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演映科(연영과) 卒業公演(졸업공연) ‘갈매기’-

  演劇(연극)이 성공리에 끝나기 위해서는 作品選定(작품선정), 演出(연출), 演技(연기)의 三位一體(삼위일체)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특히 作品選定(작품선정)은 중요하다고 하겠다.
  그러한 점에서 이번 本校(본교) 演映科(연영과)의 14回(회) 卒業公演(졸업공연) ‘갈매기’는 우선 作品選定(작품선정)에 있어서 성공했다고 본다.
  ‘헤롤드ㆍ핀터’나 ‘사무엘ㆍ베케트’등의 不條理劇(부조리극), 反演劇(반연극)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제대로 소화되지 못한 채 공공연히 實驗劇(실험극)으로 公演(공연)되는 요즈음 아카데미즘的(적)이며, 리얼리즘的(적)인 ‘갈매기’公演(공연)은 실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갈매기’는 ‘안톤체홉’의 위대한 4部作(부작)중 첫 번째 작품으로 大學劇(대학극)으로서 무리한 감이 없지 않으나 나날이 성숙한 演技(연기)와 資質(자질)의 향상 및 열의를 보여주고 있는 演映科(연영과)로서는 감히 해볼 만한 작품이 아닌가 생각된다.
  ‘체홉’作品(작품)의 특색은 通念的(통념적) 意味(의미)에서의 ‘플롯’을 가지고 있지 않다. 즉 ‘플롯’이 전부는 아닌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얼핏 보기에 하찮은 作品(작품)처럼 보이는 것이 미묘하리만큼 복잡하다는 것이다.
  ‘체홉’은 인생을 희극과 비극의 양쪽에서 보았다. 때문에 그의 작품을 아주 세심하게 공연하였을 때라야 웃음과 눈물을 다 같이 자아낼 수 있다.
  또한 ‘체홉’의 극중 인물은 그들의 內面(내면)의 人生(인생)이 일상적 표피의 껍질을 벗고 나타날 때 숨겨진 생각과 깊게 묻혀있던 정서를 표면화 시키는 말의 자연발생적인 흡수를 이루어서 흘러넘치는 것이다.
  따라서 ‘체홉’을 演技(연기)함이 큰 도전이 되는 이유는 다른 어느 劇作家(극작가)보다도 사람들이 ‘말하지 않은’ 대목이 ‘말한’부분보다 더 중요하다는 점과 人生(인생)의 진짜 중요한 흐름은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채 흐르고 있다는 점을 ‘체홉’이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려 깊은 연기자라면 말로써 나타난 것의 배후에 감춰져있는 뜻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것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방법을 배워야만 한다.
  이 劇(극)에 출연하고 있는 캐스트 일원은 이점에 있어서 미숙했다는 것을 인정치 않을 수가 없다.
  演技者(연기자)란 무대 위에서 人形(인형)처럼 대사를 뱉고 行動(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作品(작품)을 완전히 소화, 흡수하여 온몸으로 그것을 관객에게 전달해야하는 것이다.
  이 劇(극)에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여주인공 ‘니나’가 러시아적인 암을 하고 침체된 분위기와 너무 조화되지 못한 점이다.
  1ㆍ2ㆍ3막의 ‘니나’의 들뜬 대사와 마임은 관객으로 하여금 불안한 감을 주었으며, 4막의 ‘니나’는 그 이전의 ‘니나’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어서 당황하게까지 했다.
  ‘니나’라는 인간을 캐스트가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때문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배역설정에 있어 무난하게 제 나름대로의 개성을 나타내었다.
  러시아的(적)인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대사처리도 예를 들어 ‘뜨리고오린’의 차분한 억양의 대사  변화 있는 마임으로 지루한 감을 주지 않고 劇(극)속에 몰입할 수 있었던 성숙한 연기도 높이 사고 싶다.
  劇(극) 전반에 걸쳐 커다란 일련의 맥이 없고 산만한 감도 있었지만 클라이맥스의 ‘니나’와 ‘뜨레플레프’의 대사 밑에 깔리는 효과음이나 조명 등은 연기자들의 열성 있는 연기와 아울러 劇中(극중) 효과를 최대한으로 살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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