哲學會(철학회) 제1회 디오니소스祭(제)에서

  “우리들에게 있어서 最大(최대)의 축복은 狂氣(광기)에 의하여 나타난다. 그러나 그 狂氣(광기)란 神(신)의 贈與(증여)에 의하여 주어지는 것이라면!”이라고 ‘소크라테스’는 ‘파이드로스’편에서 告(고)한다. 파이드로스편의 豫言的狂氣(예언적광기) (Apollon) 祭儀的狂氣(제의적광기)(Dionysos) 詩的狂氣(Mousa) 사랑(eros)의 狂氣(광기)(Aphrodite)등 4種(종)의 神的狂氣(신적광기)는 합리주의의 원조인 ‘소크라테스’, ‘플라톤’이 동시에 非理性的(비이성적)충동이면서 淨化的(정화적)인 디오니소스의 祭儀(제의)를 內的(내적)으로 수용함으로서 새로운 神話(신화)내지 종교적  世界觀(세계관)을 확립하였음을 함축하고 있다.

  디오니소스(혹은 Bakchos라고도 함)는 원래 트라키아와 마케도니아지방의 종교적인 狂亂(광란)을 동반하는 祭儀(제의)의 神(신)이었다. 초기에는 주로 여성들에게 열광적으로 숭배를 받는 신으로서 여성들로 하여금 이 神(신)에 의하여 광기에 걸려 집을 버리고 산이나 들판으로, 나가 머리에 松冠(송관)을 쓰고 野獸(야수)를 도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광란의 제의의 이면에는 인간의 非理性的(비이성적)충동이 억압되었을 때 그것이 집단 ‘히스테리’의 현상으로 되어 언젠가는 마침내 폭발하고야 만다는 사실이 음폐 되어 있다는 것을 암살하여 생으로 흐르는 피를 마시며, 妄我的陶醉(망아적도취)의 난무를 하며 열광하는 일종의 秘儀的(비의적) 종교행사의 主神(주신)이었다.
  그러므로 디오니소스祭儀(제의)는 인간의 非理性的(비이성적)충동과 欲求不滿(욕구불만)을 진정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祭儀行事(제의행사)였다. 따라서 이것은 사회적 필연적 요구였으며 可死的存在(가사적존재)인 불안하고 허무한 인간에 대해서 볼 때 근본적으로 깊은 종교의 세계와 연관되어있음을 認知(인지)할 수 있다.
  디오니소스神(신)은 포도의 神(신)이요, 술의 神(신)이며, 本質的(본질적)으로는 還生(환생)의 神(신)이다. 그리고 또 디오니소스는 喜悅(희열)의 神(신)이요, 어느 시대에도 民衆(민중)의 神(신)이었고 마술적 환상의 主神(주신)이었다.
  그는 自制心(자제심)을 상실하고 자기가 自己(자기)아닌 것으로 되게 하며 책임을 放棄(방기)하는 放逸者(방일자)가 됨으로써 忘我陶醉(망아도취)의 ‘엑타시스’를 맛보게 하여 마침내는 至高(지고)의 인격의 변혁을 가져오게 하여 종교적 逆轉(역전)을 가능케하는 마술적 신이다. 말하자면 고독한 可事者(가사자)가 황홀한 영원의 不死者(불사자)가 되려는 충동적 狂氣(광기)의 祭儀(제의)에서 종교적 세계를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헤시오도스는 디오니소스를 ‘포류게데스’(기쁨많은 者(자))라 하였고 호메로스는 ‘카르마 푸로도이신’(죽어야 할 자에 대한 기쁨)이라고 읊었다. 분명히 디오니소스祭儀(제의)는 인간들로 하여금 자기자신을 망각하게 하여 民衆(민중)을 해방시키고 카타르시스 시킬 수 있는 秘儀(비의)의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可滅者(가멸자)가 可滅者(가멸자)에 對(대)한 울분의 소용돌이’에 지나지 않았고 宗敎(종교)의 提案(제안)에 불과하였다.

  디오니소스祭(제)가 그리스로 傳波(전파)되어 델포이神殿(신전)으로 다가왔을 때 ‘너自身(자신)을 自覺(자각)하라’라는 理性的(이성적)인 아폴론 종교와 ‘너 自身(자신)을 忘却(망각)하라’라는 衝動的(충동적)인 디오니소스 종교는 서로 相反的(상반적)인 敵對關係(적대관계)임에도 불구하고 兩者(양자)는 서로 배척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理性的(이성적)인 아폴론은 自己(자기)속에 熱情的(열정적)인 디오니소스를 포섭함으로써 아폴론의 知的世界(지적세계)의 限界性(한계성)을 초월할 수 있었고 마찬가지로 디오니소스는 自己(자기)가 아폴론에게 포섭됨으로서 狂亂(광란)의 Titan的(적)인 要素(요소)를 배제하고 淨化的(정화적)인 종교적 세계를 實現(실현)시킬 수 있었다.
