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集(시집)발간은 國內大學(국내대학) 최초

  東國人(동국인)의 文學的 偉業(위업)을 整理(정리)한 ‘東國詩人代表作集(동국시인대표작집)’이 나왔다. 梁柱東博士(양주동박사) 古稀記念(고희기념) ‘東國詩集(동국시집)’ 第(제)11輯(집)(총2백40페이지)이 그것이다. 韓國詩(한국시)의 大宗(대종)을 形成(형성)해 온 東國文學(동국문학)의 傳統性(전통성)을 質(질)과 量的側面(양적측면)에서 응변하는 자랑스러운 엔솔로지이다. 이 代表作集(대표작집)에 收錄(수록)된 詩人(시인)은 作故詩人(작고시인) 8명ㆍ現役詩人(현역시인) 91명 등 도합 99명의 作品(작품)2편씩과, 學生(학생) 詩人(시인) 12명의 作品(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連絡(연락), 調査不足(조사부족)으로 누락된 詩人(시인) 또는 拉北(납북)한 同門(동문)詩人(시인) 10餘名(여명)까지를 합한다면, 東大出身詩人(동대출신시인)은 1백20여명에 달한다.

  ‘東國詩集(동국시집)’은 1949年(년)에 創刊(창간)되었다. 당시 本校(본교) 文科系(문과계) 學生詩人(학생시인)의 主動(주동)으로 ‘東國學生詩集(동국학생시집)’(學生會(학생회) 學藝部(학예부)발행)이라는 題目(제목)아래 발간했다.
  國內大學(국내대학)에서는 最初(최초)의 일이었고 東大(동대)에서만 可能(가능)한 作業(작업)이었다.
  이 詩集(시집)은 六(육)ㆍ二五(이오)라는 참화 속에서도 계속되었다. 避亂大學時代(피난대학시대)인 釜山(부산)에서 환도하자마자 學生詩人(학생시인)들의 손으로 第二輯(제이집)(1953)이 속간된 것이 그것. 그 후 3ㆍ4ㆍ5ㆍ6ㆍ7ㆍ8ㆍ9輯(집)까지 해마다 10月(월)을 前後(전후)하여 발간되었다. 1955年(년) ‘東國文學(동국문학)’의 創刊(창간)과 함께 東大(동대)는 年刊(연간) ‘東國詩集(동국시집)’과 ‘東國文學(동국문학)’ 등 2大(대) 刊行物(간행물)을 통하여 東國文壇(동국문단)의 質(질)과 量(양)을 深化擴大(심화확대)했다.
  ‘東國詩集(동국시집)’은 제9집까지 學生(학생)들의 作品(작품)이 많은 紙面(지면)을 차지했다. 學生詩人(학생시인)들은 作品募集(작품모집)에 응모, ‘東國詩集(동국시집)’에 作品(작품)이 수록되어야만 東國文壇(동국문단)의 一員(일원)으로 認定(인정)받게 되었다. 그것은 곧 韓國詩壇(한국시단)으로의 登場(등장), 또는 그러한 詩的才能(시적재능)이 認定(인정)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韓國詩壇年評(한국시단연평)에서 東國詩集(동국시집)이 言及(언급)될 만큼, 수록된 作品(작품)은 質的(질적)으로 優秀(우수)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東國詩集(동국시집)’의 전통에도 불구하고 시련은 왔다. 제 1집부터 9집까지의 발간과정도 순탄했던 것은 아니지만, 9집(一九六二(일구육이)) 이후 7년 동안 中斷(중단)상태가 계속된 것이다.
  첫째 ‘東國詩集(동국시집)’ 발간비를 감당해 오던 學生會(학생회)가 四(사)ㆍ一九(일구)이후 外部指向的(외부지향적)인 활동으로 硬化(경화)되면서 文藝(문예)활동 不在(부재)를 초래한 점이다. ‘東國詩集(동국시집)’ 발간의 담당부서인 學藝部長(학예부장)에는 文學藝術(문학예술)과는 才能(재능)과 專攻上(전공상)으로 거리가 먼 學生(학생)이 登用(등용)되고 學生會(학생회) 리더들도 마찬가지였다.
  둘째 學校當局(학교당국)의 無關心(무관심)이 지적되어야 한다. 韓國文壇(한국문단), 또는 韓國文學(한국문학)의 主流(주류)로서의 東大傳統(동대전통)을 표방하면서도 大學(대학)의 施策(시책)속에서 그러한 傳統(전통)을 계승을 위한 努力(노력)은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一九六九年末(일구육구년말) 東大出身(동대출신) 文學人(문학인) 百餘名(백여명)은 ‘東國詩人會(동국시인회)’를 결성, 첫 事業(사업)으로 ‘東國詩集(동국시집)’ 제 10집을 그들의 會費(회비)로 속간 東國詩集(동국시집)의 傳統(전통)을 先輩詩人(선배시인)들의 힘으로 再建(재건)했다.
  東國詩人會(동국시인회)는 1970年(년) 11월 30일 東國文學人會(동국문학인회)의 창립으로 해제했다.

