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는 본질적으로 불온하다”

 

김달현
지역관광네트워크 팀장

축제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의와 제축의 행사가 결합된 문화양식이다. 풍농이나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서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신을 기쁘게 하기 위한 연행들의 총체가 축제다.

축제는 일상과 대국되는 비일상의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축제의 비일상성은 일상에 대한 위반이나 전도, 폭로와 부정, 과잉과 혼돈, 섬김과 신인동락(神人同樂), 차별의 철폐 등을 통해서 실천된다. 이 축제의 실천요소들은 축제의 속성이자 변혁적 힘이다. 그래서 축제는 본질적으로 불온하다.

제정일치(祭政一致), 축제정치의 시작

우리의 축제전통은 고대국가에서 비롯한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따르면, 하늘에 제사를 지낸 뒤에 며칠 동안 사람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고 노래 부르며 춤추고 놀았다. 제사를 지낸 후에 연일 음주와 가무를 즐기며 신명을 발산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때 감옥에서 형벌을 다스리지 않고 죄수를 석방했다는 사실이다.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죄수를 석방함으로써 제정일치사회의 정치 권력자는 자신의 정치적 힘을 과시했다. 축제를 통한 정치, 이른바 축제정치의 시작인 셈이다.

축제의 기능을 보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된다.

첫 번째는 통풍효과의 관점이다. 통풍효과는 지배계급은 일상에서 억압한 피지배계급을 위해서 축제를 열어 그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것을 말한다. 축제를 통해서 억압된 일상에 일시적으로 탈출구를 제공함으로써 사회적 안전핀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관점이다. 축제에 참가한 이들은 일상의 차별을 약화하거나 무력화시켜 일시적으로 지배적 가치들을 부정한다. 축제를 통해서 현실에 맞서고 조롱하고 비판함으로써 대동성을 실현하고 신명을 발산하는 것이다.

정치적 관심을 돌리기 위해 열린 리우카니발

첫 번째 관점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브라질의 리우카니발이다. 리우카니발은 사순절의 금욕을 준비하는 카톨릭의 카니발적 전통과 브라질로 이주한 흑인노예들의 삼바문화와 결합된 축제다.

브라질의 정치세력이었던 군사독재 정권이 빈민들을 달래고 국민들의 정치적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지금은 브라질의 관광산업을 견인하는 세계의 대표적인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우리나라에서도 1981년에 ‘국풍 81’이라는 이름으로 대규모의 문화이벤트를 개최한 경험이 있다. 당시 전국에 소재한 198개 대학의 6천여 명의 학생과 일반인 7천여 명이 참가했는데, 축제 방문객이 천만 명에 달했다. 5·18광주민중항쟁 1주년을 잠재우고 민족문화를 전면에 내세워 불법적으로 찬탈한 정치권력을 정당화하려고 했던 정부의 기획으로 진행되었다.

민중들의 현실인식이 반영된 축제

두 번째 관점의 축제는 유럽의 카니발 전통에서 찾을 수 있다. 사순절 전야의 흥청망청한 민속적 전통은 14세기 초에 이르러 교회와 봉건사회의 위기를 맞이하며 더욱 거세어졌다. 그래서 독일 퀼른에서는 사순절의 성스러움과 대비되는 악마, 바보라고 일컫는 광대들이 카니발이 열리는 동안을 지배했다.

교회는 카니발 기간 동안 벌어지는 바보들의 행동이 반기독교적이라는 이유로 카니발을 금지하려고 부단한 노력을 전개했다. 프랑스 니스에서도 ‘카니발의 왕’을 허수아비로 만들어 교황 또는 영주를 풍자했다.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 전날인 ‘참회의 화요일’에 ‘카니발의 왕’인 허수아비를 화형시켰는데, 민중들의 현실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2008년에 벌어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를 위한 촛불집회’에서도 축제성을 살펴볼 수 있다. 밤마다 벌어진 시위에서 각종 공연과 음주가무가 이루어졌고 집회에 참가한 이들은 ‘안전한 먹거리를 지키기 위한 유토피아’를 이루려 했다. 여러 퍼포먼스를 통해서 축제정신이 드러난 결과였다.

18세기의 프랑스혁명, 1968년의 프랑스 6·8혁명, 1980년대의 대학 대동제 등과 같이 시위문화 속에서 축제성이 구현되는 이유는 민중창조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축제의 연행과 본질적으로 불온한 축제성, 신명의 감염 등을 통한 축제의 정치적 기능이 발휘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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