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10回(제10회) 본사 學術賞創作分野(학술상 창작 분야) 장려상

  지하다실‘샘’에서 올라온 우리는 한참 동안 빌딩 아래에 서있었다.
  판화를 문지르듯, 풍경을 빗기는 햇볕이 눈썹에서 떨며 나가자, 나는 옆 벽에서 웃고 있는 여자의 사진을 보았다. 가슴 부분을 잘리고도, 여자는 팔려야 할 상품보다 더 많이 웃고 있었다.
  골목을 꺾어 들어오는 찝차의 크락숀 소리에도, 그리고 차창에서 돌아오는 역광(逆光)에도, 광고 속의 여자 마냥 웃기만 했다.
  단발머리 여학생이 찝차를 껑충껑충 토끼처럼 피하는 다리새로, 쓰레기가 한 웅큼 날아 왔다.
  왈칵, 바람이 힘을 더했다.
  낙엽은 메말라서 찢겨진 상처 속에서도 바람의 면역을 지녔는가. 휴지보다 뒤떨어져 날아간다.
  나는 어깨를 움츠리었다가 폈다.
  수은이를 돌아보았다.
  수은이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빌딩의 굴뚝 사이로, 간신히 트여 있는 하늘에는 애드벌룬 하나가 둥둥 떠 있었다.
  진작부터, 그러니까 내가 푸스타를 그리고, 찝차와 낙엽이 웃고, 꺾이고, 침몰하는 것을 살펴본 동안에도, 수은이는 계속 하늘 저 한 곳만을 지킨 모양이었다.
  “풍향이 바뀌는가 봐요. 저 애드벌룬이 남쪽에서 서쪽으로 옮기어 갔어요”
  수은이의 이마에서 머리묶음에 들지 못한 머리카락 몇 낱이 한들거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아직 차 시간이 남았지?”
  “그렇군요. 한 시간이나 남았네요”
  수은이는 그의 팔목 시계를 내려다보면서 대답하였다.
  “우리 그 동안 창경원에 뱀 구경 갈까?”
  “네?”
  “뱀 말이야, 동물원의 뱀들은 어떻게 동면하는지 궁금하지 않아?”
  “거기 뱀들은 동면하지 않을 거예요. 스팀도 들어오고, 바닥도 시멘트일 테니까요”
  참, 나는 동물원의 뱀들은 구경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비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치더라도, 그들은 조절되는 적당한 온 방에 늘어져나 있으면 되는 것이다.
  “인영씬 名山(명산)에 다녀오셨다더니 이상스러워 졌어요”
  “………?”
  “왜, 하필이면 창경원으로 뱀을 구경 가자세요?”
  나는 그저 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어디서 흘러왔을까?
  빌딩의 굴뚝 너머에는 요즈음 보기 드문 흰 구름 한 덩어리가 탐스럽게 부풀어 있었다.
  나는 저 하얀 구름 속에 파묻히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들어가더라도 저렇듯 풍성하고도 평화로움 속에 묻히면 무엇이고 다 잊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江(강), 그것은 끝이 없는 흐름이라고 이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건너는 사람은 다만 양 편의 나루터만을 건넜을 뿐이라고.
  “절 서울역에 바래다 주실거죠?”
  나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찬성은 반대하는 편보다 표현이 쉬어서 좋다. 그리고 이쪽도 저 쪽도 가볍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손을 흔들어서 택시를 불렀다.
  연두색깔의 택시는 재빠르게 와섰다.
  나는 차에 오르면서 수은이의 머리내음을 맡았다. 그리고 입안에 침이 고이는 것을 느꼈다.
  차 안에서 수은이는 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 왔다.
  나는 어깨에서 통증을 느끼면서, 운전수가 안 거울을 바깥쪽으로 밀쳐내는 것을 보았다.
  차는 신호등과 교통순경의 손짓을 쫓아서 열심히 달려가고, 쉬어가고 하였다.
  해말간 눈꺼풀에 주름이 없게, 그리고 눈썹이 고르게 수은이는 눈을 감고 있었다.
  갑자기 머리가 가득하게 생각나는 얼굴이 있었다. 그러나 그 기억은 안개가 가득한 바다처럼 얼른 떠오르지를 않았다.
  山寺(산사)의 모퉁에서 한번 보고 지난 보살상과 같은 희미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내게 매듭져 진 이 순이 같은 눈썹의 가지런함과 눈꺼풀의 해말간 인상을 붙들어 내기에, 금방 금해져 버렸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 차가 서울역에 도착하기 전에 까지, 내 머리 속에서 맴돌고 있는 얼굴이 누구인가가 밝혀져야 한다는 것을 결심하였다.
  만약에 이 택시가 서울역 광장에 닿아서도, 그리고 요금을 지불 할 때까지도 그 상대가 생각나지 않는다면 나는 이번 동면(冬眠)에 실패하고 말 것이다.
  나는 또, 다시 내기를 걸었다.
  이마와 함께 안경이 번쩍거리던, 조박사의 진단은 이렇게 내기가 걸린 뒤에야 찾아왔다. 가위에 눌리듯 쫓겨도 도망하지 못하는 노이로제, 그것은 어머니의 무게에서 파생한 것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 해, 내가 대학 시험에 실패하자, 어머니는 그만 머리를 싸매고 누워버리셨다.
  나의 입시 기간 동안의 삼일 단식기도가 어머니로 하여금 그토록 허기져 누우시게 하지 않았나, 그런 면으로 생각하여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내가 합격만 하였다면, 열흘 동안이나 긴 날을 누워있지 않았으리라 아무튼 나는 죄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다음번에도 떨어지면 나는 죽고 말테다.
  어머니의 이 한마디는 나를 꼼짝 못하게 매어 두는 어떠한 협박보다도 유효하였다.
  실패하면 어머니가 죽는다. 나는 이 살인감정의 누(累)를 벗어나기 위하여 맹렬하였다. 덕분인지 나는 다음 해에 다행히 그리고 어머니께서는 감격스럽게 합격하였다.
  어머니는 건강하셨다.
  나는 기뻤다.
  그러나, 이때부터서 나의 신경에는 불합격의 신호가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조그마한 일 마다에, 상상이 지나쳐서 신경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한 예를 들자면, 거리에서 나는 앞사람의 뒷모습만으로 곧잘 점을 쳤다.
  그리고는 내 예상의 확신을 얻기 위해서 내기를 걸었다. 가령, 다리가 곧고 미니가 시원스러운 여자가 육교를 오르는 것을 보면, 나는 서슴지 않고 점수를 높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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