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烔秀著(김동수저)

  韓國語(한국어)의 연구 대상이 訓話(훈화) 注釋(주석)의 領域(영역)에서 벗어나 比較言語學的(비교언어학적) 방향으로 그 면목을 쇄신하고 있다.
  이에 副應(부응)키 위하여 흔히 우리 국어와 系譜的(계보적)관계(genealogical affinity)에서 共通祖語(공통조어)로 일컬어지는 소위 Altai語族(어족)(蒙古語(몽고어), 滿洲語(만주어), 土耳其語(토이기어), 日本語(일본어))에 대한 기초 작업이 진행되어 이미 數三(수삼)의 종요로운 論考(논고)가 學界(학계)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일찍이 金烔秀(김동수)교수도 蒙古語(몽고어)에 착안하여 국어학자인 그가 無師(무사) 獨學(독학)으로 도전하여 學的(학적) 蘊奧(온오)를 쌓은 지 십여 성상, 인생의 黃金期(황금기)로 일컬어지는 그의 30代全般期(대전반기)를 蒙學(몽학)3書(서)의 자료 수집 및 그 정리로 깡그리 散華(산화)되었다 하더라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몽고는 ‘칭기즈칸’의 세력이 강대해짐에 따라 高麗(고려) 高宗(고종)때부터 恭愍王(공민왕)에 이르기까지 약 80여 년간 몽고의 帝制(제제)와 간섭을 받아 왔으며, 이로 말미암아 우리의 政治社會(정치사회) 및 언어문화에 다대한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高麗史(고려사)나 高麗史節要(고려사절요) 등의 史書(사서)에서도 허다한 蒙古式(몽고식) 人名(인명), 地名(지명), 官命(관명)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좋은 그 例(예)라 하겠거니와 또한 李朝(이조)에 접어들어서는 국가적인 사업으로 司譯院(사역원)을 설치하여 隣接諸國(인접제국)인 漢學(한학), 蒙學(몽학), 倭學(왜학), 淸學(청학)등의 4書(서)를 연구하고 그 譯官(역관) 양성에 부단히 노력하여 이로부터 우리나라에 蒙學者(몽학자)가 배출되고, 蒙學書(몽학서)가 간행되었던 것이 甲午更張(갑오경장)이후부터는 오히려 방치상태이었다. 그러나 金(김)교수는 몽고어에 대한 這間(저간)의 중요성을 看破(간파)하여 刻骨(각골)10년의 功績(공적)을 쌓아 蒙學(몽학)3書(서) 연구라는 6백여頁(혈)의 浩瀚(호한)한 大著(대저)를 上梓(상재)케 되었다.
  蒙學三書(몽학삼서)라 함은 저자도 이미 밝힌 바와 마찬가지로 蒙古語(몽고어)의 讀本類(독본류)에 속하는 蒙語老乞大(몽어노걸대)와 捿解新語(서해신어) 그리고 辭書類(사서류)에 속하는 蒙語類解(몽어유해)등을 말하는 바, 원래 李朝時代(이조시대)에는 蒙學書(몽학서)가 20數種(수종)에 달하였으나 현존 蒙學書(몽학서)로서는 이 3종만이 유일한 자료일 뿐이다.

  이제 그 編著(편저)를 보이면 저자는 本書(본서)를 4부로 나누어 Ⅰ蒙語老乞大(몽어노걸대), Ⅱ捿解新語(서해신어), Ⅲ蒙語類解(몽어유해)의 순으로 저술하였고 더욱이 Ⅳ에서는 語彙索引(어휘색인)까지 붙이는 친절을 베풀고 있다. 특히 蒙語老乞大(몽어노걸대)와 捿解蒙語(서해몽어)는 原文(원문)의 蒙文(몽문)을 N.Poppe교수의 Grammar of writte mongolian의 체계를 따라 Roma 字(자)로 轉寫(전사)하여 初心者(초심자)로 하여금 보기에 편리를 도모하였다.
  더욱이 本書(본서)의 출간으로 말미암아 국어학의 深化(심화)내지 그 계통 정립을 위하여 필요불가결의 書(서)인 동시에 이제까지 西歐(서구)의 學者(학자)들에 의하여 연구되어 오던 蒙學(몽학)이 이제 우리 동양학자의 손에 의하여서 그 연구가 시작된데 대하여 의의 있는 일이며, 이를 계기로 하여 앞으로 보다 활발해질 蒙學(몽학)연구에 있어서 金(김)교수의 업적은 加一層(가일층) 빛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끝으로 金(김)교수는 더욱 精進(정진)하여 다음 著述(저술)은 자료정리에서 벗어나 國語學(국어학)과의 비교언어학적 입장에서 제2의 公刊(공간)을 기대하면서 國語學徒(국어학도)및 史學徒(사학도)는 물론이거니와 東洋學(동양학)에 관심 있는 江湖諸彦(강호제언)에게 必讀(필독)을 권하는 바이다. (螢雪出版社刊(형설출판사간) 菊版(국판) 571頁(혈)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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