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國(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최근 귀국하여 화제가 되고 있는 某(모)여류작가는 한없는 자유나 평등, 그리고 우연히 지나친 사람들끼리도 주고받는 부드러운 미소, 다 좋았지만 ‘피비린내 나는 절규’나 ‘통곡의 몸부림’이 없었기 때문에 그곳에서는 글을 쓸 수가 없었노라고 고백했다.
  미국적인 관대와 풍요함에 적응하기에는 지극히 한국적이던 한 여성이 쉽게 동화되기는 퍽 어려웠으리라.
  그래서 “각박한 조국으로 다시 돌아왔다”고 결코 하고 싶지 않았던 말을 하고 있나보다. 그리고 “데모나 流血(유혈)조차 作戱(작희)같았다”라고 그곳에서의 느낌을 단적으로 조심스럽게 피력했다. 요즘 자주 보도되고 있는 미국대학생들의 데모사태 記事(기사)를 보면 그들의 행동이 作戱(작희)만으로는 보여지지 않는다.
  反戰(반전)데모를 벌이고 있는 학생들 때문에 길을 지나갈 수 없게 된 한 학생이 화가 나서 시위하고 있던 한 학생의 목을 힘껏 조르고 있는 사진이나, 폭동진압 경찰이 反戰(반전)데모를 벌인 시위자 2명을 거꾸로 땅바닥에 끌어가고 있는 장면을 찍은 사진을 보면 더욱 그렇다.

  학생뿐만 아니라 여배우, 코미디언, 가수들도 스스로 뛰어들어 유명세를 더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네의 그것보다는 훨씬 여유(?)가 있어 보인다. 또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내세운 그런 데모가 일어날 수도 있는 미국적인 사회구조가 좋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 被象的(피상적)인 상황이야 어떻든 그 나라는 그들대로의 ‘슬픈 부르짖음’이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그곳의 대학생들은 그 나름의 고뇌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할는지도 모른다.
  어떤 결핍감에서 터져 나오는 젊음의 폭발과 풍요로움에 넘쳐 터져 나오는 젊음의 발산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그러나 아무리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남모르는 번민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現象的(현상적)인 사실만을 보고 쉽게 선망의 눈길을 던지는 경솔은 삼가야 할 것이다.
  앞서의 그 여류작가는 거지도 부잣집의 것과 똑같은 치즈나 버터를 먹는 부유스러움만을 보았지 그 거지의 힘없는 탄식을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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