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학계를 일궈온 전자공학계의 산 증인

이진구 교수
전자공학과
퇴임을 앞둔 이진구 교수를 만나기 위해 정보문화관 지하에 밀리미터파 신기술 연구센터를 찾았다.

우리학교에 이런 연구소가 있나 할 정도로 생소한 이름이었지만 막상 찾아간 연구소의 규모는 거대 기업의 그것을 연상 시키리 만큼 만만치 않은 모습이었다. 웅웅 거리는 복잡한 장치들과 바삐 오가는 흰 마스크를 쓴 연구원들 가운데서 진지하게 연구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이 교수를 만날 수 있었다. 그의 눈빛은 정년퇴임을 앞둔 교수가 아닌 한창 연구에 매진하는 혈기왕성한 연구원을 연상케 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 반도체, 밀리미터파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밀리미터파는 파장이 짧은 전자기파를 말하는데 현재 지속적으로 연구가 이뤄지는 분야다. 아직 실생활엔 낯선 분야지만 군사장비와 의료기기에 활용되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진 기술로 알려져 있다.

일찍이 밀리미터파에 관심을 둔 이 교수는 그동안 이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뤄내 우리나라 전자공학의 산실인 대한전자공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또한 2009년에는 전기,전자,컴퓨터 분야의 최고 권위를 가진 미국전기전자학회(IEEE)에 석학회원이 되기도 했다. 미국전기전자학회는 160개국, 38만 회원을 가지고 있는 명실공히 세계적 학회기 때문에 사람들은 부러운 시선으로 노교수를 바라봤었다.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했어.”라고 담담히 말하는 이 교수의 말에는 진실한 과학자만이 내보일 수 있는 당당함이 있었다. 지금은 세계적인 과학자이지만 이 교수의 학창시절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65학번인 그는 당시 반도체 부문의 황무지와도 같은 한국에서 홀로 반도체를 공부하고자 결심했다.

전문가도, 관련서적도 거의 없던 시절, 그는 혈혈단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밀리미터파에 관심을 가질 때도 이전의 연구는 깨끗이 잊고 전혀 새롭게 시작한다는 자세로 시작한 것이었다.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을 하고 싶다는 학자 특유의 순수한 욕심과 그만의 끈끈한 도전 정신이 오늘의 이 교수를 있게 한 것이다.

“요즘 학생들은 도전정신이 별로 없어. 젊다는 건 도전할 수 있어 좋은거 아니겠어?” 이 교수는 힘들면 포기하고 쉬운 길만을 택하는 지금의 대학생들을 따끔히 지적했다. 꾸준히 연구하는 과정이 어렵고 사회적으로 이공계를 기피하는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탄탄한 실력을 갖추고 도전한다면 무엇이 두렵겠냐는 것이 이 교수의 지론이다.

사실 이 교수는 철저한 수업방식으로 유명하다. 연구현장에서 체득한 실질적 노하우와 정교한 이론으로 학생들을 매료시킨다는 것. 현재 그의 밑에서 공부한 석박사급 제자만 1백여 명에 이른다. 이들은 국내외 유수 기업과 연구소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명예로운 퇴임을 준비해준 제자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하는 이 교수의 모습에서 냉철한 과학자 이면에 숨겨진 교육자의 따뜻함이 배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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