讀書特輯(독서특집) 冊(책)속에서 自由(자유)를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겠지만, 慾心(욕심)을 지나치게 부려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독서의 경우에 특히 나타난다. 그렇게 많은 책들을 모두 읽거나 수집한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 여겨서 도움이 되지 않는 책만을 골라 읽는다는 것도 객관적으로 보면 곤란한 일이다.
  책을 직접 읽는 것에 앞서 먼저 필요한 것은 책을 선택할 줄 아는 눈과 스스로의 교양 문제이다. 이러한 교양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思想史(사상사)’나 ‘學說史(학설사)’의 범주에 드는 책을 먼저 고르는 것이 현명한 일인 것이다. 왜냐하면 思想(사상)의 흐름, 理論(이론)의 계보를 모르고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고삐가 풀린 벌판의 망아지와 같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思想史(사상사)’와 ‘學說史(학설사)’의 범주에 드는 독서대상은 스스로의 전공에 관계없이 지식인의 양식이고 기본적인 교양이 되기 때문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앞으로 연구하고 독서를 해나가는데 있어 質的(질적)인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인간 사회를 정리해 온 思想(사상)과 理論(이론)의 계보를 정확하고 명백하게 배워 익히는 일이다. 그러한 바탕을 위해서는 思想家(사상가), 理論家(이론가) 또는 著者(저자)와 더불어 그들의 저서를 외우는 일이다.
  저자와 저술에 관한 정확한 지식 없이, 한없이 많은 수량의 저서와, 깊은 뜻을 안고 있는 저서의 내용을 계통적으로 체계화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작업은 대학시절의 정확하고 명철한 암기력을 지닌 때에 반드시 해놓아야 할 일이다. 여기에 나이가 들어 독서하는 것과 젊었을 때 독서하는 것과의 큰 차이가 있다. 즉 나이가 들어 독서하는 것은 시간을 메꾸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젊었을 때의 독서는 생산적인 목적을 위한 것이 된다.

  책을 통해 본격적으로 스스로의 양식을 거두어들이기에 앞서 위에서 말한 기초 작업을 할 때는 解說書(해설서)를 읽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해설서도 권위 있는 것을 골라야 할 것이다. 그러한 기초 작업의 단계가 지나면 ‘原著(원저)’를 읽어 극복하는 일이다.
  여기에서 ‘原著(원저)’라고 하는 것은 원문 그대로 또는 번역된 원저서를 읽는다는 것이다. ‘원저서’를 접하지 않은 독서란 수박겉핥기와 다름이 없다. 또 원저서를 읽는다 하더라도 이미 思想(사상)이나 學說(학설)의 계보와 체계가 서있는 바탕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그러한 독서의 단계가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단계의 독서는 취미나 가벼운 마음가짐으로는 거의 어렵다는 체험을 지니고 있다. 사실로 ‘원저서’를 독파하고 정복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원저서가 안고 있는 환경이 다르고 思想(사상)적인 상황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환경과 思想(사상)적인 상황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책을 읽어나가면 더욱 쉽게 정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단계의 독서가 보다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노트를 하거나 카드를 만들어 가면서 읽으면 보다 생산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그 내용을 가능한 한 암기하여 잊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도 빼 놓을 수 없는 작업의 하나이다. 대개 이 단계까지에 이르면 사상이나 理論(이론)적인 계보를 從(종)으로 하고 개별 원저술의 내용을 橫(횡)으로 하는 思想(사상)적 (또는 哲學(철학)적)인 틀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思想(사상)적인 틀은 스스로의 전공과목이나 연구를 위한 立體(입체)적인 바탕이라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現代(현대)적인 사상이나 이론이 따르는 계보를 스스로 찾는데 크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아마 교양인 또는 지식인으로서 필요로 하는 독서는 이 단계에서 폭을 넓히는 것이 된다.

  그리고 연구에 종사하고자 하는 자의 독서의 발전은 그 단계에서 쌓아올리는 細分化(세분화)된 전문적인 영역에 드는 일이다.
  전문적인 연구를 하는 또는 교양을 위해서 이런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하나의 습관이다. 습관의 인류학 또는 심리학적인 풀이가 그러하듯, 스스로를 스스로가 알지 못하고서는 능률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을 이끌어 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독서에 앞서는 것은 사색의 습관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事物(사물)을 손 가볍게 보아 넘기는 성격의 所有者(소유자)에게는 흥미 본위의 잡다한 (또는 체계가 서지 않는)독서 방법이 적합하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거리의 哲人(철인)행세를 하는 사색의 노예가 되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事物(사물)의 存在(존재)에 당하여 思想的(사상적)으로 체계적으로 그리고 論理的(논리적)으로 스스로의 생각을 표현할 줄 아는 지식인이 되기 위한 사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색의 습관은 독서의 결과를 효율화시키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또 보다 능률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어떤 사상가나 이론가의 저서를 다했을 때, 그 내용을 의식적으로 그러나 논리적으로 그리고 또 사상적으로 부정해 보는 독서의 태도를 우선 지녀본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思想家(사상가)나 理論家(이론가)에게 同化(동화)되고 안 되고는 별 문제이다.
  이 때 그 책이 개인소유의 것이면 그 책의 여백에 ‘코멘트’를 써가면서 읽어 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의 하나이나 개인 소유가 아닌 경우에는 ‘노트’에 별도로 ‘코멘트’를 하는 것도 또 다른 방법이 될 것이다.
  어떤 책이라 하더라도 모든 저자에게는 저자 나름의 人生觀(인생관)과 心血(심혈)을 기우려 쏟은 저술의 결실이다.
  완전히 독파하여 그 책에 대한 독자 나름의 입장이나 태도가 서기 전에는 경솔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신중한 자세도 독서를 위한 마음가짐의 하나이다. 결국 모든 책은 소중하다는 인식 없이는 독서는 이루어 질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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