  이번 東國詩集(동국시집) 제11집 ‘東國詩人代表昨集(동국시인대표작집)’의 수록詩人(시인) 名單(명단)은 다음과 같다. <가ㆍ나ㆍ다 順(순)>
  <1>作品詩人(작품시인)들
  吳化竜(오화용) 李星煥(이성환) 鄭雲三(정운삼) 趙芝薰(조지훈) 조한길 崔寅熙(최인희) 韓龍雲(한용운) 咸亨洙(함형수)
  <2>現役詩人(현역시인)들
  姜敏(강민) 姜泰烈(강태열) 姜熙根(강희근) 高英(고영) 高遠(고원) 具慶書(구경서) 金光會(김광회) 金圭和(김규화) 金南雄(김남웅) 金達鎭(김달진) 金東俊(김동준) 金炳攝(김병섭) 金風竜(김풍용) 金思林(김사림) 金尙憶(김상억) 金先現(김선현) 金時泰(김시태) 金魚水(김어수) 金潤(김윤) 金允환(김윤환) 金載變(김재변) 金鍾元(김종원) 金初혜(김초혜) 金弼漢(김필한) 南九峰(남구봉) 浪承万(낭승만) 馬鍾河(마종하) 文貞姬(문정희) 文孝治(문효치) 민응식 朴烈我(박열아) 朴貞姬(박정희) 朴堤千(박제천) 朴進昊(박진호) 朴鋹煥(박창환) 朴沆植(박항식) 方皙俊(방석준) 宋油夏(송유하) 宋赫(송혁) 申庚林(신경림) 申奎浩(신규호) 申基宣(신기선) 辛夕汀(신석정) 申璸均(신빈균) 尹明(윤명) 尹錫浩(윤석호) 李德珍(이덕진) 李東淵(이동연) 李東柱(이동주) 李石(이석) 李愚碩(이우석) 李祐鍾(이우종) 李禹出(이우출) 李元變(이원변) 李在福(이재복) 李鍾山(이종산) 李昌大(이창대) 李哲範(이철범) 李賢雨(이현우) 李炯基(이형기) 李薰範(이훈범) 章湖(장호) 鄭洋(정양) 鄭元模(정원모) 整義泓(정의홍) 鄭芝河(정지하) 鄭顯雄(정현웅) 曺秉武(조병무) 趙商箕(조상기) 趙靈岩(조영암) 曺允鎬(조윤호) 趙宗玄(조종현) 崔光烈(최광열) 崔元(최원) 崔元植(최원식) 崔載浩(최재호) 崔暉林(최휘림) 河德祚(하덕조) 韓信(한신) 호영송 洪申善(홍신선) 洪永義(홍영의) 洪福杓(홍복표) 黃甲周(황갑주) 黃命(황명) 黃淳九(황순구)
  <3>在學生(재학생들)
  金江泰(김강태) 金昌範(김창범) 金惠純(김혜순) 馬淑鉉(마숙현) 朴廷熙(박정희) 申鉉敦(신현돈) 심준 兪漢根(유한근) 尹順根(윤순근) 張賢淑(장현숙) 趙源柱(조원주) 韓泰植(한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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