敎養學部(교양학부)를 마치고

  祝祭(축제)와 野遊會(야유회), 또 休校令(휴교령)이라는 단어들이 내 머리를 때리고 간 나의 교양학부 시절. 너무도 보람 없이 그리고 빠르게 지나가 버렸다.
  大學(대학)의 첫 生活(생활)은 講義室(강의실)을 찾는 것부터 始作(시작)했고 새로운 얼굴들을 익히기에 온 정신을 빼앗기기만 했다. 전공을 같이하는 새로운 친구들과의 對話(대화)는 나의 잠자던 理想(이상)을 깨우쳐 주었고 교정에서 시작하여 찻집을 거쳐 막걸리 집에 이르는 旅程(여정)은 우리의 젊은 血氣(혈기)를 한껏 발산시켜 주었다.
  몇 년 동안 벼르던 大學(대학)에서 나는 祝祭(축제)의 흥청거림과 講義室(강의실)의 진지함을 함께 터득했고 술의 哲學(철학)과  美術(미술)의 美(미)를 배우기에 노력했다.
  모든 行事(행사) 때마다 敎養學部生(교양학부생)의 動員(동원)에 짜증도 냈었고 男學生(남학생)보다 女學生(여학생)에게 친절한 敎職員(교직원)의 처사에 시샘을 내기도 했다.
  강의시간 빼 먹은 재미에 학점이 빵구(?)나는 줄도 모르며, 마냥 방종으로 흐른 自由(자유)를 갈구했고 자신의 귀를 잘라버린 어느 화가를 좋아하기만 했다.
  老(노)교수님의 강의에 머리를 끄덕이며 제법 아는 척(?)도 하며 大學(대학)의 自律(자율)에 순응하려고 무던히도 애썼고 전공서적을 옆에 끼고 거리를 활보하기도 했다. ‘용맹정진’을 부르짖는 선배의 뒤를 따라 목이 쉬어라 응원을 할 때는 새삼 東國人(동국인)의 一員(일원)임을 느끼며 자부심을 가지기도 했다.
  그러나 입학 초기의 큰 기대와 희망은 2學期(학기)에 들어 休校(휴교)라는 상처에 눌려 채 피기도 전에 시들어 교양학부시절은 반 밖에도 하지 못한 것 같다.
  敎養學部(교양학부)시절의 강의, 신입생환영회, 科別(과별) 야유회, 가장행렬 모든 行事(행사)가 놓치기 싫은 순간들이었고 또 다시 온다면 좀 더 진지하게 참가하고만 싶어진다.
  이제는 F建物(건물)에 새로 들어선 얼굴들이여, 시간을 아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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