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敎徒(청교도) 傳統(전통)속의 갈등

  小說(소설)이란 허구이다. ‘픽션’ 즉 作者(작자)의 상상력으로써 創造(창조)한 가공적인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가공적인 이야기 속에는 진실이라는 것이 있다. 때문에 소설을 읽으면 그대로 넘겨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주홍글씨’는 미국의 대표적 작가 ‘나다니엘ㆍ호오돈’의 代表作(대표작)이며 미국문학에 있어서 傑作(걸작)의 하나라고 일컫는다.
  이 作品(작품)을 요약해서 말한다면 ‘뉴우ㆍ잉글랜드’에 남편보다 먼저 떠나온 아내 즉 ‘헤스터’가 남편이 오지 않는 사이에 어떤 청년 목사 ‘띰즈데일’과 간통하여 아이를 낳게 된다. 그래서 그 당시의 律法(율법)에 의하여 A라는 표지를 가슴에 달게된다. (A는 간통 <Adultery>의 머리글자이다.) 이 광경을 뒤미쳐 이곳에 와서 보게된 ‘치링와스’는 復讐(복수)를 생각하게 되며 드디어 청년목사는 良心(양심)의 고민으로 말미암아 몸부림치다 죽게 된다는 것이다. 흔히 있을 수 있는 事件(사건)을 小說化(소설화)한 것이다. ‘잉글랜드’에는 이른바 淸敎徒(청교도)의 律法(율법)이 지배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생각하는 靈魂(영혼)이 있는것이냐, 아니냐하는 자체부터가 오늘날까지 숙제로 남아있지 않은가? 이 영혼의 문제를 파헤친 作者(작자)의 ‘호오든’은 이 영혼의 作用(작용) 밑에서 ‘헤스터’가 범한 姦通罪(간통죄)를 취급하였다고 할 수 있다.
  小說(소설)에서 表現(표현)하듯이 罪(죄)의 표적으로 朱紅(주홍)글씨를 가슴에 단 여인이, 앞으로 올지도 모를 무슨 행복을 기대나 하는 것처럼, 참회의 생활을 계속하고 告白(고백)의 기회를 얻지 못하여 늘 고민을 하다가 드디어 죽음 앞에서 ‘띰즈데일’이 이제야 자기의 영혼이 구제받았다는 소리를 외치는 마지막 대단원, 말하자면 ‘띰즈데일’과 ‘헤스터’ 이 두 사람은 영혼의 세계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뻐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순수한 사랑인가.
  외면세계보다도 내면세계를, 주인공 자신의 육체보다는 정신을 높이 사서 소설을 썼다. 우리들이 숙제로 생각해야 할 심리세계를 파헤친 문제 작품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 것이다. 특히 죄의 悔恨(회한), 선과 악의 투쟁, 영혼의 생태와 호흡 그리고 주인공 ‘띰즈데일’의 고민과 생장과 퇴보를 세밀하게 파헤치는 주제에서, 나는 더 할 수 없는 이상한 충동을 받았다.

  이 作品(작품)에서의 숙제, 그것은 作品(작품)에서의 여주인공 ‘헤스터’가 가슴에 단 A자 즉 姦通(간통)의 표지는 ‘헤스터’ 자신만이 가져야할 슬픔인가. 또한 고민 끝에 刑臺(형대)위에서 숨이 끊어진 ‘띰즈데일’은 그 사람만의 고민의 죽음이었을까? 하는 것이다.
  여기서의 二律背反(이율배반), 精神(정신)과 肉體(육체)가 한 덩어리가 될 수 없는 방황의 길, 솔직히 말해서 이 作品(작품)이 오늘날까지 많이 읽혀진 이유를 따진다면 바로 이런 영혼의 세계를 파헤친 問題作(문제작)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作者(작자) ‘나다니엘ㆍ호오든’은 ‘메사추세츠’주의 ‘살렘’에서 출생하였고 ‘에머슨’이나 ‘쏘로오’와 같은 시대의 사람이었다. 대체로 ‘메사추세츠’라는 곳은, 영국의 청교도들이 美國(미국)으로 이주하여 최초로 생활의 기초를 닦은 곳이며, 청교도의 傳統(전통)이 강한 곳이었다. 美國(미국)에 이주해온 청교도들은 지금의 미국사람들이 거짓말같이 생각되리 만큼 엄격한 道律法(도율법)을 지키고, 사치를 피하고,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향락적인 것은 배척하고 小說(소설)이나, 演劇(연극), 音樂(음악)같은 것도 금지되어 딱딱한 氣風(기풍)이었다.
  人間味(인간미)가 메마른 것이다. ‘호오든’은 자기주위에 남아있는 이러한 낡은 淸敎徒(청교도)의 전통에서 小說(소설)의 素材(소재)를 취하였다. 淸敎徒(청교도)들의 嚴格(엄격)하고 음울한 생활 분위기를 念頭(염두)에 두지 않고서는 이 作品(작품)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전제한 대로이다.

  이 作品(작품)을 두 번째 읽으면서 나는 몇 번이고 混亂(혼란)에 빠졌다. 그것은 바로 作家(작가) ‘호오든’의 人間像(인간상)이다.
  읽으면 흥미 없는 작품이지만, 또다시 읽으면 무엇인가 놀라움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 또한 가슴을 울적하게 하는 힘, 이것은 아마도 ‘호오든’이 淸敎徒(청교도)들의 엄격한 생활 속에서도 인간성을 발견하여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작품을 통하여 精神(정신)과 肉體(육체)를 함께하려는 마음이 깃들게 되었고, 또한 나의 좁은 文學觀(문학관)에 반성을 가지게 했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부조리한 感想(감상)들은 일종의 군더더기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