  詩(시)와 哲學(철학)의 중간에 서서 이 둘을 종합하여 종교를 세웠던 오르페우스主義(주의)는 바로 前述(전술)한 사상에 연유한다. 델포이神殿(신전)의 ‘너 自身(자신)을 자각하라’의 소크라테스의 인용은 認識(인식)의 主知的(주지적)자각과 함께 ‘너 자신이 죽음의 존재라는 것을 알라’라는 實存的(실존적) 自覺(자각)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죽음의 존재인 限(한) 종교적 구원은 絶對的(절대적)요청이며 종교적 세계는 단순히 理性(이성)으로는 해결되지 않으며 그러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다시 서두에 진술한 ‘最大(최대)의 축복은 狂氣(광기)에 의하여 나타난다’고 航海(항해)의 변경을 토로하는 것이다. 이것은 디오니소스에 의한 미토스的(적)인 종교적 熱狂(열광)을 표시하는 것이며 可死者(가사자)에서 不死者(불사자)에로 ‘轉向(전향)’함을 선고하는 것이다. Dodds가 말하고 있듯이 그리스인은 神託(신탁)을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미신에 가득 찬 愚者(우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은 神託(신탁)을 믿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로고스의 한계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디오니소스적 啓示(계시)의 세계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만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世界(세계)(彼岸(피안))를 幻視(환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빈델반트는 그의 ‘플라톤論(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先行(선행)하는 一切(일체)의 학설의 종합적 결과로서 플라톤이 철학적 분석의 길을 통하여 도달한 세계관은 영혼에 관한 디오니소스적 敎說(교설)까지도 그 속 (에로스)에 위취를 取(취)한다. 아니 그것만이 이 세계관의 필연적 결론이라고 보여질 만큼의 성질을 갖고 있다.
  이것은 플라톤의 에로스가 오르페우스的(적), 디오니소스的(적), 구제의 종교와 조화하고 있음을 뜻한다. M.C.D' Arcy가 말했듯이 ‘사실 그것은 새로운 哲學的(철학적) 의상을 걸친 낡은 정열이다.’
  그리스人(인)들은 동방의 신비적 정열인 디오니소스와 상봉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아카데미아에서 예지와 德(덕)의 훈련을 쌓았던 그들이 忘我(망아)의 도취 속에 魂(혼)을 달래는 음악을 경청하게 되고 자기들의 원천의 고향인 靈的(영적)세계를 詩作(시작)하게 되었다. 올페우스敎(교)는 물론 소크라테스의 ‘Daimon의 소리’가 그것이요, 플라톤의 로고스와 미토스와의 중간자인 에로스가 바로 그것이다.
  Dodds는 코류판데스風(풍)의 祭儀(제의)와 디오니소스風(풍)의 그것과의 사이에는 本質的(본질적)인 類似性(유사성)이 있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이 兩者(양자)는 모두 傳染性(전염성)의 오르기아的(적) 音樂(음악)을  同伴(동반)하는 오르기아的(적) 舞踏(무답)에 의하여 카타르시스를 行(행)한다고 말한다. 이 音樂(음악)은 피리와 太鼓(태고)로 演奏(연주)되는 푸류기아風(풍)의 音調(음조)로서 여기에 맞추어 發狂(발광)하는 그들의 亂舞(난무)는 디오니소스祭(제)의 舞踏者(무답자)들과 마찬가지로 熱狂(열광)과 도취 속에서 일종의 황홀상태를 경험한다.
  音樂(음악)이 靈的體驗(영적체험)의 世界(세계)와 연관되어 있음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哲學(철학)을 音樂(음악)에 歸一(귀일)시킨 기묘한 構想(구상)과 聽覺(청각)이 모든 감각 中(중)에서 가장 감정을 搖動(요동)시킨다는 테오프라토스의 말을 想起(상기)할 때 인간의 疾病(질병)과 精神(정신)의 불안을 근본적으로 치료하고 정화시킬 수 있는 것은 音樂(음악)의 조화에 있다는 것을 예감해야 한다. ‘플라톤은 暗示的言語(암시적언어)로 소크라테스는 個人的(개인적)으로 코류판데스의 祭儀(제의)에 참여하였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소크라테스의 디오니소스的(적)인 側面(측면)을 暗示(암시)하는 말이다.

