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으로 들어가는 배를 타기 위해 부두로 나갔을 때 하늘은 온통 잿빛으로 안개비를 뿌리고 있었다.
  ‘소록도행’이라고 씌어진 갑판에 앉아 특이한 상황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차서 섬을 열심히 바라보았다. 거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제 모습을 드러내는 섬은 다른 섬들과 별반 다름없는 평범한 인상을 주어 가벼운 실망을 느꼈다. 눈이 나빠서 그랬는지 녹동에서 섬을 바라보았을 때는 섬의 생김새가 그럴싸해서 스케치 도구를 가져오지 않은 걸 후회했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멀리서 볼 때는 좋았는데 가까이 가보면 그 반대인.
  <근시안들은 사물을 바라볼 때에 자신의 주관을 너무 많이 개입시켜서 곤란하다>고 말한 M이 생각났다.
  시간이 늦어 주민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는 출입이 금지되어서 바다로 발길을 돌렸다. 물은 차가웠지만 원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어 수영하기에 좋았다.
  돌아오는 배에서 맞이한 저녁노을의 아름다움 뒤에 숨어있는 쓸쓸한 분위기로 못 견디게 사람들이 그리웠다. 서울을 떠난 지 한 달이 다 돼간다는 날짜 계산을 그때 처음 해봤다. 거리만이 그리움을 낳는 것이 아니라 달력에 새겨진 단순한 모양의 아라비아 숫자들이 더욱 진한 그리움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환자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들어가려고 다음날 또 소록도로 향했다. 고흥에서 녹동으로 가는 길은 포장이 안된데다가 하도 자주 멈춰서 멀미가 났다. 알고 보니 일정한 정류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손님이 있으면 어디든지 멈췄고 멈춘 곳이 바로 정류장이었다. 버스를 타려는 시골사람들의 느릿한 걸음걸이와 그들을 기다리는 차장의 얼굴에서 조급한 표정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무엇엔가 쫓기는 듯 바쁘게 발을 내딛는 도회인에게 그들의 여유를 가져다주고 싶었다.
  세 번의 신분증 검사를 거치고서야 환자들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공원에 자리잡고 있는 열대수와 나환자들을 위해 살다 간 이들의 공적비가 눈길을 끌었다. 한하운의 시 ‘보리피리’가 새겨진 들 앞에서 사진을 찍은 후 공원 모퉁이를 돌다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얼굴을 가진 나환자와 마주쳤다.
  나환자하면 눈썹이 없는 정도로만 상상했던 내게 그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그 뒤로 만난 환자들도 거의가 악화된 모습들이었다. 인간의 얼굴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 관하여 ‘쟈코메띠’간 쓴 긴 글이 완벽에 가까운 동조를 보냈던 몇 달 전 일이 생각나 쓴 웃음을 지었다. 육체의 무상성을 부르짖으면서도 얼굴에 집착하는 인간의 심리는 무엇으로 해명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우리 또래의 젊은 나환자들이 자살을 하는 율이 높고 그들 대개가 城(성)뒷쪽벼랑에서 몸을 던진다는 말을 듣고 그들 젊음이 가지는 크나큰 아픔의 무게에 가슴이 쓰렸다.
  교회 마루에 앉아 참새들처럼 귀여운 입을 벌려 노래하는 얘기들을 보자 몇 년 전 신문에서 떠들어 댔던 미감아의 취학거부사건이 생각나 왠지 모를 죄의식을 느꼈다.
  결국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바람직한 삶의 자세라는 인식이 들 때 폭 넓은 생을 영위할 수 있고, 역경에 처해있는 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질 수 있으리라.
  ‘나병은 낫는다’. 부두에 서있는 비석에 새겨진 이 글귀 속에서 영원한 절망을 읽는다던 어떤 이의 말이 소록도를 뒤로한 나의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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