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晳暎(황석영) 著(저)

  ‘70년대 작가’의 선두주자로 통칭되는 黃晳暎(황석영) 同門(동문)의 ‘한국일보’ 연재장편소설 중 제1부 <廣大篇(광대편)>이 출판되었다.
  작자는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를 後期(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리 시대는 封建(봉건) 王朝(왕조)가 무너지던 시기에서 市民革命(시민혁명)과 統一(통일)을 성취하는 대단원에 닿는 近代史(근대사)속의 한 과도적부분이며, 近代(근대)의 민중운동은 半封建(반봉건) 反外勢(반외세) 反帝(반제) 투쟁의 맥락에 닿는다. 이러한 맥락을 더듬어 올라가 근대의 싹이라 할 수 있는 李朝後期(이조후기)의 민중의 동향을 살펴보자는 것이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가 되었다.
  이 소설은 잘 알려지지 않은 비천한 사람들을 등장인물로 한 이른바 역사소설이다.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일들에 관한기록으로서 우리 시대를 상징화하고 싶다.

  張吉山(장길산)은 이조 숙종 때 관에 쫓기는 奴婢(노비)의 자식으로 路上(노상)에서 태어난다. 그는 그의 義父(의부) 밑에서 舞童(무동)으로 뛰어난 자질이 가꾸어진다. 오직 호구를 위해 官(관)이나 富豪(부호)집에 불려 다니는 廣大(광대)로 젊은 시절을 보내다, 殺人罪(살인죄)로 獄(옥)에 갇힌다. 囚人(수인)생활 중에 학대받는 민중의 참상을 보고 지배계급에 항거할 결의를 다진다.
  그의 거사는 결국 실패하지만, 그가 잠적한 후 봉산탈춤의 定立(정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전해진다.
  張吉山(장길산)에 관한 歷史上(역사상)의 기록에는 그 반역의 규모나 활동범위, 후세에 끼친 영향력을 林巨正(임거정)이상으로 취급하고 있다. 張吉山(장길산)의 美化(미화)된 죽음에 대한 일화는 古典(고전)혹은 口碑文學(구비문학) 속에서 자주 散見(산견)됨을 볼 수 있다.

  黃晳暎(황석영)의 중ㆍ단편에서 보이는 드라이한 문체가 지양되고, 리듬감 있는 구체 문장과 고유의 土俗語(토속어)와 卑語(비어)의 대담한 사용, 口傳民謠(구전민요), 說話(설화), 民談(민담), 野史(야사)의 적절한 援用(원용), 드라마틱한 구성 천인을 방대한 역사의 주체로 파악한 作家(작가)의 신선한 관점은 한국소설문학의 영역확대에 성공하고 있다. <한국일보>에 계속 연재 중에 있는 <張吉山(장길산)>은 전체가 四部(사부)로 구성된 이른바 大河小說(대하소설)이다. 一部(일부) 廣大(광대)에 이어 二部(이부) 群盜(군도), 三部(삼부) 潛行(잠행), 四部(사부) 逆謀(역모)로 구성될 이 소설은 韓國(한국) 文學史上(문학사상) 획기적 수학으로 파악될 것임에 틀림없다.
(玄岩社刊(현암사간) 各卷(각권) 1천2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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