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治的(정치적) 社會的(사회적) 테마제왕

  20C가 시작되던 첫 해에 ‘꿈의 解析(해석)’과 16年後(년후)에 ‘精神分析學入門(정신분석학입문)’을 내어 세상에 영원한 革命(혁명)을 몰아온 프로이드는 그가 設定(설정)한 假說(가설)이 현실화되는 것을 보면서 1939년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나 환경적 制約(제약)에 따르는 환상이 藝術化(예술화)가 된다고 말하는 그의 藝術的現象(예술적현상)의 考察(고찰)은 詩(시)는 물론 회화, 음악, 영화에 이르는 藝術世界(예술세계)에 나타나지 않는 곳이 없다. 회화에서 추구된 큐비즘, 퓨리즘, 쉬르리얼리즘, 新卽物主義(신즉물주의), 포비즘, 표현파, 절대파, 미래파, 슈프레마티즘, 액션 페인팅이 그러하며, 스트라빈스키 生前(생전)에 대두된 具體音樂(구체음악), 電子音樂(전자음악), 不確定性音樂(불확정성음악), 컴퓨터 音樂(음악)이 그것이며, 영화의 철저한 쉬르리얼리즘의 추구가 그것이다. 詩(시)에서의 쉬르리얼리즘에서 비롯, 운동파, 신낭만파, 新黙示派(신묵시파)에서 意識(의식)의 垂直的(수직적), 수평적 흐름을 통하여 心層心理(심층심리)를 파헤쳐가는 樣相(양상)에서 그 성격을 찾을 수 있다.
  20世紀(세기)회화는 회화적 모티브를 對象(대상)으로 하고 회화구성으로 機會(기회)를 보존한다는 그 모티브에 의해서 감상되어질 수 있다. 작가의 환상은 페르샤의 장식회화, 니그로의 조각을 도입하기도 하고 기하학적 형태로 화면을 구성하여 自然(자연)을 非情的(비정적)인 물체로 解體(해체)하고도 있다.
  이런 데포메이션의 방법에 의하거나 리얼리제이션과 色彩(색채), 形式(형식)의 관계가 作家個性(작가개성)에 수용되어 샤갈은 누보ㆍ포비즘을, 훼르낭레제는 메커니즘을, 죠르쥬ㆍ브라크는 큐비즘을, 모리스ㆍ드볼라망크는 리얼리즘을 표방하고 나섰다. 그러나 프랑시스ㆍ피카피아, 한스ㆍ아르프, 키리코, 미로, 에른스트 등이 깃발을 든 쉬르리얼리즘은 작가의 主客觀的(주객관적)인 觀點(관점)이나 형식색채에 따라 조직과 명칭을 달리한다. 그래서 바실리ㆍ간딘스키는 절대회화로, 호안ㆍ미로는 抽象(추상)회화로, 마테ㆍ비치는 쉬프리마티즘으로, 피에르ㆍ잔느레는 푸리즘으로, 모르강ㆍ라셀은 신크로미즘으로, 로벨ㆍ드로네는 올피즘으로 구분된다.

  르네상스 때엔 부르겔, 부슈 같은 작가가 他界(타계)의 기괴한 환상이나 로망티즘에서 자기의 理想(이상)이나 마음속의 神秘境(신비경)을 추구했으며, 20世紀初(세기초)에 오디통ㆍ루둥이 自然主義(자연주의)에 反旗(반기)를 들어 꿈속의 花苑(화원), 환상의 世界(세계)를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체의 論理(논리)나 先入觀(선입관)을 떠난 自動描寫法(자동묘사법)이나, 무의식상태의 言語(언어)나 이미지의 기록에 의한 非合理的(비합리적)인 환상의 世界(세계), 꿈이나 인간의식 세계에 의한 적극적인 이미지를 추구하는 心層幻像(심층환상)에까지의 돌입은 전연 프로이드의 假說(가설)에 의한 것이었다. 그들은 회화의 영역을 확장하여 꼴라쥬法(법)에 의한 맥 빠진 사진조각, 푸대자루, 신문지 조각, 쇠줄이나 對象物(대상물)의 實體(실체)를 부착하는 현실적 옵셋트나 후로따쥬 方法(방법)등으로 偏執狂的(편집광적) 批判方法(비판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바로 그것은 데칼코마니, 뜨롱페ㆍ로일, 드페즈망과 아울러 쓰여진 환상에 의한 고정작업의 樣相(양상)이다.
  특히 막스에른스트의 ‘혁명ㆍ밤’ ‘검은 태양’ ‘바다와 태양과 지진’같은 작품이나, ‘Histoire Natyrelle’란 후로따쥬 작품집이나 ‘LaFemme100 Tetes’의 꼴라쥬 작품집은 유명하다. 파울ㆍ클리의 음악적 환상에 ‘습격 받은 거리’, 호안ㆍ미로린 환상의 자동묘사적 처리에 ‘달밤의 여인과 새’ 살바돌 달리의 꿈, 偏執狂的(편집광적) 환상으로 ‘기억의 고집’ ‘추억’에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환상적 이미지 추구는 로르쥬, 피니용, 듸퓌에 의한 政治的(정치적), 社會的(사회적) 테마의 제창이 불란서에서 일어나고, 아메리카에선 펭ㆍ샹에 의한 액션 패인팅이 일고 있다. 파블로 피카소의 쉬르리얼리즘, 기타 회화형식의 종합작업에서 얻어진 정치적, 사회적 테마를 취하고, 韓國動亂(한국동란)을 소재로 한 ‘한국의 학살’ ‘전쟁과 평화’는 그의 일부이다.

