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광 진 교수
“학창시절 꿈꿨던 교수생활을 하며 기자, 외교관의 일도 간접적이나마 모두 겪어볼 수 있었다”는 유광진 (정치외교학) 교수. “막상 내 공부를 다 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지”라고 말하며 동악을 누벼온 46년간을 회상하는 그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떠오른다.

그의 학창시절은 가난한 학생의 신분으로 학과 공부와 그 외의 폭넓은 분야의 학문까지 파고드는 ‘3중고’를 겪어내는 과정이었다고 한다. 그 시절 뜻이 맞는 선배, 친구들과 함께 힘을 모아 만든 정치학연구회 동아리방은 그의 대학생활 대부분을 보낸 공부방이었고 잠자리가 되어주기도 했다.

“그때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공부를 할 수가 없었지. 지금 학생들이야 상상이나 할 만한 상황인가”하며 허허 웃는 그의 목소리가 한없이 정겹게 느껴졌다.

어려웠던 시절 자신을 돌봐준 교수를 잊을 수 없다는 그는 자신이 지도한 학생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제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 한다. 특히 자신과 함께 학교에 남아 교수가 된 제자들은 더욱 기억에 남을 것이라고.

강의를 하며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학생들에게 가치중립적인 학문자체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답한다. 그는 “대학 교수는 자신의 가치를 강요하지 말고 학문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되 학생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며 “무엇이든지 여러 각도로 보아야 하고 어느 책이든지 전적으로 빠져들지는 말라”고 당부했다.

유 교수는 재직 중 여러 처장과 대학원장을 맡으며 폭넓은 학교의 업무를 처리했다. 다양한 자리에서 일해 왔지만 학교발전을 위해 좀 더 움직이면서 용기를 가지고 일하지 못 했다며 아쉬워하는 그의 표정 너머로 숨어있는 열정이 엿보인다.

앞으로의 시간은 대학원 강의를 하며 한국민족주의에 대한 공부에 전념하며 보낼 것이라 밝히는 유 교수. 시간이 흘러도 식지 않는 그의 학구열과 학교에 대한 애정은 퇴임 후에도 여전히 동악과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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