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아 기자
▲“우리들 뒤에 빈껍데기가 된 어머니들이 이뤄낸 것을 어찌 다 헤아릴까, 그 가슴 아픈 사랑과 열정과 희생을 복원해보려 애썼고 이로 인해 묻혀있는 어머니의 인생이 사회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 나의 작은 바람이다” 최근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영문판인 ‘Please Look After Mom’가 미국에서 이례적인 판매부수를 기록했다. 사실 우리나라 출판계는 그간 미국에서 부진을 면치 못했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온전히 전달하는 것도 어렵지만 각국의 문화가 다르듯 정서 또한 판이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부탁해’가 유독 호응을 얻은 까닭은 무엇일까. 바로 사람들의 마음속을 관통하고 있는 코드인 ‘모성애(母性愛)’를 다룬 작품이라는 것이 평단의 평가다. 불모지(不毛地)에서 꽃을 피운 ‘엄마를 부탁해’의 판매부수에서 볼 수 있듯, 역시 모성애는 전 세계를 막론하고 위대한가보다.

▲최근 한 아들이 어머니를 소송(訴訟)했다. 의대 교수인 아들이 수 백억원을 사회에 기부한 어머니를 정신박약으로 몰아세운 것이다. 고인이 된 유명 과학자의 부인이기도 한 어머니는 1950년대부터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고 일부는 아들에게 물려줬다.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還元)한 것은 수년간 자식을 위해 희생한 그녀의 간직해온 꿈이자 소망이었다고 한다. 한편 무조건 아들을 나무랄 수도 없는 것이 한 두 푼도 아닌 수 백억원을 모두 기부하겠다는 어머니의 결정이 아들의 입장에선 야속할 법도 하다. 그러나 결국 법원은 어머니의 손을 들어줬다.

▲‘엄마를 부탁해’에서 가족들은 서울역에서 엄마를 잃어버린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 째, 결국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며 싸우게 된다. 그들은 좌절한다. 엄마를 잃어버린 동안 너는 무얼 했느냐고. 또 그들은 엄마에게 자신들이 모르던 모습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엄마는 가족들 모르게 생활비 중 일부를 매달 고아원에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고아원에서 찾아온 여인이 종종 자신에게 큰딸의 책을 읽어달라고 했던 얘기를 듣고 아버지는 오열하고야 만다. 억장은 무너지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그들의 내면을 읽노라면 금세 눈물이 차오른다. 

▲‘영감님 주머니 돈은 내 돈이요, 아들 주머니 돈은 사돈네 돈’이라는 속담이 있다. 아들 돈은 곧 며느리가 관리하는 돈이라는 뜻이다. 의대교수의 어머니가 설사 아들에게 돈을 물려주기 싫어서 기부를 결정한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어머니는 이미 의대교수 아들의 주머니를 위해 충분히 헌신했다. 다만 의대교수의 어머니가 조금은 남다르게 훌륭한 이타적(利他的)성품을 가진 분임은 분명하다. 엄마를 부탁해의 가족들은 늦었지만 아직 의대교수는 늦지 않았다. 비록 어머니의 가슴에 소송이라는 큰 대못을 박았지만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 어머니는 이 또한 이해할 것이다. 떠난 뒤 땅을 치고 후회해 봐도 이미 어머니는 곁에 없다. 신경숙의 작은 바람, 이뤄졌음 한다. 지금이라도 의대교수의 ‘이해’를 간곡히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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