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韓出版文化(대한출판문화)협회주최-‘讀後感募集(독후감모집)’佳作(가작)

  Ⅰ
  -인간은 필연적으로 위대해져야만 했다.
  이것이 ‘인간의 역사’가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명제다. 그러면 무엇이 인간을 위대하게 만들었는가, 필연적이란 형용사를 쓰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그 무엇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으며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이리인’은 이 해답을 얻기 위해 지구 속에 있는 모든 것에 투망을 던졌다. 그리하여 화석과 동굴과 호수 밑바닥과 지층과 강변의 조개 무덤과 그 속의 유물들-예를 들어 돌화살과 그 옆의 부서진 짐승 뼈 불탄 흔적, 토기에 붙은 수 천 년 전의 벼이삭, 녹슨 구리칼 등이 투망에 걸려들었다. ‘이리인’은 이런 유물이 가지고 있는 모든 가설을 하나하나 찾아내어 역사라는 실을 꼬았다. 마치 하나의 낙엽에서 이 우주에 가을이 온 것을 알며 흔들리는 잎사귀에서 바람의 모습을 찾아내는 시인의 창작을 시도한 것이리라.
  그리하여 창세기를 중심으로 하여 역사의 실을 반지름으로 한 몇 개의 원을 그렸다. 그 원의 중심은 나무 위에 살고 있던 원숭이였으며 시간이라는 종적(縱的)인 원둘레 속에 포함된 횡적(橫的)인 지역의 모습들이 각자의 원 속에 확실한 물증을 바탕으로 나타났다. ‘인간의 역사’라는 원이 창조된 것이리라.
 
  Ⅱ
  ‘이리인’의 ‘인간의 역사’는 ‘스펜서’가 처음 사용한 “적자생존”의 원칙을 적용 데 살아있는 학문의 빛을 낸다고 생각한다.
  적응의 문제는 생존의 문제가 아닌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면 살고 그렇지 못하면 자연 도태되는 자연의 철칙을 인간은 지혜와 끊임없는 의지의 투쟁으로 극복했던 것이 아닌가.
  인간의 위대성은 자연에 적응하는 ‘탈바꿈’에 있었다.
  네 개의 발을 가졌던 원숭이가 두 개의 손과 발로 자신을 변신시켰을 때 거기 최초의 인간이 탄생되었다. 나무 위에서 지상으로 내려온 인간이 두 손에 몽둥이와 돌도끼, 돌칼, 돌화살을 만들어 사용할 때 인간의 손은 길어지고 날카로워지고 공중을 나를 수도 있는 도구를 가진 사냥꾼으로 탈바꿈했던 것이니까.
  빙하기에 숲을 나선 인간이 추위에 대항하여 ‘의지의 힘’인 불을 발명하고 (그렇다! 발견이 아니라 발명인 것이다)큰 짐승을 사냥하는데 필요했던 지혜로서 손짓ㆍ몸짓ㆍ부르짖음의 원시언어인 집단적 신호를 사용하고 동굴과 바위틈의 주거지에서 사냥한 짐승 가죽을 벗겨 제2의 피부인 옷을 디자인하는 모습은 장엄한 인간승리의 일대 ‘드라마’라 아니할 수 없다.
  이 ‘드라마’는 과학적 관찰에 의해 산문시의 기록을 남기고 있는 ‘파브르’의 ‘곤충기’가 따를 수 없는 장대한 ‘스케일’을 가지고 있다. 또한 동물의 고독을 상상하여 동물의 일대기를 시정 넘치게 표현한 ‘시이튼’의 ‘동물기’와도 전혀 다른 인간행진의 발자욱 소리를 쿵쿵 울리고 있다.
  곤충이나 짐승들은 의지라는 정신과, 도구라는 수단을 결핍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인간은 주어진 운명을 의지와 도구라는 키로 조정하고 있는 것이다. 동물은 자연에 복종하지만 인간은 자연에 적응하여 공존하는 것이 아닌가. 여기에 인간의 위대성이 두드러진다고 생각한다.

  Ⅲ
  빙하기가 지나가자 다시 숲이 생겨났다. 여기에서 인간은 추위에 대항하는 새로운 탈바꿈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이미 주어진 경험과 도구는 이 작업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인간은 나무 위의 원숭이가 아닌 강한 사냥꾼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즉 돌도끼로 나무를 베고 숲을 불 질러 통나무집을 짓고 거기 정착했다. 숲 대신 변한 초원의 짐승을 효과적으로 사냥하기 위해 개를 훈련시켜 협력자로 만들었다.
  인간은 강으로 나가 뚝을 높여 강의 범람을 막으며 통나무의 속을 파 배를 만들어 고기를 낚고 강을 건너갔다.
  새끼 짐승을 기르면 더 크고 더 많은 짐승을 얻을 수 있다는 지혜는 한 알의 밀을 심어 몇 십 알의 밀로 늘려 수확하는 목축과 농경의 중요성을 가르쳤다. 더구나 먹이를 찾아 헤매는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지 않아도 되었을 때 인간은 그 시간과 노력을 다른 일에 활용할 수 있었다.
  인간은 이제 사냥꾼과 어부와 농부의 자격을 구비했다. 자기 속의 가능성을 계속 발견하여 자연의 변화에 적응시키는 창조적 생활로 변신할 때 이런 결과를 나타냈던 것이리라.
  농부는 수확물 중의 하나인 아마를 말리고 씻고 널어 만든 실로 옷감을 짜는 직물공이 되었다. 또 땅굴을 파 캐낸 구리를 불에 녹여 사냥에 필요한 창과 삽과 곡괭이를 만들며 갱부와 대장장이가 되었다. 어부는 더 큰 배를 만들어 바다를 건너 신대륙을 발견하여 탐험가가 발견한 영토를 자기소유로 하는 정복자로 변했다. 환희에 넘친 노래가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팔과 다리와 몸에 실려 춤이 나왔다.
  마침내 ‘완성된 인간’이 탄생하였다. 인간은 이제까지의 사냥꾼과 어부와 농부에다 직물공, 갱부, 대장장이, 탐험가, 정복자, 가수와 무용가…를 결합시킨 거인의 위용을 자랑하게 된 것이다.

  Ⅳ
  자연의 한 구성원이며 수명자(受命者)였던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 또 거인이 되기 위해서 필요했던 이런 탈바꿈은 자연의 파괴가 아니라 적응이며 자연의 역행이 아니라 순응이었다. 왜냐하면 인간은 어디까지나 자연 속에서 태어나 자연에 의지해서 살아났고 자연과 공존하는 사실은, 자연을 파괴하며, 순응을 무시하는 현대의인간이 드디어 공해의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사실로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은 그의 모태인 자연을 결코 정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혜와 의지와 도구는 어디까지나 자연의 순리 속에서만 가능한 것일 테니까. 이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 ‘이리인’은 자연의 모든 것에 투망을 던져 인간이 ‘자연인’이라는 것을 밝히는 작업에 헌신하였고 마침내 순수한 학문연구의 기쁨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역설하는 ‘인간의 역사’를 써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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