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리고 있던 무언가를 찾는 계기

젊은날의 초상
지은이 : 이문열
펴낸곳 : 민음사
10,000원 / 328쪽
처음 제목을 들었을 때부터 호감이 가는 책이어서 무리 없이 읽어나가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읽던 중에 난 이문열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실망을 했어요.

도대체가 과장되고 애써 아름답게, 혹은 여유 있게 쓰려고 노력한 흔적을 도처에서 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모든 문학이 다 그럴는지는 몰라도 이건 단지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책에서도 이런 말이 있더군요. ‘과장과 곡필로 이루어진 미문(美文)’, 꼭 내가 하고 싶은 단어만을 가지고 표현해 놓은 것 같아요.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난... 그런 외형적인 면이 아닌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동안 내가 잃어버리고 있었던 무언가를 찾은 듯한 느낌. 절망이라는 것에 대하여. ‘절망이란 존재의 끝이 아니라 진정한 출발이다’ 예전부터 이런 말은 줄곧 들었지만 지금처럼 가슴에 와 닿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책은 매번 읽을 때마다 그 느낌이 다르다고 하죠. 선배는 이 책을 읽으며 어떤 느낌을 가졌는지 궁금하네요. 빌려준 책 정말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13년 전 어느 봄날 후배가 내게 불쑥 내민 한 장의 편지다. 읽어볼 만한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기에 나는 하루 종일 망설이다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을 권해주었다.

망설였던 이유는 이문열의 글쓰기 방식이 지나치게 허세적인 면이 있었기에 유행처럼 진정성을 쫓던 국문과 후배들에게 자칫 욕이나 들어먹는 건 아닌지 하는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적잖은 망설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국 후배에게 그 책을 빌려주었다.

내가 그렇게 한 데는 이 책이 결코 가볍게 읽어 넘길 수 없는 주제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설 속 주인공 영훈은 고등학교 시절 자신의 첫사랑이 담임선생님과 불륜관계임을 알고 방황한다.

대학에 들어와서는 이념적 갈등과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경험하고, 상류층 여대생과의 부담스러운 연애에 결국 모든 걸 접고 자퇴를 하게 된다. 어느 시골 객주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술집 아가씨 윤양의 순정을 보게 되고 인간애를 느끼게 된다.

또한 비운의 지식인 칼갈이와 함께 길을 떠나며 복수와 용서의 감정을 알게 된다. 이렇게 허무와 절망 속에 빠져 있던 영훈은 젊은 날의 노정 속에서 점차 삶의 새로운 이면들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질 수 있는 희망이다. 

오늘의 학생들에게 대학생활은 어떤 것일까? 그들이 느끼는 현재 자신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급박하게 소용돌이치는 전쟁터 같은 이 사회 속에서 그들은 주어진 삶에 절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그 절망조차 하기 두려워 자신을 둘러싼 모든 현상에 무관심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이 소설 속 영훈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20대 초반의 푸릇했던 후배가 ‘그동안 잃어버리고 있었던 무언가를 찾은 듯한 느낌’이라며 내게 건넸던 편지 한 장처럼. 나 역시 잃어버리고 있던 무언가를 찾는 계기가 되었기에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그런데 그때 내가 잃어버리고 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20대만이 누릴 수 있는 삶의 특권, 미친 젊음의 유목(遊牧)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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