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코페티감독의 ‘굿바이 엉클ㆍ톰’

  “엄청난 충격이었다”겔리에로ㆍ야코페티 감독의 한 작품을 통해 우리는 美(미)제국주의형성과정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목격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주의영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지만 화면을 바라본 후 갖는 일련의 감정들은 오히려 픽션이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뿐이다.
  ‘굿바이 엉클ㆍ톰’의 저변에 흐르는 사상은 철저히 부셔져버린 흑인들의 역사와 그 잔혹의 토대위에 건설된 미국문화에 대한 강력한 반발을 기초로 하고 있다.

  야코페티감독의 작품성이나 구성력에 있어서도 이태리기자의 시각을 통해 당시의 사실을 아무런 방해없이 그대로 보여주었을 뿐만아니라 주인공인 기자가 화면에 한번도 나타나지 않은 것 역시 특이한 사실이었다.
 또한 작품의 첫부분과 마지막부분에 교묘하게 삽입되어 있는 시간의 초월은 관람자들을 다시 한번 경악스럽게 한다. 또 하나의 특이할 사항은 리즈ㆍ오르토라니의 음악이다. 그의 음악은 영화가운데 가장 잔인한 장면-예를들면 흑인 노예를 사냥하는 장면이나, 노예를 번식시키기 위해 성행위를 갖는 장면에서 경쾌한 리듬의 음악을 배합시킴으로써 영상과 삽입음악의 완전한 대조는 대립의 단계를 넘어 더욱 강렬한 이미지전달을 유도한다.
  이상의 대조수법은 작품의 구석구석에 내재해 있다. 광활하고 경이스러운 자연속에서 벌어지는 처절한 흑인의 몸부림은 그래서 더욱 선명하다. ‘굿바이 엉클ㆍ톰’을 대표하는 작품속의 책으로 나오는 ‘뿌리’ ‘넷ㆍ터너의 고백’은 영화의 단면을 제시한다. 즉 ‘뿌리’에서의 처절한 노예생활과 ‘냇ㆍ터너의 고백’에서 나오는 흑인들의 피비린내 나는 복수가 복합되어 있는 것이다. 

  야코페티감독의 고발성시각과 하이티공화국의 제작협조가 이루어낸 엄청난 수의 엑스트라와 각각의 엑스트라가 연출해낸 절규는 흑인들의 수난을 더욱 절실히 반영해 주었다.
  다큐멘타리, 그러나 줄거리가 필요없는 다큐멘타리로써 ‘굿바이 엉클ㆍ톰’은 작품의 가치를 더 하는 것이다. 당시 백인, 그 중에서도 남미인들을 위주로 이루어졌던 흑인들의 동물화.
  개도 먹지 못하는 음식을 먹고, 노예번식을 위해 생식만을 전문으로 하는 흑인, 애를 하나 날때마다의 성금은 1달러, 같은 흑인끼리 관계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거세를 당하는 것, 인간사냥을 위해 돼지바베큐를 하고 유인된 흑인들을 사냥하는 장면 등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장면들이 꼬리를 물고, 그 속에서도 분노할 줄 몰르는 흑인들의 모습은 우리를 더욱 답답하게 했다.
  그러나 영상속에서 나타나는 외설스러운 장면을 접하면서도 그에 대한 긍정보다는 단지 잔혹감에 치를 떠는 이유는 “피부가 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사건들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고발성 짙은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야코페티감독이 ‘몬도가네’ ‘잔혹의 대륙’등의 뒤를 이어 세상에 폭로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약2천만명에 달하는 흑인들의 수난의 역사와 그들의 역사를 오욕과 분노로 점철시킨 미제국주의의 잔혹성을 설명하고자 한 것이며 그 다큐멘타리는 지금도 세계도처에서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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