主從(주종)아닌 仁(인)의 實踐方法(실천방법)

  Ⅰ

  儒敎(유교)의 근본사상은 孔子(공자)의 仁(인)에서 출발한다. 孔子(공자)의 ‘仁(인)’은 孟子(맹자)에 와서 五倫思想(오륜사상)으로 그 倫理的(윤리적) 德目(덕목)이 定立(정립)되고, 다시 秦漢時代(진한시대)의 董伸舒(동신서)에 의하여 三綱五常說(삼강오상설)로 바뀌었다. 그 후 五常(오상)이 五倫(오륜)으로 轉訛(전와)되어 三綱五倫(삼강오륜)이 近世(근세)의 儒敎倫理(유교윤리)로 定式化(정식화)되었다. 따라서 三綱(삼강)에 기초를 둔 忠(충)․孝(효)․烈(열)이 마치 儒敎倫理(유교윤리)의 본질인양 傳承(전승)․理解(이해)되고 있음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孔子(공자)의 ‘仁(인)’의 근본원리와 그 후 발전된 유교윤리의 본질을 살펴보면 사실 근세까지 확립되어 내려오는 忠(충)․孝(효)․烈(열)의 儒敎德目(유교덕목)이 유교사상의 전체가 아니고, 오히려 ‘仁(인)’에 바탕을 두고 그것의 현실적 실천방법이 곧 忠(충)․孝(효)․烈(열)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한 例(예)로서 子長(자장)이 孔子(공자)에게 묻기를 <子文(자문)은 세 번 벼슬하여 令君(영군)이 되었으되 기쁜 빛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세 번 벼슬에서 쫓겨났으나 성난 빛을 나타내지 않고 자기가 맡았던 令君(영군)의 政事(정사)를 새로운 令君(영군)에게 인계하였는데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물으니 孔子(공자)가 말씀하되 <忠(충)이다>, 子長(자장)이 다시 묻기를 <仁(인)이라고도 할 수 있나이까>, 孔子(공자)가 대답하되 <알지 못하노라. 어찌 ‘仁(인)’이라 할 수 있단 말인가>(論語(논어) 第五卷(제오권) 公治(공치))라고 대답하고 있음을 보아 ‘忠(충)’이 결코 仁(인)은 아니요 仁(인)의 쓰임의 한 德目(덕목)임을 알 수 있다. 忠(충)이 仁(인)에서 나옴은 의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仁(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孔子(공자)의 제자인 樊遲(번지)가 ‘仁(인)’에 대하여 물을 때 孔子(공자)는 <사람을 사랑하라>고 대답하였고, 孟子(맹자) 역시 <仁(인)이라는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요, 또 仁(인)이라는 것은 사랑의 마음이다>라고 말하고 있음을 보아 仁(인)은 모든 儒敎倫理道德(유교윤리도덕)의 근본개념이었다. 이와 같은 原始儒敎(원시유교)의 仁(인)은 그 실천수단으로서 시대적 환경과 정치적  統治理念(통치이념)과 관계해서 忠(충)․孝(효)․烈(열)로 전개되었다. 이렇게 볼 때 原始儒敎(원시유교)에서 忠(충)은 어떻게 이해되었는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Ⅱ