  최근 國內(국내) 전시회에서 선보인 독일 버나드술츠의 ‘來日(내일)의 미고프’ ‘한쪽 손 마네킹의 미코프’ 같은 것, 李剛沼(이강소)의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기념비’같은 작품에서 쉬르리얼리즘의 특징인 꼴라쥬 수법이나 섬짓하고 공포를 풍기는 이미지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센베르크에 의해서 개발되었고 스트라 빈스키에 의해서 세계악樂壇(악단)선풍을 일으킨 ‘12음기법’이 20世紀音域(세기음역)의 확대로 현대 음악의 문을 연다. 현대음악은 인간의 판타지아를 좀 더 구체화하기 위한 무던한 안간힘 이다. 악기로 흉내 내던 효과음을 실제 음향을 녹음, 기계적 조작을 거쳐 전기 작용으로 變質(변질), 合成(합성)시켜 만든 음악이 구체음악으로, 파리방송국 기사인세펠이 착수 1952년 공개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극영화의 반주음악 방송효과로 전락되고 말았다.
  또 다시 진공판과 트랜지스터를 통해 電子的(전자적) 廻路(회로)를 이용해서 된 음악이 電子音樂(전자음악)인데, 거대한 힘과 무서운 음향세계로의 저항을 나타낸다.
  1953년 서독 퀼른 방송국의 아이멜트, 빠이엘이 공동 제작한 것이다.

  그러나 1968년 미국 전자음악의 제일인자인 무그씨에 의한 ‘신세사이자’(아폴로 시대의 電子(전자) 바하)라는 전자악기가 발명되어 복잡한 조작이나, 비용을 절약하여 전자음악계에 충격을 주었다. 다시 聽衆(청중), 演奏者(연주자)가 요구하는 소리를 선택(騷音(소음)ㆍ不均衡音(불균형음)도 포함), 5線紙(선지)의 노예에서 음악을 해방시키고 상징적인 악보만 사용하는 음악의 혁명이 다시 한 번 일었다. 作曲者(작곡자)ㆍ演奏者(연주자)ㆍ聽衆(청중)의 혼연일체의 경지를 파고드는 음악이며, 연주자를 創造機能(창조기능)을 가진 지위로 확보를 시키는 不確定性音樂(불확정성음악)의 대두이다. 人間幻像(인간환상)에 의해 대상이 확장되었음을 뜻하는 것이 된다.
  또한 컴퓨터의 操作(조작)에 의한 音樂(음악)이 시도되어, 다른 형태에 감동, 신기한 경향의 음악을 생각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나 人間音樂(인간음악)을 능가하고 있지 못하며 또한 전자음악과 구체음악의 결합도 시도되고 있기는 하다. 인터코스섹스의 환상을 추구 旋律化(선율화)함으로 세계의 耳目(이목)을 끌고 있는 白南準(백남준)은 裸體男女(나체남녀)의 演奏(연주)를 보여주고 있다. 손과 발만 보이도록 장치를 한 건반 앞에 나체의 남녀가 떨어져 앉는다.
  女性(여성)이 발뒤꿈치로 演奏(연주)를 하는데, 남자가 다가앉을수록 거칠고, 高調(고조)되며 두 사람이 結合(결합)될 때는 폭파할 정도로 다이나믹해지고, 남자가 멀어지면 선들도 여려지는, 이른바 幻像(환상)을 卽物的(즉물적)으로 선율화 하고 있다.

