退職后(퇴직후)에도 農學發展(농학발전)에 기여

  오랫동안 本校(본교)에서 農學(농학), 特(특)히 과수원예분야를 硏究(연구)하며 後輩(후배) 農學徒(농학도)들을 指導(지도)해오던 農林大學(농림대학) 農學科(농학과) 李昇雨(이승우)박사가 지난달 31日字(일자)로 정년퇴직하게 되었다.
  “그동안 東國(동국)에 몸담고 젊은 學生(학생)들과 나누던 對話(대화)를 가질 수 없게 된 것이 아쉬운 일”이라시며 모쪼록 東國(동국)의 발전을 빈다고 퇴임소감을 말씀하신다.
  “現在(현재) 학생들의 학습환경은 特講(특강)과 권위 있는 敎授陣(교수진)등으로 最大限(최대한)보장이 되어 있어서 학생들은 自己啓發(자기계발)을 充分(충분)히 할 수 있다”고 前提(전제)한 李(이)교수님, “實力(실력)위주인 現社會(현사회)에서 脫落(탈락)되지 않는 싱싱한 젊음”을 거듭 강조하신다.
  李昇雨(이승우)교수님이 本校(본교)와 인연을 맺기는 지난 50年(년)-. 35년 京都帝大(경도제대)를 졸업한 후 歸國(귀국)하여 大邱(대구)계성학교에서 첫 교편을 잡고 뒤이어 사리원 農業試驗場長(농업시험장장), 사리원農大(농대)교수 등을 역임하시다가 本校(본교)에 在職(재직), 두 차례 농림대학長(장)을 역임, 금년이 만 20여년에 이른다.
  65년도에 설립된 農林科學硏究所長職(농림과학연구소장직)을 맡고 한편으로 원예학과 경사지농업강의를 맡기도 하셨다.

  李(이)교수님이 農學(농학)에 쏟은 정열은 대단하다.
  “우리 農村(농촌)이 先進農業國(선진농업국)의 水準(수준)에 미치자면 現在(현재) 政府(정부)에서 추진 中(중)인 새마을사업을 적극 밀고나가야 할 것”이라면서 아울러 “山地(산지)개간으로 遊休地(유휴지)를 없애고 과수원예를 장려하는 것이 都市(도시)와 農村間(농촌간)의 균형을 유지하는 지름길”이라고 力說(역설), 停年退職(정년퇴직)하는 老壯(노장)으로써의 아쉬움도 잊은 듯.
  日本(일본) 仙臺(센다이)고교 在學時(재학시)엔 축구선수로 활약, 京都帝大(경도제대)때는 ‘테니스’에 또한 熱(열)을 올리셨다.
  “아직 健康(건강)에는 자신이 있다”고 소탈하게 웃으시는 李昇雨(이승우)교수님-. 退職(퇴직)후라고 해서 특별한 계획이 있으신 건 아니다. “우리나라 農學發展(농학발전)에 계속 기여”하시겠다는 말씀이고 보면 李(이)박사의 연구생활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으실 듯-.
  70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으셨고, 著書(저서)로는 ‘과수재배학’ㆍ‘복숭아재배법’ㆍ‘과수재배학각론’ 외에도 ‘호두접목에 관한 硏究(연구)’를 현재 執筆(집필)중에 계시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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