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新羅(고신라)의 佛敎(불교)유통지 再確認(재확인)돼-

  新羅佛敎(신라불교)의 初傳者(초전자) 阿度和尙(아도화상) 石像(석상)이 발견되었다. 이 石像(석상)은 善山(선산) 桃李寺(도이사)의 石築(석축)공사에서 출토되었고, 古記錄(고기록)에 의하여 확인할 수 있었다. 善山地域(선산지역)은 옛날 이름을 一善(일선)이라 했고 古新羅時代(고신라시대) 佛敎(불교) 발상지라는 점에서 學界(학계)에 많은 주목을 받아온 곳이다.

  먼저 阿度(아도)에 관한 몇 가지 기록을 의지해 보면, 三國遺事(삼국유사) 卷第(권제)3 阿度基羅條(아도기라조)에는 訥祗王(눌지왕) 때 墨胡子(묵호자)란 승려가 고구려로부터 一善郡毛禮(일선군모례)의 집에 와서 숨어살다가 王女(왕녀)의 病(병)을 고쳐주었다고 하며, 또 毗處王(비처왕)(炤知王(소지왕)) 때 阿度和尙(아도화상)이 侍者(시자) 3人(인)과 함께 역시 毛禮(모례)의 집에 와서 墨胡子(묵호자)처럼 수년을 살다가 병 없이 죽었다. 이러한 기록으로 보아 묵호자와 아도는 동일인으로 보인다. 또 阿度本碑(아도본비)에는 阿度(아도)는 고구려인이며, 어머니는 高道寧(고도령)이라했다. 아버지 阿堀摩(아굴마)는 魏(위)나라사람인데 고구려에 使臣(사신)으로 왔다가, 고도령과 관계해서 阿度(아도)를 낳았다한다. 阿度(아도)는 후에 어머니의 말씀에 따라 신라에 온 것이 味鄒王(미추왕) 2년(서기 263)이라하여 前後(전후) 기록에 많은 차이가 있으나, 前者(전자) 즉 訥祗王(눌지왕) 때의 史實(사실)이 通說(통설)로 되어있다.

  또 하나의 주목되는 다른 기록은 仁祖(인조) 때 副提學(부제학) 江原道(강원도) 觀察使(관찰사) 등을 지낸 崔晛(최현)의 ‘一善志(일선지)’이다. 그중 佛宇條(불우조)에는 阿度石像(아도석상)에 관한 기록이 보인다. 즉 金堂庵(김당암)은 桃李寺(도이사) 東(동)쪽 수십보 쯤에 위치하는데 阿度石像(아도석상)이 있다고 기록했다.
  阿度(아도)가 처음 佛法(불법)을 펴기 위하여 숨어살았다는 善山郡桃開面(선산군도개면) 道開洞(도개동)에는 지금도 毛禮家(모례가)의 遺墟(유허)가 있고 또 毛禮井(모례정)의 우물이 남아있다. 이곳에서 마주 보이는 산이 冷山(냉산)이고 바로 桃李寺(도이사)의 鎭山(진산)이다. 桃李寺(도이사)는 毛禮家(모례가)에서 볼 때 冷山(냉산)넘어 멀리 洛東江(낙동강)을 바라보는 곳에 위치한다. 현재 이곳에는 華嚴石塔(화엄석탑)(寶物(보물)第(제)470號(호)), 阿度和尙事蹟碑(아도화상사적비), 阿度和尙神仙台(아도화상신선태)등 아도에 관한 유적이 다소 있다.

  6월2일 12시30분경 善山郡(선산군) 公報室(공보실) 김용국씨의 안내를 받으며 東大(동대) 박물관 張忠植(장충식)연구원과 함께 筆者(필자)는 현지 桃李寺(도이사)에 도착했다.
  本堂(본당) 極樂殿(극락전) 앞 華嚴石塔(화엄석탑)곁에 놓여있는 1m 남짓한 이상한 石像(석상)을 발견하고서 일행은 잠시 말을 잊었다. 직감적으로 善山志(선산지)에 있던 阿度和尙(아도화상)이 우리를 영접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조심스레 石像(석상)을 살폈다. 寺僧(사승)의 말에 의하면 이 石像(석상)은 약 40여일 전에 華嚴石塔(화엄석탑) 앞 石築(석축)을 정비하다가 우연히 발견되었으나 잘 알지 못하여 法堂(법당)에는 奉安(봉안)하지 않고 현 위치로 移安(이안)했다 한다.

  石像(석상)은 총고 97㎝ 頭高(두고) 32 身高(신고) 65 측면 폭 26 正面(정면)폭 17㎝에 불과한 아담한 小像(소상)이다. 발굴 후 취급부주의로 목이 부러졌으나 다행히 잘 복원되리라본다. 양손은 치켜들어 가슴 쪽에서 서로 닿은 듯 하며 왼손으로는 法衣(법의)인지 또는 연봉오리인지 잘 분간되지 않는 물체를 가졌다. 오른쪽 측면에는 여덟 갈래의 花葉形(화엽형) 둥근 무늬를 부조했는데 袈裟(가사)를 고정시키는 매듭의 장엄구를 나타낸 듯하다. 衣褶(의습)은 단조롭고 線(선)이 굵으며 전체적으로 주는 느낌이 古新羅時代(고신라시대) 조각수법을 연상케 하고 있다. 얼굴은 좁고 긴 편이며 눈은 추켜 떠 위엄이 당당하다.
  新羅最初(신라최초)의 伽藍(가람) 桃李寺(도이사)에서 신라 佛法(불법)의 初轉者(초전자) 阿度(아도)의 石像(석상)이 발견되었음은 新羅佛敎(신라불교)의 流通地(유통지) 善山(선산)의 위치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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