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 거지가 하나 鍾路(종로)를 헤맨다. 사람들이 어디 있는가 하고. 동전이 몇 푼 떨어져 있을 뿐 鍾路(종로)엔 아무것도 없다. 그는 간다. 그는 光化門(광화문)에서부터 東大門(동대문)까지를 가고 있다. 아, 왜 아무도 없는가 하고.
  웬 거지 하나가 鍾路(종로)에 앉아있다. 사랑을 좀 달라고 하며, 그는 구걸하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침을 질질 흘리면서, 왜 그들은 지나가고 지나가버리고만 있는가하며 그의 내민 손에는 아무것도 없다.
  동전이 몇 푼 떨구어져 있을 뿐, 그는 光化門(광화문)에서 東大門(동대문)까지의 모든 사람들을 바라보며 구걸하고 있다. 아, 그들은 사랑을 어디에 주려고 다니는가 하며, 어떤 거지가 鍾路(종로)에서 또 다른 거지를 만난다. 그들은 서로 손을 내밀고 있다. 그들의 손엔 몇 푼의 동전이 쥐어져 있다. 그들이 찾고 있는 것을, 사람을, 사랑을, 그들이 언젠가 입고 있던 그 어린 날의 日曜日(일요일)을, 高貴(고귀)함을, 純粹(순수)를, 浪漫(낭만)을, 親舊(친구)를 바꾸기 위해서 몇 푼의 동전을 내밀고 있다.
  그들이 어떻게 그 동전들을 얻었는가. 그들의 옷차림을 보라. 때 묻고 찢어지고 입가엔 침을 흘리고 눈은 술기로 혼탁하고 코에 기름먼지가 묻은 그들. 그들은 동전을 줍거나 동전을 구걸한다. 거지들은 모두 그렇게 산다. 鍾路(종로)의 한가운데서 웬 거지 둘이 마주쳤다. 서로가 거지인줄을 모르고 그들은 구걸한다. 사람이여, 사랑을 주소서, 불쌍한 이 거리를 위해. 그들의 손엔 몇 푼의 동전이 때에 묻혀 쥐어 있다. 때처럼 感情(감정)이 묻어 그 동전은 溫氣(온기)가 있다. <버스정류장>이란 演劇廣告文(연극광고문)이 버스정류장마다 풀에 발려 전신주에 붙어있다. 쇼우윈도우의 마네킹마다 사치한 옷을 입고 있다. 사람들은 어디가고 마네킹이 옷을 입고 鍾路(종로)를 메우고 있는가. 그것들을 헤치고 지날 수가 없구나. 자동차가 달려온다. 사람이 아무도 안 탄 채 그것들은 自動(자동)으로 쏜살같이 달려간다. 거지가 외친다. 사람들이여 車(차)조심을 하여라. 어떻게 車(차)가 사람을 피해가길 바라는가, 사람들이여. 그러나 鍾路(종로)에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다.
  차들은 그래서 大路(대로)를 쏜살같이 달려가도 무방하다. 아, 어디로 갔는가. 사람들은 모두 어디에 숨어서 구경을 하고 있는가, 구걸을 하고 있는가.
  두 거지가 鍾路(종로)에서 만나 서로 손을 내민 채 때 묻은 손에 몇 푼의 동전을 쥔 채 부딪친다. 무엇에 부딪혔는가. 한 거지가 외친다. 이것은 神(신)인가 전신주인가. 한 거지가 외친다. 强盜(강도)야 빼앗으려면 사람에게로 갈 것이지 거지에게 몇 푼의 동전밖에 사랑이 어디 있고 高貴(고귀)한 눈물이 무어 발싸개인줄 아느냐. 웬 놈의 두 거지가 鍾路(종로) 한가운데서 싸우고 있다.
  斜視(사시)의 그 눈으로 하늘을 흘겨보면서, 神(신)이여, 이젠 그만, 이제는 내려다보지 말아라.
  鍾路(종로)에 거지가 없다고? 鍾路(종로)에 나가보라. 거지가 두 명, 두 명씩 이십 번이 얼마든지 있다. 당신들의 天國(천국)으로 鍾路(종로)가 光化門(광화문)에서 東大門(동대문)까지 놓여져 있다. 어디 있는가, 天國(천국)은. 웬 거지가 중얼거린다. 音樂(음악)이, 童話(동화)가, 진실이 어디 있는가, 웬 거지가 술방울로 얼굴을 범벅한 채로 종로에서 떠들며 웃고 있다. 눈물같은 술방울이 미친 듯이 그의 얼굴을 핥고 있다. 웬 거지가 鍾路(종로)바닥에 쓰러져 있다.
  微動(미동)도 않은 채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가고 그의 주위엔 구더기가 모여든다. 鍾路(종로)의 陸橋(육교) 계단 중간에 웬 거지가 옷이 홀딱 벗겨진 채 구걸을 하고 있다. 피부에 파랗게 곰팡이가 슬어있다. 웬 거지가 쇼우윈도우에 剝製(박제)되어 꼬부라진 손가락을 허공에 매달아 놓고 구걸하고 있다. 音樂(음악)처럼 누군가가 그때 묻은 손위에 소리를 울리면서 동전을 떨구어뜨린다. 무엇을 구걸하는가. 거지야 네가 바라는 것이 동전 몇 푼이 아니고 무엇이더냐. 쓰레기 속에서 웬 거지가 꿈틀대고 있다. -이제 그만. 모두들 이젠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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