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만화 ‘東國(동국)이’ 後記(후기)

  까닭모를 슬픔을 간직한듯한 가을이란 말은 어디론가 훌훌히 떠나고 싶은 갈증으로, 그만 퍽퍽 울어 버릴지도 모를 외로움으로 우리를 이끈다. 지겹고, 무료하고, 어둡고, 답답한 이 똑같은 모습에서 한번쯤은 달아나고 싶은 마음을 일게 하고 있다. 이러한 감정이 지난 가을 ‘東國(동국)이’를 탄생 시키게 된 동기였는지도 모른다. 저 중공에 잠입하고 파리로, 하노이로, 도오꾜로― 현대판 ‘홍길동’을 방불케하는 ‘키신저’의 호화로운 여행이 아닐지라도 <나>를 잊고 잠시나마 ‘東國(동국)이’라는 만화 속의 主人公(주인공)을 통하여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했던 나의 작은 방황편력을 대체 누가…<비현실적인 생의자세>라는 음흉한 제목으로 비판 하겠는가? 이 우주의 무한성에 비하면 한낱 인간의 수명은 짧다. 그러나 짧은 동안을 돈으로, 명성으로, 아내로, 자식으로, 부모로, 형제로, 병으로, 빈곤으로, 체면으로, 도덕으로 수없이 쪼개다 보면 어느 한 쪽이 온전히 한 순간만이라도 자기를 살 수 있을까? “어디에서든 뛰어 나와라! 너의 집에서, 너의 가정에서, 너의 야망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뛰어나와라. 거기 비로소 너를 발견하고 그것은 곧 위대한 발견이 될 것이다.” 라고 한 ‘앙드레ㆍ지드’의 <문명사적 비판>의 서두는 이러한 나의 감정에 더욱 부채질을 해주었다. 현재의 나, 즉 RㆍOㆍTㆍC 후보생이면서 전공인 정치학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만화를 그리게 하였으리라.

  <나>를 망각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달려들게 했었는지도 모른다. 좀 더 참노라면 좀 더 기다리노라면, 좀 더 공부하노라면 최초의 희망의 월계관이 있으리라는 신념으로 우리는 인생을 무수히 찢기고 난타 당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나의 만화 ‘東國(동국)이’도 예외일 수는 없다. 초췌한 모습으로 떠나는 ‘東國(동국)이’의 변명은 대개 이러하다.
  고통스럽고, 외롭고, 분하고, 억울하고, 부끄럽던 일들이 생의 의미가 되어 축적되어 간다고 감득하면서 언제나 열심히 오늘을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뇌리에 채운다.
  상처투성이인 미숙아 ‘東國(동국)이’는 과거를 거울삼아 이 가을의 비애스런 냄새를 완전한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또 다시 나그네 길을 떠나는 것이다. 끝으로 새로이 탄생한 ‘Mrㆍ백상’에게 아낌없는 성원과 사랑을 주길 부탁하고 신문사의 마감시간에 제대로 대지 못했던 자신을 후회하며 앞으로 인생의 마감시간에 쫓기는 사회의 문을 두들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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