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 1980년 : 영화·방송·연극계로 진출한 동문들 크게 활약

1971년에 국내 연극사상 최초로 ‘100회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또한 1972년에 대학원에 연극영화학과 석사과정이 신설되며 학과변혁의 원동력이 된다.

1973년 본관에 TV 스튜디오 건립  

▲대학시절 다재다능했던 이창구 연출의 '오셀로'
본관에 TV스튜디오가 1973년에 만들어졌으나, 스튜디오는 TV촬영보다 공연행위를 위해 주로 사용되었다.
학과의 큰 변화는 1969년 유치진 교수가 정년퇴임하고 예총회장을 맡고 있던 이해랑교수가 제8대 전국구의원(1971)으로 국회에 진출, 연임까지 하게 되며 이뤄진다.  

이해랑교수의 공백을 이진순교수가 임명되어 연기· 연출지도를 맡게 되었다. 하지만 무대미술가인 김정환 교수의 신병이 악화되어 1970년도에 사직하였으며, 유세형 교수의 요절로 1976년엔 후임으로 유현목 교수가 초빙되었다.
 
방송 스태프분야도 폭넒게 진출

우리대학 연극영화과 졸업생들은 스텝으로도 폭넓게 진출한다. 하강일, 이영식, 유흥렬, 김홍종, 김재순, 이종수, 노병현, 신상용, 염현섭, 정을영, 홍성덕, 최길규, 엄기백 등이 텔레비전 프로듀서로 이름을 날렸으며 카메라맨으로는 윤석균, 정정수, 장준보, 안기창 등이 활동했다.

이밖에도 김갑의가 영화기획자로, 홍순창이 무대미술가로, 김숙현, 권재우(오성), 이공희 등이 희곡,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을 펼쳤으며, 이창구, 김효경, 문석봉, 이종훈 등이 연극연출가로, 이미례(미숙)가 여류영화감독으로 데뷔하여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이창구는 대학재학시 연기, 연출, 미술 등 두루 섭렵하고 TBC텔레비젼 개국시에는 탤런트로도 활동을 폈다. 이후 ‘극단 사계’, ‘극단 제작극회’ 등에서 연출을 맡았다.

특히 그는 이해랑 이동극장에서도 배우로 활동하며 재능을 발휘했고, 이후 극단 신협대표를 역임, 청주대 연극영화과 교수로 재직하며 청주지역극단 활성화를 위해 매진했다.

김효경은 재학시 연출에 남달리 독특함이 있어 관심을 집중시켰다. 극단 ‘맥토’에서 기량을 보여주었고 이후 서울예전교수로 재직하며 무용극, 오페라, 뮤지컬, 창극 등을 폭넓게 연출해 왔다. 뮤지컬 연출에 남달리 빼어난 솜씨를 보인 김효경은 정년퇴임 이후 ‘서울시립뮤지컬단’ 대표를 맡아 활동하고 있다.

이종훈은 재학시부터 연출에 전념했으며, 졸업 후 김효경의 조연출로 시작하여 연출가로 데뷔했다. 극단 맥토 단원으로도 활동하였는데, 그 경험을 바탕으로 뮤지컬, 여성국극 등 음악과 관련된 극에 관심을 쏟아 ‘시립가무단’ 단장을 지냈고, 한국 뮤지컬협회를 만들어 초대협회장으로 추대된다. 이후 극단 맥토 대표,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고, 인천시립극단 예술감독을 거쳐 현재는 객원연출가로 활동중이다.

한편 비(非) 연극영화과 학생으로는 황학봉이 평생 한편의 영화를 감독하고 세상을 떠났고, 김종원은 영화평론가로, 김지현은 희곡작가 데뷔후 MBC프로듀서로, 윤청광이 방송작가로 데뷔해 활동을 펼쳤다.
 
동문 연기자들 활약도 두드러져

우리대학 출신 동문들의 연기활동도 활발했다. 특히 연극영화과 출신이 아니더라도 성우를 거쳐 탤런트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임종국, 이도련 등이 있다. 연극영화과 출신으로는 김병관, 이근욱, 장광, 장미선, 장세준 등이 성우로 이름을 낸 동문들이다.

이밖에 김기덕은 아나운서로 MBC에 입사하여 MC등으로 활동하다가 FM부장을 역임했고, 탤런트로는 박준성, 박건식, 김찬구, 장기용, 임혁주, 안혜숙, 이덕화, 김영기, 이효정(여),강석우(만홍), 임예진 등이 이름을 날렸다.

같은 시기 정상철, 박상규, 고인배, 이기열 등은 연극무대에 전념했다. 정상철은 졸업 후 극단 신협, 극단 광장, 맥토 등에서 프리랜서로 연기생활을 해오다가 국립극단 단원에 합격하며 전속배우가 되었고, 한 때는 텔레비전과 영화에도 출연하기도 했다. 이후 국립극단 극단장을 지내고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동방대학원대학에서 후진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박상규도 졸업과 동시에 국립극단에 입단하여 정기공연작품에 빠지지 않고 출연해 왔다. 박상규는 학부졸업 후 우리대학 문화예술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영화와 텔레비전에 출연하기도 했다.

▲2002년 우리대학 연기자 동문들이 대거 출연 MBC 신파극 '모정의 세월'

그 후 국립극단 극단장을 역임하는데, 극단장 시절 수차례 극단 정기공연 좌석을 전매하여 기획적 수완을 인정받은바 있다. 이후 한국배우협회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상명대 교수로 후진양성에만 힘쓰고 있다.

이덕화는 성격배우로 이름을 날린 이예춘의 아들로 어릴 때부터 영화에 데뷔, 배우로 활동해 왔다. 특히 다작의 청소년영화에서 임예진과 커플로 출연, 중ㆍ고등학생들의 많은 숭앙을 받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가창력 또한 빼어나 많은 음악극, 신파극 등에 출연, 두터운 노년층 팬을 가지고 있다. 자기가 주연하는 작품엔 후배들을 등용시켜 후배들에게 가장 존경하는 선배로 꼽히기도 했다.

이덕화는 탤런트협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동문연예인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그는 인생의 실수로 한때 국회의원에 출마하여 낙선한 사건을 꼽는다. 또한 필동에서의 오토바이 사고로 오랫동안 병원생활 한 것을 가장 잊지 못할 일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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