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민
한국외대 교수
아랍에 큰 변화가 일고 있다. 북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튀니지에서 시작된 민주화 시민혁명은 이집트의 장기집권도 몰락시켰다.

리비아의 반정부 시위는 내전양상으로 확대되면서 42년 집권한 카다피 정권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있다. 예멘, 바레인 등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연일 지속되고 있고, 나머지 대부분 아랍 국가에서도 크고 작은 시위가 발생하고 있다. 현재까지 시위나 개혁요구가 등장하지 않은 나라는 22개 아랍국가 중에서 아랍에미리트연방과 카타르뿐이다. 외면상으로 최근 아랍 민주화 열풍은 베를린 장벽 붕괴로 상징되는 1980년대 말 동유럽 공산권 몰락과 유사하다. 아랍권도 수십 년간 지속된 독재 정권의 압정을 시민의 힘으로 떨쳐내고 민주화시대를 열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튀니지와 이집트의 시민혁명은 독재를 타도하는 단순한 정치적 혁명에 국한해서는 안 된다. 보다 큰 틀로 보면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권위주의’에 종말을 고하는 사상혁명이다. 가부장적 권위주의는 우리의 유교전통을 포함해 여러 문명, 그리고 상당수 제3세계에 뿌리내린 가치관이다.

이번 혁명은 권위체제 하에 사는 억압받는 민중의 심리구조(mentality)를 바꾸어 놓고 있다. 정치 참여를 막고, 단일 정당체제를 폭압적으로 유지하고, 집권층 일가가 정부의 주요 보직과 경제 이권을 독차지하고, 최고 지도자가 정권교체를 허용하지 않는 권위주의체제는 이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을 것이다.

‘죽어야 바뀌는 정권’이라고 불릴 정도로 권위주의 독재체제를 가진 중동 전역에 이번 민주화 혁명이 확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민주화 혁명은 또 ‘21세기 새로운 틀의 혁명’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더딘 민주화를 보여주던 곳이 바로 중동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권위주의 체계에 반대하는 풀뿌리 시민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가진 대중은 이제 지배구조의 변화를 스스로 이끌어내고 있다.

과거의 혁명과는 달리 특정한 민족적, 이념적 지도자가 없이도 일반 대중이 수십 년 지속된 독재 권위주의체제를 붕괴시키고 있다.

더불어 권력의 독점과 강요를 더 이상 수용하지 않겠다는 인류의 바뀐 인식은 아랍 혹은 이슬람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시대착오적인 3대 세습을 시도하는 북한도 궁극적으로는 이런 인류의 새로운 인식에서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아직 일부 남아있는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권위주의에도 종말을 고할 것이다. 권위주의는 국가 정치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소수가 공천과정을 장악하려는 우리의 정당정치에도 등장한다. 시민사회의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학교에도 상당 부분 남아있다.

아랍에서 시작된 시민혁명을 우리가 남의 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당장은 아니지만 북한의 정권 붕괴가 더 앞당겨 질 것이다. 이를 대비해 우리는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더불어 우리도 ‘위에서 아래로의’가 아니라 상하가 소통하는 그리고 강요하지 않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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