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文化藝術嘗(문화예술상) 受賞(수상)한 辛夕汀同門(신석정 동문)

  “내겐 과분한 財産(재산)이죠. 民族(민족)이 주는 채찍이라고 생각하며 文學人(문학인)으로서 겨레를 위해 공헌하는데 온 情神(정신)을 쏟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제5회 대한민국 文化藝術嘗(문화예술상) 文學部門(문학부문)의 수상소감을 말씀하시는 辛夕汀同門(신석정동문)―.
  40여년의 詩作(시작)으로 1천여편의 詩(시)를 썼다.
  韓服(한복)을 즐겨 입으며 華麗(화려)한 中央文壇(중앙문단)을 버리고 田園(전원)에 묻혀 40여 년간 詩作(시작)과 후진양성에 몸바쳐오고 있다.
  본교 前身(전신)인 中央佛專(중앙불전) 당시의 잊을 수 없는 일은 “金岸曙(김안서)선생님께서 직접 牧歌詩人(목가시인)이라고 칭해 주신 이로가 몇몇 친구들과 ‘圓線(원선)’이란 同人誌(동인지)를 만들어 낸 일”이라고.
  在學(재학)당시에는 東洋的(동양적)인 것에 심취, 많은 工夫(공부)를 했었다고 덧붙이신다.
  鄭寅普(정인보), 金永郞(김영랑), 朴龍喆(박용철), 異河潤(이하윤)등과 함께 1930年代(년대)에는 ‘프로’文學(문학)에 대치, 純粹詩運動(순수시운동)의 기치를 높이 들고 언어의 彫琢(조탁), 각도의 참신, 형식의 洗練等(세련등)을 부르짖으며 詩壇風土(시단풍토)를 造成(조성)하는데 남다른 活動(활동)을 하기도 하셨다. 

  辛詩人(신시인)은 “文學徒(문학도)는 훌륭한 作品(작품)의 創作(창작)도 重要(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참된 人間(인간)이 돼야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志操(지조)와 學識(학식)을 겸비한 人間(인간)이 돼야죠. 아마도 萬海(만해)스님의 사상과 情神(정신)을 후배들은 꼭 좀 더 천천히 배울 必要(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진지하게 말하면서 “현재 젊은 계층에서 素月(소월)의 詩(시)를 流行歌(유행가)라고 하면서 잘못 理解(이해)하는 모양인데 이는 ‘뎃상’의 기초도 모르편서 ‘피카소’흉내를 내는 것”이라고 후배문학도의 경솔함에 경종을 울려준다.
  現在(현재) 全北大(전북대)에서 週(주)12시간씩 詩論(시론)과 文學講義(문학강의)를 맡고 있으며, 杜甫(두보)와 李太白(이태백)의 詩(시)등 漢詩(한시) 5백여수를 번역하여 출판단계에 있다고 말씀하신다.
  “요사이는 새벽 登山(등산)으로 건강을 유지하며 취미로는 꽃가꾸기”라고 말하는 辛詩人(신시인)은 “집은 좁은데 꽃은 40여종이나 된다”고 활짝 웃으신다.
  詩集(시집)으로 ‘촛불’, ‘슬픈 牧歌(목가)’, ‘氷河(빙하)’, ‘山(산)의 序曲(서곡)’, ‘대바람소리’가 있고 번역시집으로 ‘中國詩集(중국시집)’과 ‘매창시집’이 있다.
  本名(본명)은 辛錫正(신석정) 

  ◇略歷(약력)
▲1907年(년) 全北(전북)부안출생▲30~33년 中央佛敎專門修了(중앙불교전문수료)▲現(현) 全北大講師(전북대 강사)
※住所(주소)=全州市(전주시) 南老松洞(남로송동) 一七五(일칠오)의 二七(이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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