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의 텍스트, 횡단하는 제국, 엮은이 박광현, 이철호 엮음

과거는 일정부분 ‘지금의’ 나를 규정지어준다고 말할 수 있다. 나아가 역사는 지금의 사회와 국민의 정체성 형성에 큰 영향을 준다.

이 책의 기획은 우리나라의 지나온 과거에 대한 판단과, 그것이 오늘날 한국 사회의 근대성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밝혀내려는데 있다.

이 책의 필자들은 식민지시기에 관한 문화 연구가들이다. 그들은 우리나라의 역사 중에서도 근대의 식민지시기에 관해 집중분석한다.

지배와 피지배 혹은 제국과 식민지라는 이분법으로는 해석하기 어려운 세계들이 존재한다. 필자들은 이를 ‘이동(Mobility)’이라는 키워드로 묶어낸다. 이동하는 문화주체들이 제국과 식민지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경험한 세계를, 그리고 그 경험을 근거로 새롭게 생성된 트랜스내셔널한 문화가 당시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문학을 비롯한 학술제도와 이민사 그리고 문화지리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살펴보고 있다.

1부에서는 텍스트를 통해 2부에서는 공간을 통해 식민과 피식민의 대비되는 문화 번역을 비교한다. 생각지도 못했던 제국과 식민지 사이의 경계 인식이 은연중에 우리 문화 속에 녹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간을 통해 식민지 시기의 의미를 재생산한다는 부분에서는 이전의 연구가 지녔던 협소한 자료를 보다 풍부하게 보충하고 분석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1930년대 식민지 조선작가의 동경을 표상하는 ‘장소로서의 동경’에서의 연구들은 주로 1920년대까지의 동경체험에 대한 분석이 집중적이었다.

때문에 시기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그 의미를 생산한 동경이 지니는 전체적인 면모를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 글에서는 1930년대 이후 식민지 자각의 동경체험과 문학의 성과들을 주대상으로 하여 그것이 구현해내는 장소의 표상에 주목한다. 더불어 이국체험을 통해 여행자들이 느끼는 근대적 주체로서의 감각적·정서적 반응과 수용태도 그리고 변화하는 식민지적 정체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 동경이라는 장소에서 느끼는 조선인들의 장소 표상이 중심이라기보다는 시대적인 흐름이 주가 되어버리고 있다. 근대화와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그 안에서 자아의 정체성과 흔들리는 도덕성의 관념에 고민하는 문학가(이상, 박태원, 김소운 등)들의 복잡한 심정을 서술하고 이에 대한 작가의 감상이 주된 서술방식이다.

식민지배를 받는 국민이 독립운동은 하지 못한 채 자신의 지적만족을 위해 피식민국가에 체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적 맥락으로 일어난 이중적 행동이 정체성과 맞물린 감정에서 문학으로 표출되었다는 내용이 전부로 보인다. 글을 읽는 동안 묘한 정서적 공감과 함께 맥락을 잃어버린 문맥에 잠시 혼란이 인다. 여러 저자가 쓴 글을 모아 정리하여 묶어낸 만큼 주제와 맥락이 엇갈리는 부분들이 가독률을 떨어뜨려 아쉽다.

결과적으로, 텍스트, 여행철학, 공간을 통해 현 근대사회에서 우리의 문화 속에 기제되어 있는 식민지문화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호하게 되었다. 그러나 텍스트와 공간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통해 과거 식민지 문화가 현대에 끼치는 문화적 영향을 분석하고자 했던 신선한 시도가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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