  니체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아폴로的(적)인 主知主義(주지주의)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를 죽였다고 말하고 있으나 이것은 그들의 一面(일면)밖에 보지 못한 短見(단견)이라 할 것이다. 니체는 “論理的形式(논리적형식)인 근거의 원리가 그것의 具體的(구체적)인 형태의 어디선가 예외가 있다는 것이 發見(발견)될 경우 人間(인간)은 돌연히 現象界(현상계)의 인식 형식에 혼미가 있음을 깨달아 解決(해결)의 方途(방도)가 없는 戰慓的恐怖(전표적공포)에 빠지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個體化(개체화)의 원리가 파괴되었을 때 人間(인간) 아니 自然(자연)의 가장 내면적인 根底(근저)로부터 환희에 찬 황홀감이 솟아오른 것이로대 위에서 말한 전율적 공포에 이 환희에 넘쳐흐르는 황홀을 보낼 때 우리들은 디오니소스的(적)인 것의 本質(본질)에 한번 눈을 돌리게 된다.
  따라서 도취의 성질을 지닌 디오니소스的(적)인 것은 우리들에게 매우 가까운 것으로 된다. 원시적인 인간들이나 민족들이 마취적 음료를 마시며 讚歌(찬가)를 부를 때 혹은 온 자연을 환희로 충만시키는 정열의 봄이 찾아올 때 저 디오니소스的(적)인 흥분은 잠에서 깨고 그것이 고조됨에 따라 주관적인 것은 사라지고 완전히 忘我(망아)의 상태로 된다”고 니체는 열변을 토한다.
  이것은 反主知主義(반주지주의)의 기치를 올리는 生哲學(생철학)의 선언이다. 그러나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의 隆替(융체)에 의한 보다 높은 철학이 전술한 바와 같이 피타고라스와 자연 철학자들 그리고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에게서 뿐만 아니라 근세西洋(서양)철학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헤겔은 1796年(년)에 쓴 그의 ‘Abhandlungenυber Ethik(倫理學(윤리학)에 關(관)한 論述(논술))’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最後(최후)로 一切(일체)의 것을 合一(합일)시키는 이데 (Idee)는 보다 높은 플라톤的(적)意味(의미)에 있어서의 美(미)의 이데이다. 나는 이제 다음과 같이 확언한다. 卽(즉) 모든 이데를 포괄하는 理性(이성)의 最高(최고)의 작용은 美的作用(미적작용)이며 眞(진)과 善(선)도 단지 美(미)에 있어서만 등포의 契(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ㅡ哲學者(철학자)도 詩人(시인)도 동등하게 藝術的(예술적)힘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美感(미감)없는 人間(인간)은 言語上(언어상)의 철학자에 불과하다.
  精神(정신)의 哲學(철학)은 美(미)의 哲學(철학)이다…詩(시)는 자신에 의하여 높은 존엄성을 얻고 마지막에 있어서도 처음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人類(인류)의 女敎師(여교사)다. 왜냐하면 어떠한 철학도 역사도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詩(시)만이 일체의 다른 學問(학문)이나 技術(기술)에 대하여 살아남는 것이기 때문이다. …
  우리들이 모든 Idee를 美的(미적)으로 즉 神話的(신화적)으로 할 때까지는 民衆(민중)은 이것에 관심을 갖지 못하며 逆(역)으로 神話(신화)가 理性的(이성적)으로 될 때까지는 哲學者(철학자)는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
  거기에서 언젠가는 교양 있는 者(자)와 교양 없는 者(자)가 악수를 하게 되고 신화가 철학적으로 되고 민중이 이성적으로 되고 철학이 신화적으로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때에 우리들 사이에는 영원한 통일이 지배하게 된다. …모든 個個人(개개인)의 一切(일체)의 힘도 이미 억압되지 않는 곳에 정신의 보편적 자유와 평등이 지배하게 된다. 하늘로부터 증여된 보다 높은 정신은 이 새로운 종교를 우리들 사이에 건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人類(인류)의 最後(최후)의 그리고 最大(최대)의 課業(과업)이다’ 헤겔의 이 걸작은 獨逸觀念論(독일관념론)의 전체 시스템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리스의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의 隆替(융체)를 재음미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칸트의 道德哲學(도덕철학)과 崇高(숭고)와 美(미)에 관한 論文(논문)에 영향된 쉴러의 美(미)의 윤리와 헤겔의 벗이며 그리스를 再現(재현)시키려 했던 Holderlin의 詩(시)의 世界(세계)에 感動(감동)된 헤겔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철학은 그 요람기(그리스)에 있어서나 現代(현대)에 있어서나 디오니소스的(적)인 詩(시)에 의하여 탄생되고 詩(시)에 의하여 양육되며 終局的(종국적)으로는 디오니소스的(적) 올페우스的(적) 종교로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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