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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9.3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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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대학평가의 허와 실다양한 가치기준 평가해야 제대로 된 대학평가

   
 
 

안치용
경향신문 ERISS 소장

 
 
대학 등록금 문제와 카이스트 학생들의 연이은 자살로 어느 때보다 대학이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모든 문제의 중심에 서열화(序列化)가 있다고 지적한다. 서열화가 평가와 다른 의미라는 전제하에서 문제제기는 타당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획일적인 기준에 의한 서열화

여기서 말하는 서열화에는 획일(劃一)적인 기준에 의거한 ‘줄 세우기’라는 부정적인 시선이 담겨있다. 획일적인 기준이란, 현실에는 다양한 기준이 존재하는데 그중 하나만이 유일하게 옳은 기준이란 배제와 배타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또는 획일화하면서 포용한 여러 가치들이 그 기준이나 가치가 적용돼야 할 기관이나 주체의 성격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근본적인 의문이 있을 수 있다.

대학은 보편적인 인간 존엄성을 인식하고 존엄성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지식과 기능을 축적하는 젊은이들을 위한 공간이다. 물론 연구하고 가르치며 지성의 결을 풍성하게 만드는 학자들의 공간이기도 하다. 배움과 가르침의 공간이지만 소통의 공간이고, 각성의 공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에는 다양한 가치들이 공존하고 실험돼야 한다.

만일 서열화라는 것이 대학의 건강한 지식생태계를 파괴해 단일 종의 번식 정도만을 측정해 순위를 부여하는 것이라면 비판받아야 한다. 자연에서 목격하는 건강한 생태계에서 지배하는 종은 많지 않지만 가치 없는 종은 없다.

반면 한 종류의 작물을 대규모 심는 단작을 특징으로 하는 플랜테이션(Plantation)의 생태계 파괴는 심각하며, 종국에는 플랜테이션 자체를 위협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열화가 ‘대학의 플랜테이션화’를 지향한다면 중장기적으로 대학사회나 우리 사회 전체에 재앙(災殃)이 될 것이다.

과도한 영리추구하는 대학평가가 문제

한 걸음 더 나가 대학평가가 흔히 서열화를 고착화한다고 말한다. 시장의 평가와 사회통념을 공식화했다는 측면에서 일견 맞는 말이다. 그러나 서열화란 용어가 평가와 같은 의미라면 동의할 수 없다.

필자가 소속된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경제연구소(ERISS)’는 대학지속가능지수를 발표하는 대학 평가기관이다. 하지만 ERISS는 대학 서열화에는 반대한다. 또한 일부 교수들의 “민간의 대학평가에 반대한다”는 의견에도 동의할 수 없다. 엄밀하게 말해 민간의 대학평가 가운데 과도한 영리성(營利性)을 추구해 대학발전을 저해하는 민간평가들이 문제될 뿐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대학평가는 가능하다는 말인가. 아직까지 시민사회의 대학평가는 없다는 측면에서 그렇다면 대학에 대한 평가 자체가 없어야 한다는 말인가.

대학은 다양한 가치들이 존중받고 폭넓은 견해들이 싹을 틔우고 성장하는 우리 사회의 미래와 희망의 근거이지만, 그렇다고 성역은 아니다. 사회의 다수가 동의할 수 없는 획일적인 서열화로 대학을 시장화해서는 안 되겠지만, 대학이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책무(責務)로부터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평가가 대학평가의 문제

ERISS의 대학 지속가능지수는 서열화의 폐해를 가능한 배제(排除)하려고 노력한 민간의 대학평가이다. ERISS의 지속가능지수는 대학만을 대상으로 산출되지 않았고, 기업 공기업 지자체 국가 등 우리 사회 핵심 이해관계자를 포괄한다. ERISS가 대학지속가능지수를 발표하는 까닭은 다른 지속가능지수와 같은 목적을 지닌다. 즉 대학의 지속가능성을 높이지 않고는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학평가와 관련한 요점은 평가가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평가가 문제라는 게 내 판단이다.

ERISS 대학지속가능지수는 영어수업이 몇 개이고, 중국 유학생을 몇 명 받았으며, 논문을 교수 몇 명이 나눠 썼는지에 주목(注目)하지 않는다. 물론 또 당연히 연구실적과 강의 내용을 따지지만 교수와 학생이 수업시간에 얼마나 열띠게 소통하는지 파악하고자 애썼다. 인생문제로 상담할 교수는 몇 명이나 있는지, 비정규직 비율은 어느 정도인지 등등 소통과 상생의 관점에서 대학의 모습을 추적했다.

대학교육서비스란 관점에서 소비주체인 대학생 1만5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심층적(深層的)인 설문조사를 진행한 것은 소통의 실상을 제대로 잡아내려는 장치이다. 따라서 현실적인 제약에 따라 일부 미흡한 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ERISS의 대학지속가능지수는 충분히 의미 있는 사회적 문제제기로, ‘잘못된 대학평가’에서 벗어나 있다는 게 내 의견이다.

평가 없이는 개선도 없다는 금언을 어느 정도 수용한다면, 대학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치들을 추적하려고 노력하는 평가틀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대학평가들을 평가하는 것도 좋은 발상이다.

안치용  경향신문 ERISS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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