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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授隨筆(교수수필)] 名實不相符(명실부상부)
  • 徐廷甲 (서정갑)
  • 승인 1973.09.25
  • 호수 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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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도 때로는 이상하게 생각되는 것이 있다.
  辯護士(변호사)라는 명칭에도 그러한 점이 있는 것 같다.
  辯護士(변호사)를 글자 그대로 읽는다면 辯(변)으로 지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예전에는 辯護士(변호사)가 法定(법정)에서 大雄辯(대웅변)을 함으로써 法官(법관)이 感激(감격)하여 無罪(무죄)로 하거나 減刑(감형)하는 일이 있었다. 辯護士(변호사)라는 말은 이러한 경우에는 가장 적합한 것이 된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은 刑事訴訟(형사소송)의 方法(방법)도 많이 달라지고 있으며 辯舌(변설)이 활약할 舞臺(무대)는 훨씬 좁아져 있는 것 같다. 하물며 民事訴訟(민사소송)에 있어서는 期日(기일)에도 準備書面(준비서면)을 주고받을 뿐 當事者(당사자)가 發言(발언)할 수 있는 機會(기회)는 證人訊問(증인신문)이외에는 없다. 따라서 辯護士(변호사)라는 말은 그 實體(실체)를 표현하는 것이 되지 못하고 있다 할 수 있다.
  그리고 辯護(변호)의 ‘護(호)’라는 것도 訴訟(소송)의 경우 특히 刑事(형사) 被告人(피고인)을 변호하는 경우를 생각하면 잘 이해가 되나 民事訴訟(민사소송)에 있어서 被告(피고)를 수호하는 경우는 위와 같이 할 수 있으나 原告(원고)를 心理(심리)하는 경우에는 自己便(자기편)에서 訴訟(소송)을 추진시켜야 함으로 그 限度(한도)에 있어서 攻擊(공격)을 하는 것이 되며 防禦守護(방어수호)하는 편은 아니다.
  더욱이 會社(회사)의 顧向辯護士(고향변호사)가 앞으로 체결하고자 하는 契約(계약)의 條項(조항)에 관하여 內部的(내부적)인 相談(상담)에 應(응)하고자 하는 경우와 같은 이른바 紛爭(분쟁)의 豫防活動(예방활동)에 있어서는 이를 守護(수호)하는 것으로 본다 할지라도 그 樣相(양상)은 대단히 다를 뿐만 아니라 ‘辯(변)’과는 그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활동이 辯護(변호)라는 觀念(관념)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면 辯護士(변호사)의 辯護(변호)가 아닌 活動(활동)에 置重(치중)하는 것이 되어 辯護士(변호사)라는 名稱(명칭)은 더욱 그 實體(실체)를 表現(표현)하는 것이 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辯護士(변호사)의 ‘辯(변)’이라는 글자에 대한 일반의 인상은 그렇게 좋은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예전에는 활동사진이 처음으로 생겨났을 때에는 辯士(변사)라는 職業(직업)이 있었는데, 辯護士(변호사)는 다만 그 가운데에 護(호)라는 글자를 넣은 것뿐이라  할 수 있다. 또 學校(학교)에는 雄辯部(웅변부)라는 것이 있어 辯論大會(변론대회)라든가 雄辯大會(웅변대회)같은 것이 개최되어 거기에서는 空虛(공허)한 내용을 美辭麗句(미사여구)로 엮어서 演說(연설)을 하는 일이 있다. 따라서 辯護士(변호사)의 ‘辯(변)’이라는 글자에 대하여도 일반 사람은 理致(이치)에 맞지 않는 것을 오묘한 辯舌(변설)로 說得(설득)하는 것이라는 印象(인상)을 갖기 쉽지 않은가 생각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인상으로 辯護士(변호사)의 이미지를 흐리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 眞正(진정)한 辯(변)은 理(이)와 通(통)하는 것이어야 하며 眞正(진정)한 辯護士(변호사)는 理(이)를 말로 표현하는 者(자)이어야 할 것이다.
  美國(미국)의 Lawyer라는 말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은 難點(난점)은 없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좋은 名稱(명칭)이라 생각되나 그것을 우리나라 말로 法律家(법률가) 또는 法曹(법조)라고 번역한다면 辯護士(변호사)의 職業(직업)내지 地位(지위)를 표시하는 名稱(명칭)이 된다고는 할 수 없다. 法務士(법무사)라 번역하는 것도 一案(일안)이라 할 수 있으나 이것 역시 辯護士(변호사)의 직업을 충실히 표현하는 말로는 볼 수 없다. 또 醫師(의사)라 하는 것과 같이 法師(법사)라는 말도 생각할 수 있다. 以前(이전)에는 中國(중국)에서 辯護士(변호사)를 律師(율사)라고 한 적도 있었다. 筆者(필자)로서는 결국 좋은 案(안)이 없으므로 辯護士(변호사)라는 말을 그대로 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되나 根本問題(근본문제)는 實體(실체)이며 명칭은 아니다. 辯護士(변호사)에 대하여 중요한 것은 辯(변)이 아니고 理(이)라 할 수 있으며 또 紛爭(분쟁)이 생겼을 때에 當事者(당사자)의 이익을 守護(수호)하는 것만이 辯護士(변호사)의 職務(직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즉 紛爭(분쟁)의 豫防(예방)이란 辯護士(변호사)의 辯護(변호)아닌 領域(영역)에도 辯護士(변호사)의 활동이 今後(금후)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더욱 名實(명실)이 相符(상부)하지 않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徐廷甲 (서정갑)  法政大法學科敎授(법정대법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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