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수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만수
국어국문학과 교수

대학생들이 군복을 입고 군사훈련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총학생회장은 사단장, 학과 대표는 소대장이라 불러야 했다. 학도호국단은 1985년에야 폐지되니 그리 오래된 옛날 얘기는 아니다. 대학생들은 ‘학생=군인’이었다.

80년대 잠깐 대학은 변혁운동의 중심지였지만 90년대 이후 기업경영의 논리에 포섭되었다. 예컨대 오영교 전총장이 취임일성으로 내세웠던 ‘고객만족경영’도 그 연장선상이다. 이제 ‘학생=고객’이 되었다. 최대한
호의적으로 해석한다면, 그동안 교육 수요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음에 대한 반성이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 이후의 행정들을 보면 대학경영에 기업의 논리를 기계적으로 이식한 데 불과했다.

김희옥 총장은 취임하면서 스승과 제자의 사랑을 강조했다. 일단 긍정적이다. 하지만 성급하게 판단하기는 어렵다. 구체적인 제도들로 어떻게 실천되는가를 지켜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대학의 경영은 군대의 논리에서 기업의 논리로 이행해왔으며, 이제 진리, 자유, 정의, 민주, 자치 등의 이상들이 아직도 대학에 남아 있는 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과연 그래도 좋은가, 대학은 기업처럼 경영되면 그만인가.

대학들이 경영의 모범으로 삼고 있는 기업에서조차 변화는 시작되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는가하면, 좀더 적극적으로는, 사회적 기업이 활발하게 대두되고 있다. 사회적 기업은 시민사회의 공공성과 기업의 효율성을 결합해보자는 시도이다. 좋은 일을 효율적으로 해보자는 것.

영국의 경우 사회적 기업이 5만여 개에 달하며 그 매출은 GDP의 1%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1996년). G7 정상들과 빌 게이츠 등 거대기업의 리더들이 모인 다보스포럼에서 ‘사회적 기업가’들을 대거 초청하여 대안적 미래를 논의했다(2009년). 그라민은행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유누스의 사례도 있다.

사회적 기업은 해외에서는 각광받는 미래 대안 중의 하나이며 한국에서도 최근 활성화되고 있다. 이 사회적 기업의 정신과 성공에서 대학 운영을 위해 배울 바는 많다고 판단한다. 대학은 공공성이 강력한 기관인 데다가, 효율적으로 운영될 필요가 있으므로 그렇다.

예컨대 사회적 기업 중에는 부유한 나라에는 비싼 값에, 가난한 나라에는 싼값에 보청기를 수출하는 곳이 있다. 환자의 경제력에 따라서 치료비를 차별화하는 병원 도 있다. 대학 등록금을 그렇게 하는, ‘빈자일등(貧者一燈)’의 등록금제도는 불가능할까. 그밖에도 상상력을 자극하는 보기들은 많다. 그라민은행이나 대안화폐 운동의 모델을 대학에서 도입할 수는 없나. 학생 선발및 교육제도의 일정부분을 학과에 넘겨줄수는 없나.

물론 이런 보기들은 아직 개인적 발상에불과하며, 치밀한 검증을 거쳐야 정책화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역사의 검증을거쳐 분명히 아는 것도 있다. 개혁이 불가능 하다는 소위 전문가들의 의견은 사실은 개혁하기 싫다는 말에 불과한 경우가 많음을.

실제로 일어난 의미있는 개혁의 대부분은비전문가들의 엉뚱해 보이는 발상에서 시작되었음을.

사회적 기업의 모델을 대학에 접합시키는 실험은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닐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 대학은 작년 강의교과목 공모에서 사회적 기업을 주제로 하는 강의를 신설하고 싶다는 신청을 탈락시켰다. 가장 손쉬운 실험일 텐데, 스탠포드와 하버드에서는 사회적 기업을 위한 협동과정을 만든 지 오래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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