  現代(현대)에 와서 映畵(영화)는 쉬르리얼리즘에 입각한 영상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日常性(일상성)에서 느끼는 僞善(위선)과 頹廢(퇴폐)에 대한 철저한 反抗(반항), 現實否定精神(현실부정정신)과 충격적인 映像(영상), 人間(인간)의 苦惱(고뇌)와 絶叫(절규), 心層心理(심층심리)에 의한 本質(본질)의 探(탐)색, 완전한 의식세계를 쫓아가는 卽物的(즉물적)인 手法(수법), 現代文明社會(현대문명사회)의 고발과 비판에 의한 창조, 時空(시공)을 무시한 幻像(환상)의 心層化(심층화), 生(생)의 意味(의미)와 이미지 展開上(전개상) 해결이 없는 해결로 絶望感(절망감)을 나타내고 있다. 루이스 번넬 監督(감독)의 ‘앙다루샤의 개’에서 미친 듯이 파내는 眼球(안구), 붉은 개미가 득실대며 기어오르는 손바닥, 숨 쉴 여유도 없이 뛰는 피아노 건반의 고조된 음악, 피아노 건반에 놓인 당나귀의 시체에서 초현실주의의 섬찍한 이미지를 제시하고 ‘잊어진 사람들’ ‘세브리느’에서 심층심리 위에 올려놓고 요리하는 現實(현실)과,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여인의 倒錯(도착)된 審美感(심미감)을 나타내주고 있다.
  알렌ㆍ르네스감독의 ‘히로시마 내 사랑’에서 불란서 영화배우와 滿身瘡痍(만신창이)의 일본 건축기사와의 情事(정사) 속에 과거, 현재를 펼치는 커트法(법)의 즉물적 描寫法(묘사법)의 도입, 프델리코플리니의 ‘카빌리아의 밤’에서 종횡무진의 상징과 환각의 창조, ‘誘惑(유혹)1963’(보카치오 70中(중))에서 병상 영화감독이 펼치는 무질서한 과거, 現在(현재), 未來(미래)의 幻像詩(환상시), 잉마르 버그만의 ‘침묵’ ‘第(제)7의 封邸(봉저)’에서의 완전히 해체한 인간 내면심층에 나타나는 인간의 소외와 죽음의 이미지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선명하다. 토니리챠드슨감독의 ‘꿀맛’ ‘장거리선수의 고독’에서 추구한 부조리한 人間(인간)의 內面心理(내면심리)와 이것이 수용되지 않는 現社會(현사회)를 통하여 종횡무진한 이미지 속에 해결을 두지 않는 해결이 환상예술의 끊임없는 여운처럼 照應(조응)되고 있다.
  TㆍEㆍ후룸이 ‘言語論(언어론)’에서 언어를 구분하여 멜토포에(언어의 韻(운)), 파노포에(言語(언어)의 作家的(작가적)기능), 로고포에(論理的(논리적)기능)로, 파노포에, 로고포에는 詩(시)의 意味性(의미성), 色像(색상)을 낳는 言語的(언어적) 機能(기능)을 나타낸다고 했다. 그리고 Sㆍ말라르메의 ‘詩論(시론)’에서 想像(상상)의 幻像化(환상화) 내지 聯想作用(연상작용)의 可視的(가시적)선명화를 주장했고 에즈라파운드의 思想(사상)의 視覺化(시각화) 聽覺化(청각화)의 주장에서 메타포어의 變身形狀化(변신형상화)가 굳혀졌다.
  그것은 修辭學(수사학)의 기초 밑에 形狀(형상)의 多元化(다원화), 기하학적 方法論(방법론)의 도입을 뜻하고, 프로이드 學說(학설)로 쉬르리얼리즘 革命(혁명)을 몰아온 앙드레 브로똥, 루이 아라공, 파울 에루알도, 필립 소폴, 파울르베르디에서 굽이를 넘어 가고 있다. 환상의 組織上(조직상) 樣相(양상)의 開發(개발)과 오브제의 뽀에지化(화)에 운동파, 신낭만파, 신묵시파에서 갈라져 갔다. 그러므로 現代詩(현대시)는 환상의 조직ㆍ정리과정이며, 위에는 회화ㆍ음악ㆍ영화도 매개체만 다를 뿐 幻像(환상)의 受容樣相(수용양상)은 본질적으로 같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