현대는 그들 자신을 잃어가고 겉치레에 급급하며, 기계적이고, 무표정하게 되어버린 것 같다.
  나도 거기에 뒤섞이어야 하는데 그들과는 다른 의미에서, 나를 잃지 않아야 한다고 나는 이제 막 깨끗한 발돋움을 시작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삶의 의미를 진정 깨우치려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절실한 젊음의 자랑스런 본능이 아닐까?
  어떤 인간 본연의 뒤안길에서 허탈한 작은 소망을 붙잡고, 때로는 순간적인 고통 때문에 조상이 남긴 그들 자신을 원망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목적조차 잃은 그들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때 묻은 그들이, 체념하는 그들이 자꾸만 미워져 간다.

  내부가 마구 썩어가는 현대의 환자들이 득실거리는 기다란 어둠의 연기 속-.
  그 숨찬 생존의 안간힘.
  꼭 필요한 때만의 웃음소리들.
  어쩜 그들은 깊이를 알지 못한, 한순간의 위대한 패배자를 연상케도 하는데, 삶은 공을 낳아 다시 공은 삶을 낳는 계절의 의미가 미소로 짙어갈 때, 멜랑꼴리한 표정들이, 음산하기만한 행렬들이, 홀로 서 있는 빗속의 아픔보다도 더 연면한 슬픔의 씨앗을 뱉어놓게 하는데, 다른 세계의 내가 아닌 내가 바로 어른이 되고, 그들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을 각박해진 세상 속에 자라온 부산물인 것이라고 한 가닥 동정을 던져주면서 나만은 진실한 소망과 알찬 노력으로 삶의 의미를 배우고 싶은 것이다.
  이제 오랜 숙원이던 사슴을 닮아 영롱한 눈빛으로 보람되고픈 마음에 내 존재의 의미를 자랑되게 하고픈 마음에, 성스러운 마음으로 내 잃어버린 한 짝을 찾아, 기쁨을 찾고, 보람으로 하루를 살며 해말갛게 살겠다고 다짐하는 나는 현실에 너무도 어긋나는 사치스러운 마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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