  儒敎(유교)의 基本經書(기본경서)인 四書三經(사서삼경)중에서 四書(사서)를 중심으로 忠(충)에 대한 언급을 살펴보면 孔子(공자)의 論語(논어)에서
  ①曾子曰(증자왈), 吾日三省吾身(오일삼성오신)․爲人謀而不忠(위인모이불충)(論語第一卷學而(논어제일권학이) ②子曰(자왈), 君子不重則不威(군자부중칙부위)․學則不固(학칙부고). 主忠信(주충신)…(學而(학이)) ③子出門人(자출문인)…曾子曰夫子之道忠恕而己矣(증자왈부자지도충서이기의)(里仁(이인)) ④子長問曰(자장문왈)…三仕爲令尹(삼사위령윤)… 必以告新令尹何如子曰忠矣(필이고신령윤하여자왈충의)(公治(공치)) ⑤子以四敎(자이사교)․文行忠信(문행충신)(述而(술이)) ⑥樊遲問仁(번지문인)․子曰(자왈)…與人忠(여인충)…(子路(자로)) ⑦愛之能勿勞乎(애지능물로호)(憲問(헌문)) ⑧子長問行(자장문행)․子曰言忠信(자왈언충신)․行篤敬(행독경)…(衛靈公(위령공)) ⑨孔子曰(공자왈) 君子有九思(군자유구사)․視思明(시사명)…言思忠(언사충)(季代(계대))
  四書(사서)中(중)에 忠(충)이 가장 많이 사용된 書(서)는 역시 論語(논어)이고 孟子(맹자)는 卷一(권일) 梁惠王(양혜왕)편에서 ①王如施仁政於民(왕여시인정어민)…修其孝悌忠信(수기효제충신)…과, 告子章(고자장)에서 ②孟子曰(맹자왈) 有天爵者(유천작자)…仁義忠信樂善(인의충신락선)…이라 하여 忠(충)을 말하고 있고, 中庸(중용)에서는 ①忠恕違道不遠(충서위도불원)…(第十三章(제십삼장)) ②濟明成服(제명성복)․非禮不動(비례부동)…所以勸大臣也(소이권대신야)․忠信重祿(충신중록)…(第二十章(제이십장))의 忠(충)이 보인다.
  여기서 忠(충)이 孔子(공자)의 論語(논어)와 中庸(중용)에서는 忠信(충신)․忠恕(충서)로 같이 쓰여지고 있고 孟子(맹자)는 忠信(충신)만 쓰고 있음이 특징이다. 그것은 우리의 根本(근본) 마음인 仁(인)을 어떻게 간직하고 실천할 것인가 하는 方法(방법)으로 忠恕(충서)와 忠信(충신)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때 우리는 忠(충)을 ‘그 마음을 다함’(盡心(진심)), 또는 ‘정성스러움’, 또는 ‘참’, 또는 ‘진실’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여도 무방하다. 이렇게 볼 때 忠(충)이라는 하나의 倫理德目(윤리덕목)은 ‘그 마음을 정성스럽게 다함’을 의미함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 이것은 결코 外的(외적)인 刺戟(자극)이나 壓力(압력)에 의하여 나타나는 道德意識(도덕의식)이 아니라 人間(인간)이 本來(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道德感(도덕감)인 仁(인)의 實現(실현)을 內的(내적)인 自己自覺(자기자각)에 의하여 忠(충)으로 나타냈다는 것이 의심할 바 없이 이해된다. 진정한 自己(자기)의 內面的(내면적) 自覺(자각)에 의한 主體的(주체적) 實現(실현), 이것이야 말로 그의 실천方法(방법)으로서 忠恕(충서)․忠信(충신)이었다.


