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신문 독립 - 학교신문 창간, 성격 분리도 검토해 볼만

1979년 4월 19일자
동대신문이 61돌을 맞았다. 축하보다는 고언이 더 시급한 듯하다. 요즘 동대신문은 그다지 안녕치 못하다. 일종의 ‘3D업종’이어서 신입기자가 적고, 입사해도 2년 남짓만 머물다 떠나며, 학내외 구성원들의 열독률 역시 점차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필자가 동대신문 기자로 입사하던 77년에는 두 자리 수 경쟁률을 거쳐야 했고, ‘학생이기 이전에 기자’라는 프라이드로 가득 차 있었다. 실로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아닐 수 없다.

교직원의 서랍에서 휴강 통계를 몰래 빼내어 보도하거나 계엄사령부의 검열관과 기사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등, 필화를 각오한 보도를 통해 교내외에서 주목받았던 동대신문의 기능과 위상은 많이 위축되었음을 부정할 길 없다.

동대신문, 위기의 원인은?

현재 동대신문은, 아주 냉정하게 말하자면, 때늦은 보도, 비판성이 미흡한 기사, 차별화되지 않는 기획기사, 흡인력 떨어지는 제목 등 여러 약점을 지니고 있다. 몇 가지 원인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종이신문이 전자매체에 위축되는 시대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동대신문은 현재 인터넷과 종이 두 종으로 발행되는 바, 열독률이 떨어지는 종이신문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둘째, 학생자치의 위축이다. 취업에 대한 부담은 학생기자의 활동을 위축시킬 뿐아니라 대학언론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 역시 줄어들게 만든다. 대학이 취업 준비기관처럼 되어가고 있으니 자치활동 역시 별 의미가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셋째, 이런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외부적 상황이 어려워질 때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한다면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 예컨대 발행주기를 거의 격주간에 가깝게 축소했지만 정시성의 약화는 열독률 저하를 불러왔을 터이다. 하지만 대학과 학생자치가 위기라면, 대학언론에게는 기회일 수도 있다. 위기일수록 정보의 소통이 중요해지므로.

신문의 위기는 곧 신문의 기회

2011년 3월 26일자
아침 저녁으로 인터넷 뉴스를 만나는 독자들에게 격주간의 활자신문이 어떻게 다가설 것인가. 속보성에 의존하는 보도기사 대신에 심층취재에 치중하는 것이 유력한 대안이다. 물론 최근의 지면에서 이런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원전의 안전성 관련 특집이나 해외대학 탐방 시리즈 등이다.

하지만 충분치는 못하다. 동대신문이 비교우위에 있는 영역은, 이런 학외 이슈들보다는 학내 문제일 터임에도, 학내 이슈에 대해서는 소극적이거나 비판성이 모자란다. 예컨대 퇴임총장의 인터뷰가 있을 뿐, 학내 구성원들의 ‘오영교 4년’에 대한 평가는 보이질 않는다(그에 대한 평가는 그 스스로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떠나도 동악에 남아있는 구성원들 하는 것이다).

‘살인적’ 등록금을 둘러싼 학내 갈등에서 왜 국가는 쏙 빠져있는 것인지, 대입과 취업이라는 명목 아래 강요되는 ‘공부’는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동국100년의 전통은 캠퍼스 공간의 어느 곳에 남아있는지 등의 문제를 주요한 의제로 설정해내지 못했다.

꼭 거창한 것만이 의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굳이 예시하자면, 학교 식당은 왜 맛이 없나, 한 강의실에 100명 가까운 콩나물교실은 해소할 수 없나, 학교 부근 자취집이나 하숙집들은 어떤 문제가 있나, 학교 생활협동조합이란 곳은 무슨 일을 하고 있나, 급증하는 외국인 유학생들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생활해 나갈 것인가, 졸업 후엔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꼭 취업이라는 임노동 밖에는 대안이 없나, 다른 선택을 한 선배들은 어떻게 살고 있나) 등등의 문제들이 산적해있다. 독자들이 목말라하는 문제들을 제대로 다룬다면 왜 열독률을 걱정해야 할 것인가.

신문성격 재검토도 해볼만

의제설정력이 약한 까닭은 의제설정의 능력이 모자라거나, 이해당사자의 반발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자 집단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지만, 신문의 성격 자체를 바꾸는 제도적 개선도 검토할만하다.

예컨대 학생신문의 성격과 학교신문의 성격을 공유하고 있는 모호한 상황에서 벗어나 학생신문으로 전환하면 어떨까. 현재 발행되는 웹진을 홍보기능에 주력하는 학교신문으로, 종이신문은 비판기능을 보완하는 학생신문으로 분화한다면 상생의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참고로 일본의 일부 대학신문은 재단법인으로 운영되는 바, 등록금 고지서에 학생신문 구독료가 함께 고지되는데, 70-80%의 학생들이 납부한다고 들었다. 물론 학생들이 학생신문에 대한 애정이 있기에 이렇게 납부율이 높을 터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재정적 독립이 이뤄지면, 대학언론의 독립성과 의제설정의 능력은 획기적으로 높아지지 않을까. 하지만 독립재단이냐 인터넷신문이냐 등의 문제는 오히려 부수적인 것에 속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할 말을 하는 언론을 만드는 것이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신문이라면 종이로 되어있다고 해도 외면 받지는 않는다. 누구나 궁금한 것, 나누고 싶은 말은 있다. 그것을 알려주고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해주는 언론의 기능은, 인류와 언어가 시작된 이래 지속되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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