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나도 모르게 빛이 싫어졌었다.
  그건 일종의 공포 같은 것이었다. 넓고 활짝 피인 투명한 햇빛 속에 무언지 모르게 내부에서 자꾸 움츠려드는 것이 있었다. 늘 초조하고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을 느끼게 됐다. 검고 부드러운 어둠 속에서 안온하던 몸뚱이가 역겹고 쑥스럽게 느껴지면서 목구멍에서 불쾌한 것이 치밀어 오른다. 그리고 세상은 추해지는 것이었다. 결백한 살결도 험히 들어나고 꾀죄죄해 보였다. 사물을 감싸고 있던 그 고유의 신비나 낭만이 사라지고 그 대신 초라하고 무기력한 실체가 만천하에 들어나는 것 같았다. 나는 늘 낮이 없는 세상을 동경하여 왔고 또 그 理想(이상)이 언젠가는 실현되길 바랐던 것이다. 불명확한 베일 속에 휩싸여 그저 즐겁고, 꿈꾸고, 그리고는 여백을 남겨두는 생활을 동경해 왔었다.
  짓궂고 거만한 태양의 심판 따윈 우리를 억누르고 구속하고 환멸을 강요할 뿐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꿈의 실현은 불가능하다.
  낮이 없는 세상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나에게는 비극 중의 큰 비극이었다.
  일하고, 자라고, 배우고, 숨 쉬고 하는 것들은 우리 생활의 근본이다. 이 근본들은 빛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들이다. 빛이 없는 세계에서는 이 근본들은 단지 무한한 가능성만을 내포하고 있을 뿐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결국 어둠은 빛의 이면으로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
  나는 필시 커다란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 같다. 찬란한 태양빛을 한 모금 생명수로 삼는 자만이 정확한 승리자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요즈음 빗속에서 새로 잉태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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