  Ⅲ

  이와 같은 原始儒敎(원시유교)의 忠恕(충서)와 忠信(충신)이 漢代(한대)에 들어와서 그 强度(강도)가 깊게 전개되었으니 그것이 곧 孝經(효경)(胡適(호적)은 孝經(효경)을 僞書(위서)라고 그의 古代中國哲學史(고대중국철학사)에서 言明(언명)하고 있고, 現代(현대)의 儒學者(유학자)들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에서의 忠(충)의 內容(내용)이다. 孝經(효경)에서는 忠(충)을 ①以孝事君則忠(이효사군칙충) ②夫孝(부효)‧始於事親(시어사친)‧中於事君(중어사군)‧爲忠臣(위충신) 終於立身(종어입신) ③君子之事上也(군자지사상야) ④進思盡忠(진사진충)‧退思補過(퇴사보과) ⑤子曰君子之事親孝故忠可栘於君(자왈군자지사친효고충가체어군)이라 하여 君(군)에 대한 忠(충)을 마치 부모에게 孝(효)함과 같이 하라고 말하고 있음을 본다.
  여기에서 君(군)은 어디까지나 封建君主國家社會(봉건군주국가사회)의 家族制度(가족제도)와 관련된 의미로서 君(군)이요, 그 君(군)에 대한 忠(충)은 家族主義(가족주의)에 있어서 기본적 倫理(윤리)인 孝(효)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다. 따라서 君(군)‧師(사)‧父(부)一體(일체)에서 忠孝一體(충효일체)의 倫理觀(윤리관)이 확립되게 이른 것이다. 이런 의미에 있어서 封建制度(봉건제도)의 君主(군주)가 몰락된 현대의 民主主義制度下(민주주의제도하)에서 忠(충)은 하나의 형식화된, 또는 봉건적 統治槪念(통치개념)으로 받아들여짐에 따라 마치 忠(충)이란, 이 一人君主(일인군주)에 대한 忠(충)으로 착각하여 忠(충)이라는 말까지 쓰기를 꺼려하게 된 것이다. 그럼으로 우리는 原始儒敎(원시유교)의 忠(충)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반성함으로써 오늘의 世代(세대)에서 忠(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省察(성찰)함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은 君主(군주)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君(군)을 國家(국가)라고 보아야 할 것이고, 그것은 君主(군주)와 같은 統治者(통치자)가 아니다. 국가는 통치자와 떨어질 수 없다. 따라서 국가를 운영하는 統治者(통치자)에게 어떻게 忠(충)을 할 것인가? 올바른 統治者(통치자)라면 두말할 것이 없지만 만약 올바르지 못한 統治者(통치자)가 있다면 그러한 統治者(통치자)에겐 어떻게 父母(부모)를 섬기듯 忠(충)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문제는 忠(충)이라는 본질을 명백히 理解(이해)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오류이다.
  儒敎(유교)의 忠(충)은 결코 上下(상하) 主從(주종)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仁(인)의 실천방법으로서 忠恕(충서)라는 것을 理解(이해)한다면 儒敎倫理(유교윤리)가 결코 上向(상향)의 倫理(윤리), 從屬的(종속적) 人間關係(인간관계)가 아님이 스스로 드러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互惠(호혜)의 倫理(윤리)이요 人間關係(인간관계)이다. 우리는 進思盡忠(진사진충)하고 退思補過(퇴사보과)라는 말을 잘 음미 하여보면 알 수 있다. 그 뜻은 政事(정사)에 나아가서는 임금(오늘은 國家(국가))께 정성을 다하고(忠(충)) 물러 나와서는 過(과)를 補(보)한다 할 때 過(과)를 補(보)한다는 것은 임금의 政事(정사)가 잘되면 칭찬하고 잘 안되면 왜 그것이 안 되고 있는가를 정성스러이 補完(보완)하여 進言(진언)한다는 능동적 적극적 실천적 참여의 의미인 것이다. 무조건 비난하고 불평불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한 마음으로 자기의 內面的(내면적) 世界(세계)를 돌이켜 자각하면서 올바르게 진언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해야 한다.


  Ⅳ

  우리는 이미 原始儒敎(원시유교)의 倫理觀(윤리관)으로 仁(인)의 실천방법이 곧 忠恕(충서)‧忠信(충신)임을 보아왔다. 우리가 오늘날 忠恕(충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것은 君主(군주)의 主觀的(주관적) 獨斷的(독단적)인 一方通行(일방통행)이 아니라 君主自身(군주자신)까지 內包(내포)된 忠(충)(참)이요 恕(서)(省察(성찰))인 것이다. 이때의 恕(서)란 中庸(중용)에서 말하는 <나에게 베풀어짐을 願(원)하지 않는 것이라면 남에게 베풀지 말라>(中庸(중용)13章(장))는 의미에 있어서 恕(서)인 것이다.
  忠(충)은 主體的(주체적) 自己把握(자기파악), 自己(자기)의 自覺過程(자각과정)에 있어서 마음을 정성스럽게 갖는 것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合理的(합리적) 儒敎(유교)의 方法論(방법론)으로 提示(제시)된 것이요, 그러한 의미에 있어서 內面的(내면적) 自己把握(자기파악)에 기초를 두고 國家(국가)와 民族(민족)을 ‘정성스럽게’ 생각하는 것이다.
  진심으로 자기를 생각할 때 내가 서있는 位置(위치)가 確認(확인)되는 것이요, 따라서 國家(국가)와 民族(민족)과 自己(자기)가 서로 相互關係(상호관계)라는 것이 자각된다. 오직 자기에 정성을 다하듯이 우리의 現實(현실)에도 똑같이 정성을 다하라는 것으로 忠(충)은 理解(이해)되어야한다. 君君(군군), 父父(부부), 子子(자자), 臣臣(신신)이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운, 그러한 곳에 진정한 忠(충)이 있음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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