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國(미국) ‘하크니스’團(단)으로 살펴본

  現代(현대)의 위기의식은 무엇을 말함인가? 純粹(순수)와 非純粹(비순수)의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는 아프도록 우울하다. 때문에 自由(자유)와 이 자유에의 몸부림인 藝術(예술)은 보다 절실해진다. 여기 美國(미국)의 저명한 한 발레團(단)의 경우로 현대무용을 노크해본다. <편집자註(주)>

  거의 1世紀(세기)동안이나 미국에는 ‘발레’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 없다시피 했다.
  그러나 1945년 이후 그러한 경향은 없어지고 있다.
  그러니까 2차 대전 동안에 미국은 세계가 놀랄 만큼 많은 발레團(단)을 배출하였다. 최근 미국의 발레단은 세계적인 리스트에서 거의 톱클래스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몇 년 전만해도 지방으로만 다니며 공연하던 ‘하크니스 발레단’은 ‘맨해튼’에서 성대한 공연을 가졌는데 그 무용은 ‘뉴욕市(시) 발레단’이 처음 공연을 가졌을 때의 기억을 불러일으킬 만큼 관객들을 예술의 극치로 몰아넣었다.
  ‘오일 헤리스 레베카 하크니스’는 ‘하크니스 발레團(단)’의 설립자이며 후원자로서 오랫동안 훈련을 쌓아온 ‘발레리나’이다.
  그는 무용단에게 우아한 광채와 전체적인 조화를 주고 있다. ‘하크니스’는 미국의 무용계에서 ‘쏠로’로서의 ‘다이내믹’한 묘기를 보여주고 있다.
  ‘하크니스 발레團(단)’의 레퍼토리 중에서 ‘브레인 맥도날드’의 ‘불새’를 재연한 작품은 ‘클래식’한 작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 외의 많은 레퍼토리의 작품들은 표제의 무용해석을 순수한 동작으로 표현, 추상적인 연구 과제를 남기고 있다.
  ‘스튜아트 호드지 지옥에서’는 한 쌍의 연인이 세 패의 마귀들에게 공격을 받는 공포를 아름답게 승화, 표현하였다.
  ‘루디 반 단찌히’의 ‘죽은 소년을 위한 기념비’는 가정에서 부모들의 몰이해와 죽음과 성숙의 모호한 결과로 제시되는 ‘라이프 아웃사이드’의 유혹에 대항하는 사춘기의 반항을 날카롭게 표현했다.
  ‘존 버틀러’의 ‘사막의 세바스찬’에서는 감각적 무용의 유행이 17세기 중세 암흑기에서 뚜렷하게 현대적인 공포의 전율로 돌아왔다.

  ‘맥도날드’의 추상작품인 ‘타임 아웃 오브 마인드’에서 제시된 인간의 잔인성이 현대생활의 보조와 古代(고대)의 원시적 의식사이에서 평행선을 추구하는 끈질긴 율동을 나타내었다.
  캐나다의 무용연구학자인 ‘맥도날드’는 2년간 왕립 스웨덴 발레단의 예술 감독으로 활약한 바 있는데 무용에 있어서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현대에 있어서의 발레는 발레리나이기 때문에 흥분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어떠한 주제를 표현하려고 할 때 무대에서 마음껏 움직이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맥도날드’는 현재와 과거에 있어서 폐습에 물든 사회현상으로서 혁명과 의식을 죽이는 것을 무용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연구하고 있다.
  ‘하케네스’무용단은 단원들이 모두 평균 22세의 젊은 나이로서 ‘맥도날드’의 이러한 ‘다이내믹’한 요구를 받아들이고 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이나 ‘디트로이트’ 출신의 ‘로렌스 로오드’는 ‘데드 보이’와 ‘타임 아웃 오브 마인드’에서 무수한 근육의 통제 밑에 쥐어짜는 듯한 열정을 훌륭히 표현하였으며 뉴욕 출신인 ‘부루닐다 루이즈’는 유연한 무용가로서 무대를 충분히 이용하는 훌륭한 ‘발레리나’이다.
  ‘아이슬란드’에서부터 일본에 이르기까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모여든 단원들은 미국 스타일로서의 적응을 신중하게 보여주고 있다.
  ‘맥도날드’의 설명에 의하면 그들의 스타일은 새로 설립된 발레단으로서 세계에서 제일이라고 말했다.
  “미국인들은 상대적으로 고전적인 기초훈련이 부족하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여러 부분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그들은 무대에 누구보다도 가깝게 접근하며 역시 그러한 방법으로 사람들의 마음 속 깊숙이 영향을 준다. 유럽인들은 그들 자신의 몸을 높이 드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이 훌륭한 동작을 할 수 없다”고 한다.

  대부분의 무용단의 발전은 직접적으로 그들의 후원자를 발견해야 가능하다.
  ‘레베카 하크니스’는 1964년 ‘스탠다드오일’의 유산인 2백만불의 기금으로 ‘하크니스 발레團(단)’을 설립했다. 그러나 일찍이 가족들로부터 무용가로서의 은퇴를 강요당했지만 그녀의 여름 휴가지인 ‘루이스랜드’의 ‘워털힐’에서 발레 실험 강습회를 가지고 있었다.
  1964년까지 미국에서는 ‘로버트 조플레이’의 발레단이 각광을 받았으나 ‘하크니스’가 새로운 ‘발레단’을 조직한 이래로 파산되어 버렸다.
  일반적으로 프랑스 대혁명전에 있어서 무용단은 대재벌의 귀족들이 재정적인 후원이 없더라도 번창할 수 있었고 발레團(단)은 그들의 창작품을 팔아 돈을 벌 수 있는 발레리나를 발존하여 받아들이는 역할만으로 충분했다.
  관대한 부인이며 하크니스 발레단의 후원자인 ‘레베카 하크니스’는 至高(지고)의 감각을 지니고 있는 찬란한 시대의 아름다운 여인이다.
-<外誌(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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